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QR코드로 '단일 경제' 첫발…변수는 '미얀마'

2023-06-14 09:38
아시아 비즈니스 리뷰
QR코드 결제로 국경 잇는다
미얀마 두고 의견 분분…통합 최대 걸림돌

 


“‘프렌즈 투 올’(friends to all) 전략을 계속하겠다. 우리는 미국, 중국, 일본과 친구가 되고 싶다. 아세안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

1967년 설립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하 아세안)이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아르자드 라지드(Arsjad Rasjid) 아세안 기업자문위원회(ASEAN-BAC) 의장은 닛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주요 선진국이 아세안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급망 분열은) 모든 이와 비즈니스를 하고자 하는 아세안에 불행한 일”이라며 “(중국이 아세안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매우 빠르게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방 주도의 공급망 분열에 아세안의 참여를 원한다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한국이 아세안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아세안은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10개 회원국의 경제 단일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세안 각국 정상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라부안 바조에서 열린 제42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지역 경제 통합을 심화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신냉전 흐름과 공급망 혼란, 세계 주요 중앙은행의 긴축 통화정책 가속화가 촉발한 세계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회원국이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통합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국가 간 결제 시스템 구축을 꼽았다. 통합된 결제 시스템을 통해 아세안을 단일 시장으로 묶겠다는 포부다. 또한 달러화, 위안화, 유로화, 엔화 등 외부 통화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아세안 각국의 현지 통화 거래를 촉진하려는 목적도 있다.
 
문제는 아세안 내부에서 회원국 간 ‘프렌즈 투 올’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내전을 겪고 있는 미얀마를 두고 회원국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민주적인 나라들은 미얀마 군부에 비판적이나, 나머지 일부 회원국들은 미얀마 군부와 손을 잡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얀마를 둔 아세안의 분열은 1967년 아세안이 창설된 이래 가장 큰 위기”라고 평했다.
 
QR코드 결제로 국경 잇는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양국은 지난달 루피아화와 링깃화 간 직접 거래의 문을 열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인 말레이시아네가라은행과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인 인도네시아은행이 QR코드를 통한 양국 간 결제 시스템을 개시한 것이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에 여행을 온 말레이시아인은 현지 상점에서 휴대전화로 QR코드를 스캔만 하면 상품 및 서비스 비용을 바로 지불할 수 있다. 결제는 미국 달러화가 아닌 각국의 현지 통화로 정산되기 때문에 환전 과정이 아예 없다. 또한 비자나 마스터 등 신용카드 해외 결제 서비스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도 없다. 거래 환율은 각국 중앙은행이 결정한다. 말레이시아인은 QR 결제 시스템 두잇나우(DuitNow)를, 인도네시아인은 큐리스(QRIS)를 활용하면 된다.

아세안 기업자문위원회의 판두 파트리아 샤흐리르 결제 시스템 그룹 부문장은 “아세안 QR코드는 결제 시스템을 더욱 원활하게 만들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QR코드를 통해 최대 30%에 달하는 거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세안은 QR 결제 시스템 보급에 서두르고 있다. 올해 3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NETS-두잇나우 QR코드 결제 연계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는 가맹점 거래에만 국한되지만, 연말까지는 개인 간 송금이 가능해진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의 결제를 연결하는 QR코드 결제 시스템도 구축돼 있으며, 싱가포르와의 연결도 조만간 구현될 예정이다.
 
QR코드를 사용하면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결제가 수월해진다. 또한 해외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은 더 쉽게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다. 관광객들 역시 환전의 번거로움 없이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 지난 2019년에 약 300만명에 달하는 말레이시아 관광객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가 없는 아세안 내 이주노동자는 QR코드를 이용하면 된다. 인도네시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의 본국 송금액은 6억3835만 달러(약 8200억원)에 달했다.
 
톰 렘봉 전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청장은 QR코드 결제 시스템은 아세안을 단일 시장으로 묶기 위한 첫발이라고 평했다. 그는 “아세안 중앙은행들이 지불 시스템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 환율 변동이란 기술적 장애를 극복한 것에 감사한다”며 경제 통합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QR코드 결제를 통해 아세안 회원국의 통화 가치를 방어할 수 있다고 봤다. 예킴렝 말레이시아 선웨이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 겸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 산하 재정자문위원회 위원은 “결제가 현지 통화로 이뤄지기 때문에 QR코드 결제는 미국 달러 환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잠재적인 달러 충격에서 금융시스템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양국 간 소매 거래, 관광 및 상업 활동을 강화하고 지역의 금융 통합을 가속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양국 소상공인중소중견기업들(MSME)은 본국을 넘어 상대국 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다. 판두 부문장은 아세안의 7000만에 달하는 MSME가 QR코드 결제를 통해 아세안 역내 시장을 넘나들며 상품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아세안은 QR코드 결제 시스템이 알리페이, 위챗페이, 비자, 마스터카드, 구글페이 및 애플페이 등 거대 플랫폼과도 연결돼야 한다고 본다. 렘봉 전 청장은 "이를 통해 전 세계 관광객과 소비자가 직접 또는 멀리서 아세안에서 쇼핑하고 소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두고 의견 분분..통합 최대 걸림돌
문제는 지난 1997년 아세안에 가입한 미얀마다. 미얀마 내전이 2년이 넘게 지속되면서, 아세안의 통합을 가로막고 있다.

탓마도(Tatmadaw)라 불리는 미얀마군이 선출된 정부를 축출한 이후로 130만명 이상의 버마인이 쫓겨났고, 3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미얀마 국민 5400만명 가운데 거의 절반이 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있는데, 이는 내전이 시작되기 전의 두 배 이상이다.

이러한 미얀마 군부에 대한 아세안 회원국 간 의견이 분열되면서 통합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얀마 이웃 국가들은 분쟁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마비돼 있다”며 “이는 지난 5월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고 짚었다. 이어 “(미얀마를 둔 아세안 회원국 간) 갈등은 1967년 창설된 이래 이 블록의 가장 큰 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정상회의가 열리기 며칠 전 미얀마에서 구호 활동 중이던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외교관 차량이 습격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아세안의 미얀마 대응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컸다.

그러나 올해 아세안 의장국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은 미얀마의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미얀마의 5개 항 이행과 관련해 “솔직히 말해야 한다. 큰 진전이 없다”고 토로했다. 아세안 정상들은 지난 2021년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폭력 중단 등 5개 항에 합의했으나, 미얀마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미얀마 문제에 대해 완전히 분열된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비교적 민주적인 나라들은 미얀마 정권에 비판적이나, 나머지 권위주의적 정권은 그렇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아세안 회의 후 유출된 메모에 따르면 일부 회원국들이 미얀마 군부를 정상회의에 다시 초대하는 걸 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이 미얀마에 우호적인 입장이라고 전했다. 2년 연속 미얀마 장성들은 아세안 정상회의에 초대받지 못했다.

이러한 분열 속에서 중국 역시 미얀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초 미얀마를 방문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포함된 순방 일정에서 미얀마는 친 부장이 유일하게 방문한 동남아시아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