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코로나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공무원 인기 하락에 노량진 상권 '한숨'

2023-06-21 19:03

21일 찾은 노량진 1동 대로변에서는 상가 임대 간판을 내건 빈 점포를 종종 찾아 볼 수 있었다. [사진=임종현 기자]

"이 근방에서 15~20년 넘게 부동산 중개업을 하신 분들도 지금이 가장 최악이라고 해요. IMF나 코로나19 때보다 심하다고 하니 말 다한 거죠" (노량진 A중개업소 대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의 메카'인 노량진 상권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 침체가 지속 중인 가운데 박봉과 보수적인 조직문화 등으로 공무원 준비를 포기하고 노량진을 떠나는 수험생들이 늘면서 상인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공실은 증가하는 분위기다. 

21일 점심 시간대에 찾은 노량진 1동 학원가 인근. '상가 임대' 문구를 써 붙인 빈 점포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노량진 고시촌의 상징이던 컵밥거리에서도 더 이상 긴 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코로나19 때보다 더 힘들다"는 인근 상인들의 얘기가 위축된 상권을 대변했다. 

노량진 일대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한 60대 남성은 "아침부터 가게 문을 열었지만, 찾는 손님들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노량진 상권에 손님 발길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으로는 주요 수요층인 공시생이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 경쟁률은 22.8대 1이었다. 지난 1992년(19.3대 1) 이후 31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달 10일에 실시한 지방공무원 9급 공채 지원자 수는 15만487명으로 지난해 19만9496명보다 4만명 이상 줄어들어 지난 2019년(24만5677명) 이후 4년 연속 감소 추세다. 

상권이 침체하면서 노량진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 중 폐업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빵집을 7년째 운영 중인 사장 김모씨(54)는 "그간 공시생을 포함한 학생들 덕분에 가게가 운영됐는데 최근 몇년간 공시생 수가 줄면서 매출이 많이 줄었다"며 "가게를 정리하기 위해 여러 부동산 중개업소와 상담 중"이라고 말했다.  

상가 공실률도 높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 지역별 공실률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노량진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17.7%로 지난해 4분기 6.5%보다 11.2%포인트(p) 증가했다. 올해 1분기 서울 전체 소규모 상가 공실률(6.3%)을 크게 웃도는 수치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1분기(12.6%)보다 더 높다. 

A중개업소 대표는 "경제가 침체한 시기에 공시생 수가 줄어 수익이 줄자 상가 임대 문의가 많아졌다"며 "특히 요즘은 학원가 공실률이 매우 높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만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대폭 내려 공실을 채우려는 시도는 별로 없는 상황이다. 상가를 임대하면 10년간 임차인을 마음대로 내보낼 수 없고 임대료 상한선이 5%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노량진 B중개업소 관계자는 "한번 임대료를 내려주면 나중에 임대료를 올리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공실인 채로 놔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임대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량진 상권이 당장 회복되기는 어렵다면서 노량진 재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돼야 상권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고준석 제이에듀 투자자문 대표는 "공시생이 줄어든 가운데 최근에는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수업을 듣는 수험생도 많아 과거만큼 상권 회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며 "학원 밀집 지역이 노량진 제3구역과 접해있는데 이 구역이 재개발돼 배후지로 들어가면 상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