법원 "대주주 기부한 기금에 법인세 부과는 부당"
2023-07-17 13:35
대주주가 기업에 기부한 기금에 부과된 법인세 과세를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당 기부금이 실질적으로 회사 순자산을 늘린 수익이나 익금(회사 순자산을 증가시킨 거래로 생긴 수익)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SK브로드밴드가 동수원세무서와 서울지방국세청을 대상으로 제기한 ‘법인세 부과 처분 등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017년 태광그룹 계열사였던 티브로드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중소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운영 및 지원을 위한 공동 협력’ 양해각서를 통해 기금 100억원을 기부받았다. 티브로드는 이 중 약 38억원은 중소 PP 지원에 사용했고 이후 2019년 이 전 회장과 합의해 해당 양해각서를 해지한 후 미사용 기금 62억원을 이 전 회장에게 반환했다.
티브로드를 흡수합병한 SK브로드밴드는 해당 처분이 부당하다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고 청구가 기각되자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SK브로드밴드 측은 재판에서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는 민법상 위임 혹은 신탁법상 신탁으로 기부금이 티브로드에 귀속됐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도 이 전 회장이 해당 기부금을 회사에 단순히 신탁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티브로드에 100억원을 ‘신탁’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따라서 티브로드가 자기를 위한 용도로 기금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법인세 부과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배임죄로 처벌받은 이 전 회장이 티브로드가 입은 피해 변제를 위해 기금을 증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세무당국 주장에 대해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들이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채애리 법무법인 온조 변호사는 “행정법원은 소송에서 법인세 부과를 취소하라는 내용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린 것이어서 과세당국이 항소를 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항소하지 않더라도 과세당국은 기초 사실과 동일하면 징수 금액과 행정처분을 변경해 부과할 수 있으므로 과세연도 등을 검토해 법인세와 다른 별도 처분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