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중국경제한계론? 총체적으로 다시 보자
2023-06-29 06:00
최근의 한·중관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개의 뉴스가 있다.
하나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고 있다”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 고압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싱 대사의 발언은 양국 외교부가 상대국 대사를 초치하는 상황으로 번졌다. 한국 정부에 대한 강력한 견제구로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또 하나는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한국 수출선 1위로 등극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공급망 강화로 동맹국과의 교역을 늘린 반면 중국 정부는 제조업 국산화를 추진하면서 무역 패턴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22일 발표한 2022년 지역별 국제수지에 따르면 대중 수출액은 1220억 달러(약 175조원)로 전년보다 10% 가까이 줄었다. 반면 대미 수출액은 전년 대비 22% 늘어 1390억 달러로 불어났다. 수출액에서 대미가 대중을 앞지른 것은 2004년 이후 18년 만이다. 결정적인 배경은 미국의 한국자동차 수요 증가다. 세계적인 반도체 시장 침체에 따라 반도체의 대 중국 수출은 부진했다.
이 두 개의 뉴스는 서방에서 회자되고 있는 중국경제한계론(피크 차이나)과 맞물려 크게 부각됐다. 극히 일부지만 탈중국을 거론하는 세력도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중국을 총체적으로 파악해서 향후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에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6월 16일 베이징시에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를 만나 외국 기업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외국 기업(홍콩, 마카오, 대만 기업 포함)은 2022년 말 현재 4만3704개로 전년보다 0.5% 줄었고 연말 기준으로는 3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봉쇄를 노린 '제로 코로나' 정책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앞날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첨단 반도체 수출규제 등 대중 압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기업들의 투자전략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중국에서 7월 1일 시행하는 개정 반스파이법도 대중 투자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국가안전과 이익에 관한 정보 제공과 수집 혐의가 있다고 당국이 판단하면 단속이 가능해진다. 중국에 있는 외국인과 외국 기업에 적용을 확대하면 외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중국으로서도 경제의 안정 성장에 외국 기업으로부터의 투자는 빠뜨릴 수 없다. 정부가 지난 1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철회하면서 경제활동은 정상화됐다. 다만 봄 이후에는 수요 부족이 두드러져 경기 회복력에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기적으로도 경제 성장이 계속 감속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에서 2024년 중국의 실질경제성장률은 4.5%로 5%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2026년에는 3%대 성장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외자를 끌어들여 생산성을 높이는 중요성은 크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빌 게이츠와의 회담에서 양 국민의 우호가 계속되기를 희망한다며, 나아가 세계 각국과 광범위한 과학기술 이노베이션으로 협력해 나갈 의향을 나타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미국 전기자동차(EV)기업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 등 유력 경영자들의 중국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하계 다보스에 앞서 지난 3월 28일 중국 하이난성 보아오에서 열린 보아오 아시아 포럼도 반추해 봄직하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정재계 인사가 모이는 이 포럼은 중국이 주최하는 대형 국제회의로 '제로 코로나' 정책 종료 후 처음 열렸다.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참석했다. 미·중 갈등이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공급망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문제를 주제로 다뤘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기후변화 문제, 중국이 주도하는 광역경제권 구상 ‘일대일로’를 논의했다.
리창 총리는 이 포럼의 강연에서 “무역보호주의와 디커플링(분단)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등 대중 수출 규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세계화의 지속적인 추진을 표방하면서 첨단기술을 둘러싼 대 중국 포위망에 대한 경계감을 내비쳤다. 그는 세계화를 이끌어가는 자세를 강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리창 총리는 일방적인 제재 남용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 중국 수출 규제 외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도 견제했다. 그는 미국·유럽·일본 등 서방 진영은 중국과 러시아 대응에 보조를 맞추는 사례가 늘었다며 이를 ‘새로운 냉전’이라고 형용했다.
하계 다보스 회의든 보아오 아시아 포럼이든 중국의 자세는 정해져 있었다. 미국 등의 움직임을 반세계화라고 비판하는 한편 중국 스스로는 세계화의 선도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무역자유화를 촉진해 안정적이고 원활한 글로벌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일정한 패턴이다.
중국은 세계의 여론을 의식해 보아오에서 ‘디커플링’을 반대했고, 하계 다보스에선 ‘디리스킹’에 반대했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아시아의 잠재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창 총리는 보아오에서 “디지털 경제와 친환경 녹색경제에서 폭넓게 협력하면 아시아가 세계경제 회복과 성장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국가에 대항하기 위해 아시아의 맹주로서 구심력을 높이겠다는 속셈을 드러냈다. 중국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화를 심화시키는 수단으로서 중국이 주도하는 광역경제권 구상 '일대일로' 외에 동아시아의 지역적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언급한다. 대조적으로 2021년 9월 가입을 신청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세계화 추진을 강조하며 간접적으로 미국을 비판하는 리창 총리의 보아오 포럼 연설은 지난 2022년 4월 같은 포럼에서 비디오 연설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내용과 겹치는 점이 많았다. 리창 총리는 그때에도 중국 경제가 3월 들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에 자신이 있고 실현 능력도 있다”고 강조했다. 연초에는 5% 안팎으로 정한 2023년 경제성장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고 엄격한 경기 인식을 보였지만 이때는 긍정적인 톤으로 말했다. 국내의 구조 문제에서도 ‘중대한 리스크를 해소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은행의 자본부족 등 금융불안의 싹을 잘라내 경제적 혼란을 초래할 우려마저 있는 시스템 리스크 발생을 막을 뜻을 내비쳤다. 2022년 인구감소 사회에 돌입해 저출산·고령화가 향후도 급속히 진행된다는 중장기적인 과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경제를 읽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연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1월 16일~20일)이다. 이 다보스 포럼에서도 중국은 경제 회복에 기대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류허 중국 부총리는 “2023년 경제성장률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중국의 2022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3.0%에 그쳤다. 하지만 코로나19 봉쇄를 노린 '제로 코로나' 정책이 끝나면서 사람과 사물의 흐름이 되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장래 불안을 높이던 엄격한 행동 규제가 사라짐으로써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 등 내수가 회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수입은 분명히 증가해 세계경제에 기여할 것이며, 경기 안정을 중시해 ‘경제의 기둥’이라고 평가하는 부동산 업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류허 부총리가 발표했다.
이렇게 하계 다보스 회의와 보아오 아시아 포럼, 스의스 다보스 포럼을 연계해 보면 중국 경제는 회복되고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중국이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아가는 듯한 모습도 비쳐진다. 다만 ‘피크 차이나’에 대해선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중국공장 일부 매각과 삼성전자의 대중 반도체 수출 급감 같은 현상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중국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대국적(大局的) 시각이 긴요한 시점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