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글로벌 질서 재편 … 위기를 기회로 몸값 올리는 국가들

2023-06-22 20:47
일본을 필두로 인도·브라질·남아공·인도네시아·사우디·이란 등도 대열에 합류

[김상철 교수]




최근 미·중 관계에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평행선을 달리던 갈등의 고리를 잠시 내려놓고 화해의 물꼬를 트고 있다.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상호 인정하는 계산법에 맞아떨어진 셈이다. 상황적으로 보면 중국의 입장이 더 다급하다. 가까스로 시진핑 3기가 출범하였지만 리오프닝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민심은 흉흉해지고 자칫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돈다. 미국 바이든 정권은 곧 재선(再選) 레이스에 돌입하게 된다. 중국과의 마찰을 필요 이상으로 에스컬레이터시킴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이 정권 재창출에 먹구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워싱턴 판단이다. 지금은 사태의 확대가 아닌 줄여야 할 시점이라는 인식의 궤를 양측이 공유하고 있는 결과로 풀이된다.
 
미국과 중국이 으르렁거리거나 머리를 맞댈 때 서로 주고받는 말이 있다. 중국은 항상 미국에 존중(尊重)을 이야기한다. 미국과 중국은 대등한 국가인 만큼 중국에 대해 이에 걸맞게 대우하라고 주문한다. 이 세계에는 미국의 힘만 있지 않고 미국에 반대하는 세력이 분명하게 존재하며, 그 힘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중국에 대해 미국은 항상 국익(國益)을 거론한다. 중국이 미국의 이익에 반(反)하는 행위에 대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미국은 이를 확장해 미국에 더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이익을 훼손하는 공동의 적으로 중국을 몰고 가려는 의도가 강하다. 미국의 대외 전략이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위험 제거)’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 기인하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요동치는 글로벌 질서 변화에서 볼썽사납게 된 국가가 바로 러시아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오히려 악수가 되어 반미 세력의 수장 자리를 중국에 내주고 갈수록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나쁜 지도자를 만나면 국가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러시아 편에 섰던 국가들도 점차 중국 편으로 속속 편입한다. 겉으로는 중국과 손을 잡고 있지만 러시아 속은 썩어 문드러질 정도다. 설상가상으로 전황도 러시아에 유리하지 않게 전개되고 있다.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러시아의 위상은 이전보다 훨씬 더 약화할 것이며, 말 그대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미국과 맞수로 한때 세계를 양분하던 러시아의 말로가 너무 비참하다.
 
패권 국가가 된 이후 미국의 대외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름이 없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시작된 1차 냉전 시기엔 가상의 적인 러시아와 잠재적 적인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때 적이었단 패전국들을 우방으로 끌어들이면서 미국의 힘이 분산되는 것을 억제해 왔다. 유럽에서는 전통 우방인 영국·프랑스에 더해 독일에 대한 경제적 부흥과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시아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일본을 적극적으로 밀면서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대항마로 키웠다. 그러나 1980년대 일본의 경제력이 미국을 위협하자 플라자 합의를 통한 엔화 반강제 절상과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싹수를 자르면서 잃어버린 30년의 도화선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서유럽이 동유럽을 끌어안는 EU 통합으로 미국을 위협하기도 했지만 분리 전술로 유럽의 꿈을 중도하차시켰다.
 
글로벌 질서 재편 위기이지만 기회로 삼는 국가들의 전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마찰이 지구촌에 2차 냉전을 촉발했다. 미국과 중국 간 지루한 공방전에 신물이 나던 시기에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 다시 세계의 진영을 가르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겉보기에는 미국 편, 아니면 중국(+러시아) 편 중 어디에 설 것인지를 두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안을 들여다보면 두 진영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교묘하게 존재감을 키우는 국가들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이지만 누구 편도 들지 않으려는 너스레를 떤다. 당장 경제적 이익을 위해 중국 편에 서는 것이 더 유리하다. 그렇다고 중국 편을 일방적으로 들지 않는 이유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자칫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양다리를 걸친다.
 
잘만 처신하면 몸값을 올리면서 반사이익을 챙긴다. 이러한 전략이 충분히 먹혀들어 간다. 대표적인 나라가 인도·브라질·남아공·인도네시아·베트남 등이다. 이들은 지난 6월 일본에서 개최된 G7 회의에 초청국 자격으로 참가했다.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도 이러한 행렬에 동참한다. 전통적으로 사우디는 미국 편, 이란은 중국 혹은 러시아 편이다. 중동에 대한 석유 의존도가 낮은 미국보다 중국 편에 서야 이익을 더 챙길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심지어 중국은 중동의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 간 화해를 중재하고 나설 정도로 발을 깊숙이 들인다. 이에 미국이 적지 않아 당황해하는 분위기다. 한편 이란은 미국의 초조함을 역이용하여 핵 동결과 경제 제재 해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앞마당이던 중동이 중국이나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한 미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또 눈여겨봐야 할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글로벌 신(新)냉전 체제를 기화로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에서 탈출하는 재도약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이 꺼내든 반도체 산업 공급망 재편에 일본이 지정학적 수혜를 챙기고 나섰다. 반도체 공급국인 한국이나 대만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점을 내세운다. 세계적 반도체 소재·장비업체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이 미국의 전략을 백업할 수 있는 강력한 후원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들이 가진 무기를 최대로 활용해 전략적 우위를 점령한다. 30년 만에 반도체 부흥의 꿈을 실현해 나갈 기세다. 한국이 ‘칩4 동맹’에 합류하고 있다지만 미·일·대만이 실질적 ‘칩3’ 체제를 강화하면서 반도체 생산기지 재구축에 한창이다. 실제로 일본의 반도체 관련 주가는 연일 상승세다. 한눈팔거나 방심하면 이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글로벌 질서 재편이 위기이지만 또 다른 기회로 삼는 국가들의 전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