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투어웨이] 쉬운 코스 세팅이 정말 흥행과 연결될까

2023-07-16 11:00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이 열린 르네상스 클럽에서 고개를 떨군 채 플레이 중인 선수들. [사진=이동훈 기자]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노스 베릭의 르네상스 클럽(파70). 종잡을 수 없는 스코틀랜드 하늘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섰다. 스코틀랜드 일간지 스코츠맨 골프 기자 마틴 뎀프스터가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아. 스코틀랜드에 온 게 실감 나지"라며 반겼다.

그의 뒤로는 대형 LED 화면이 보였다. 대회(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가 중계되고 있었다. 화면은 수시로 전환됐다. 보기만 해도 고난의 연속이다. 티잉 구역, 러프, 페어웨이, 벙커, 그린 어디 하나 쉬운 곳이 없었다. 선수들은 화면 속에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녹였다.

티타임을 확인했다. 김주형은 오전 8시 32분 미국의 커트 기타야마, 스코틀랜드의 그랜트 포레스트와 한 조를 이뤘다. 10번 홀 티잉 구역에서 출발했다. 쉽게 티샷을 날리지 못했다. 매 순간 날씨가 바뀌고 바람이 바뀌기 때문이다. 

어제 맞바람이었던 곳이 오늘은 뒤바람이 됐다. 깃대 위치는 3야드(2.7m)라 표기됐지만 2야드(1.8m) 거리로 보였다. 경도 높은 그린은 공을 놓아주기도, 잡아주기도 했다. 

선수들은 스윙마다 결정해야 했다. 코스 자체도 어렵지만 순간 판단으로 순위가 바뀌었다. 한 갤러리는 "어제랑 완전히 달라. 다른 홀에 온 것 같네"라고 말했다. 김주형도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한(7번) 홀을 설명하면서다. 쥐어야 하는 클럽이 시시각각 바뀐다.

다른 홀, 한 갤러리가 "어떻게 저런 곳에 깃대를 꽂아놨지"라며 한숨을 쉰다. 무릎까지 오는 러프와 깃대 사이는 2.7m. 김주형은 러프 바로 앞 언덕을 공략했다. 공은 언덕을 타고 깃대 쪽으로 굴러 내려왔다. 홀까지는 1.5m. 지켜보던 갤러리가 일제히 손뼉을 쳤다. '골프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사는 스코틀랜드 갤러리가 한국 선수 플레이에 열광했다.
 
러프에 묻힌 자원봉사자. [사진=이동훈 기자]
선수들은 스코틀랜드 코스면 당연하다는 듯이 코스를 공략해 나갔다. 2위에 오른 김주형은 "좋아하는 코스"라고 치켜세웠다. 1라운드 9언더파 61타로 코스 레코드 타이기록을 세운 안병훈은 2라운드 이븐파 70타를 쳤다. 마지막에 출발해 오후 7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비바람이 강해졌고, 기온은 뚝 떨어졌다. 그래도 안병훈의 얼굴은 일그러지지 않았다. 야외 취재 구역에서 만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좋지 않은 날씨 속에서 배운 것이 있는지." 안병훈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없어요. 날씨가 안 좋으면 지킬 계획입니다. 이틀 합계 9언더파도 이곳에서는 잘 친 점수예요."

DP 월드 투어는 공식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대회 중 나온 안병훈의 어프로치 영상을 게재했다. '잠깐만, 뭐?!'라는 글과 함께다. 영상 속 안병훈은 그린 주변에서 깃대 오른쪽 뒤로 공을 날린다. 언덕에서 멈춘 공은 깃대 쪽으로 돌아내려 왔다. 안병훈은 태연한 표정으로 디보트 자국을 툭툭 치며 인사했다. 이 영상은 약 70만명이 봤고, 약 1000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이처럼 선수들은 누구 하나 코스, 세팅, 날씨를 불평하지 않았다. 로리 맥길로이, 스코티 셰플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은 오히려 "어려운 코스를 받아들이고 페어웨이와 그린을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라운드 결과 156명 중 77명이 컷을 넘었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8명 중 3명이 통과했다. 모두 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김주형, 안병훈, 이경훈)이다.

반면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를 대표하는 선수들은 힘을 내지 못했다. 주요 대회 우승자들이 모두 컷 탈락했다. 대회 3라운드가 열린 지난 15일, 이들은 티샷하는 선수를 바라보며 텅 빈 연습장에서 연습했다.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표정으로다.

30년간 DP 월드 투어를 홍보해 온 관계자에게 쉬운 코스 세팅과 점수, 흥행의 관계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누구나 점수를 줄일 수 있다면 사람들은 골프대회를 보지 않을 것이다. 누가 얼마나 많이 줄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과정이 중요하다. 쉬운 코스 세팅은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높아진 난도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길에 한 선수 매니저를 만났다. 그는 비가 쏟아지는 하늘과 일그러진 코스를 가리켰다.

"만약 '골프 신'이 있다면 여기 있는 것 같아.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를 기가 막히게 가려내거든. 갤러리는 그걸 보러 오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