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조사 대비 PC 교체한 HD현대중공업 직원 무죄…法 "증거인멸죄 성립 안해"

2023-06-20 15:26

HD현대중공업 건조 필리핀 호위함[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조사위원회의 조사를 앞두고 회사 PC와 하드디스크 등을 바꿔 증거를 대규모로 인멸한 혐의로 기소된 HD현대중공업 임직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형법상 증거인멸죄가 인정되려면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할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들의 행위는 단지 공정위 조사를 대비한 것이라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박병곤 판사)은 20일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 등 HD현대중공업 임직원 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 등은 2018년 7~8월 HD현대중공업이 하도급법 위반 관련 공정위 직권조사와 파견법 위반 관련 고용노동부 수사를 앞두고 있자, 임직원이 사용하는 PC 102대와 하드디스크 273개를 교체해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공정위는 HD현대중공업이 2014∼2018년 사내 하도급업체 약 200곳에 선박·해양플랜트 제조작업 4만8000여건을 위탁하며 하도급 대금 감축을 압박했다고 봤다. 또 계약서도 작업을 시작한 후에야 발급했다고 판단해 2019년 HD중공업에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증거를 대규모로 인멸하며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것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HD현대중공업 법인에 1억원, 증거 인멸을 시도한 직원에게 2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따로 형사 조치는 하지 않았다. 이에 2020년 6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이를 문제 삼으며 검찰에 고발했다.

재판에서는 A씨 등에게 HD현대중공업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할 의도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현대중공업의 주된 관심사는 검찰 수사가 아닌 공정위 조사 대비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들의 행위 역시 형사사건이 아닌 공정위 조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들이 공정위 조사를 방해하긴 했지만, 검찰의 증거만으로는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의 고의가 명백히 있었다고 볼 수 없어 증거인멸죄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HD현대중공업 측은 선고 후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향후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직원 교육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