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나토회의 승리 거둔 바이든…푸틴.시진핑의 다음 카드는?
아프칸 굴욕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과 현지인을 완전히 철수시키면서 미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인 아프간 20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지 거의 2년이 됐다. 철군 직전 미군은 장갑차와 공격형 헬기 등 100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아프간 정부군에 넘겨주었지만 탈레반 세력이 파죽지세로 수도 카불을 포위했다. 당시 아수라프 가니 대통령은 곧바로 해외로 도주했다. 이후 1975년 미군의 사이공 탈출을 연상시키는 극도의 혼란 상황이 전개되면서 아프간 전쟁이 초강대국 미국에게 굴욕을 남긴 또 하나의 '실패한 전쟁'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아프간 전쟁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헌장 제5조에 명시된 동맹국들의 집단자위권이 최초로 발동되었던 국제적 분쟁이기도 하다.
2001년 알카에다의 9·11 공격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을 지원하는 탈레반 정권의 축출을 위해 시작된 이 전쟁에 미국뿐 아니라 다수의 나토 우방국이 참전했다. 나토 헌장 제5조는 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가 공격을 받을 경우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개별 회원국들이 집단, 혹은 개별적으로 군사대응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연합군 형태로 많은 병력을 파병하거나 미국과 협력해 아프간 정부를 지원했던 동맹국들은 전쟁이 이런 식으로 허겁지겁 막을 내리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은 철군 일정과 방법을 두고 영국 독일 등과 긴밀한 협의나 조율을 하지 않아 불만을 샀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대통령 시절 터무니없는 방위비 증액 요구에 시달렸던 서유럽 주요 동맹국들 사이에서 아프간 철군 이후 미국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자 중국 견제와 동맹의 복원을 강조했던 바이든 행정부는 심각한 외교적 딜레마에 빠졌다. 특히, 당시 중국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지속하며 G7국가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술과 경제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오직 시간의 문제처럼 여겨졌다. 중국은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의 주도자로 기세등등했다.
2년 전과 비교해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과 분위기가 크게 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시진핑 국가주석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 양국간 '무한대의 파트너십'을 약속했다. 만약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쉽게 승리했다면 중국이 러시아에게 한 이 약속은 신의 한 수로 평가 받을 수도 있었을 법하다. 실패로 끝났지만 용병회사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프게니 프리고진의 무장반란 시도로 '스트롱맨'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도 큰 상처를 받았다. 이를 틈타 미국 주도의 서구 진영은 힘을 결집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러시아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통제력아 크게 약화된 푸틴 못지않게 푸틴을 지지했던 시 주석도 궁지에 몰려있다. 중국 경제가 리오프닝 이후에도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와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이 너무 오래 지속된 것이 가장 큰 실수로 지적된다. 또 하나 골칫거리는 부채이다. 2008년 이후 민간과 공공분야 부채가 매년 평균 10%포인트 상승했다. 부채가 지금은 GDP의 3배에 이르고 있지만 경기위축을 우려해 제대로 손을 못 대고 있는 실정이다. 저출산으로 노동인력도 급감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위안화 가치도 달러화 대비 12% 하락했다. 자연스럽게 중국이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국으로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도 수그러들고 있다.
우리는 함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서방국가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쉽게 승리를 했더라면 미국과 서방세계는 기세가 더해진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공세에 국제질서의 주도권 싸움에서 수세에 몰리거나 패배할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 전개는 분명 서방진영의 이러한 우려를 서서히 잠재우고 있다.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속국으로 만들려한 푸틴에 대한 지지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G7 국가들은 중국과의 '디리스킹'에 나서며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대중국 수출통제에 들어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지원이 강화되는 가운데 아태지역과 대서양 지역에서 미국의 동맹들은 군사협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모니터 하고 있는 중국은 군사적 모험에 신중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대만 해협 주변에서 중국의 위협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경제의 급한 불 끄기에 바쁜 중국은 군사비 지출을 급격히 늘리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저개발국가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사업들도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들은 미국과 서방진영이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경계를 풀면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는 2년 전 아프간 전쟁 철수과정에서 굴욕을 맛보았던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큰 외교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31개 나토 동맹국은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못했으나 사실상의 '조건부 신속 가입'을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주요 7개국(G7)을 합류시키고, 종전 뒤에도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장기적인 군사 및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또 회의 개최 직전까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반대로 불투명 했던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이끌어내면서 미국 언론들로부터 역시 그는 외교 전문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지난 4월 핀란드에 이어 스웨덴까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서 유럽 안보에서 전략적인 큰 패배를 안게 되었다. 반면, 외교의 백전노장 바이든 대통령에겐 본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룬 정상회의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나토 정상회담은 유럽이 다시 미국을 중심으로 안보를 강화시키는 전략으로 러시아 위협에 대처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푸틴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 반대를 전격 철회한 것은 튀르키예를 이용해 나토의 분열과 동맹 약화를 노렸던 푸틴에게 또 하나의 큰 타격이다. 바이든과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CNN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마음을 바꾼 것은 수개월 동안 진행된 외교의 산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회의에서 나토 가입에 대한 구체적 일정과 함께 확답을 달라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우크라이나가 미래에 나토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시 중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미국을 직접 전쟁으로 끌어들여 핵무기를 가진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령(80세)의 나이에 내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왜 우크라이나에 미국인들의 엄청난 혈세가 계속 투입되어야 하는지를 상기시켰다. CNN 등 미 주요 언론은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바라던 거의 모든 것을 이룬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를 떠나면서 이번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을 향한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는 함께다"라고 강조했다.
나토는 이번 회의에 A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들을 2년 연속 초청하여 인도·태평양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모색했다. 이는 나토의 집단방위 개념을 유럽은 물론 아태지역으로 확대해 중국이나 북한의 위험까지 관리하려는 바이든의 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나토가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러시아와의 연대에 대한 견제 의사를 분명히 한 가운데 중.러 양국은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 외교장관 회동에서 나토의 확장 의도에 맞서기로 뜻을 모았다. 중국의 외교 부문 1인자 왕이 공산당 중앙 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은 "소위 '아시아태평양판 나토' 도모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중국 외교부는 밝혔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수세에 몰린 푸틴과 시 주석이 향후 어떤 반격의 카드를 내놓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미·중 양국이 정찰풍선 사건으로 빚어진 날카로운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과 대화의 길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국과 고위급 대화를 통해 소통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부진한 경제를 살리려면 미국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지난달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 이어 지난주에는 재닛 앨런 재무장관이, 또 이번 주에는 존 케리 백악관 기후변화 특사가 중국을 방문한다. 양국이 이렇게 다방면에서 소통을 이어가다 보면 대만 해협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의 완화는 물론 세계 모든 국가들의 공통된 관심사인 기후변화와 관련된 공조 방안도 기대해 볼 만하다. 미·중간의 대화기류 속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급속히 냉각된 한·중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또 개전 500일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위해 시 주석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 푸틴의 마음까지 돌리게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전 세계는 환호할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