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페트병·종이빨대 우유…설계부터 자원 순환성 높인다

2023-05-14 16:00
2018년 순환이용성 평가제…첫해 23곳 참여
환경산업기술원, 화석연료 감축·재활용 확산
내년 1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시행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사진=아주경제 DB]

'버려진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들었습니다.' 요즘 의류매장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안내 문구다.

최근 페트(PET)병을 재활용해 만든 옷과 신발, 가방 등 다양한 제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민 환경 의식이 높아지고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기업들도 자원 순환 재료를 활용한 제품을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제도적 뒷받침도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다. 내년 1월에는 플라스틱 생산에 쓰이는 화석연료를 줄이고 제품 순환 이용을 높이기 위한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도 시행에 들어간다. 
 
페트 더 투명하고 가볍게···제품 설계부터 순환 이용성↑
14일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이 2024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순환경제 완성'을 위한 일환이다. 기존 자원순환기본법을 전면 개정한 이 법은 제품 설계부터 생산, 유통, 소비, 재활용까지 전 과정에서 자원 순환성을 높여 지속 가능한 순환경제사회 조성을 목표로 한다. 

순환경제로 전환하려면 폐기물 발생 이후인 재활용 단계뿐 아니라 제품 전 과정에 걸친 순환성 제고가 필요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펴낸 '에코디자인 당신의 미래' 보고서를 보면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가운데 80% 이상이 설계 단계에서 결정된다.

이에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은 설계 단계부터 순환 이용성을 고려하여 제품을 만들도록 '순환 이용성 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재질·구조 등 일부 원인 때문에 제품이 순환 이용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을 막고자 순환 이용성 저해 요소를 평가하고 제조사가 생산 단계에서 이를 개선하도록 돕는 제도다.

페트병 재활용 제품을 만들려면 재활용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페트가 필요하다. 무색 투명한 몸체에 라벨이 없는 페트 용기여야만 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순환 이용성을 높이려면 무색 투명한 제품 생산이 중요한 것이다.
 

롯데칠성음료 '칠성사이다' 페트병 개선 전(왼쪽)과·후. [사진=한국환경산업기술원]

2018년 순환 이용성 평가를 시작할 당시에는 대형마트에서 파는 194개 제품 중 약 35%가 유색 용기였다. 라벨을 분리하기 어려운 제품은 98%를 넘었다. 제도 시행 후 변화가 시작됐다. 롯데칠성음료·서울장수 등 23개 업체가 순환 이용성 평가에 참여해 페트 용기 24종을 무색 투명하게 바꾸었다. 71개 제품은 라벨 접착제나 구조를 변경해 라벨이 쉽게 떨어지게 했다.

2021년부터는 생산에 쓰이는 플라스틱 양을 줄이는 데 나섰다. 그 결과 먹는 샘물 '삼다수'를 생산하는 제주도개발공사를 포함한 총 15개 업체가 페트병에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라벨 제거 제품을 늘렸다.

금속 제품 사용도 줄여나갔다. 페트 용기 안에 금속 조각이 있으면 재활용 과정에서 기계장비에 마모를 일으키고, 재질 가치를 떨어뜨린다. 샴푸·보디워시·주방세제 등은 금속 스프링이 있는 펌프식 페트 용기를 주로 쓰는데 이를 플라스틱 스프링으로 바꾸도록 유도했다. 플라스틱 스프링은 페트 재활용을 방해하지 않고 자체로도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산업기술원은 환경부 지원 아래 펌프 복원력과 탄성력을 유지할 수 있는 플라스틱 스프링을 개발해 전환에 힘을 보탰다. 현재 아모레퍼시픽 샴푸 제품 '려'와 애경 주방세제 '트리오' 등에 기술원이 만든 플라스틱 스프링이 쓰이고 있다. 

환경산업기술원은 최근 5년간 평가한 제품은 125개 기업이 생산하는 470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416개에 대해 개선을 요청했다.
 
일회용품 사용 줄이고 진공단열재 재활용 높이고

빨대 재질 개선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2년 11월부터 매장 내 플라스틱 빨대 같은 일회용품 사용 제한을 확대 중이다.

남양유업과 서울우유 협동조합은 순환 이용성 평가를 거쳐 플라스틱 대신 종이빨대를 부착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남양유업은 순환 이용성 평가 대상 중 24.5%에 해당하는 1억2700만여 개, 서울우유는 23%인 8000만여 개 제품에 들어가는 빨대를 종이 재질로 바꾸었다.
 

종이빨대를 부착한 서울우유 '멸균우유'. [사진=한국환경산업기술원]

복합 단열재인 진공단열재를 사용한 진공단열패널(VIP) 냉장고와 관련한 개선 노력도 이뤄졌다. 진공단열재는 높은 단열 효과가 있지만 재활용률은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이 단열재 표면이 찢어지면 건강에 해로운 유리섬유 입자들이 외부로 나올 수 있고 폭발성 성분이 있어서 파쇄 공정에서 폭발·화재 사고 위험도 있다. 그래서 진공단열재는 그간 재활용되지 않고 모두 버려졌다. 

환경산업기술원은 VIP 냉장고를 분리 처리할 수 있게 제품에 관련 정보를 표시하는 대책을 제시했다. 진공단열재 표면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재사용까지 할 수 있는 방안도 내놓았다.

삼성전자·LG전자·위니아는 기술원 측 순환 이용성 평가 결과를 수용해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E-순환거버넌스와 함께 VIP 냉장고 전용 표준 라벨을 개발했다. 라벨에는 진공단열재 위치 정보와 폭발성 성분 함유 여부 등이 담겼다. 이렇게 만든 라벨을 557종 냉장고에 붙여 쉬운 분리와 재사용을 돕고 있다. 또한 환경부 연구개발(R&D)을 통해 진공단열재를 찢김 없이 안전하게 분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으로 VIP 냉장고에서 분리한 뒤 재사용 공정을 거친 진공단열재는 기존 제품과 유사한 성능을 유지했다.

최흥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은 "순환 이용성 평가제도를 통해 기업이 설계 과정에서부터 제품 환경성을 고려하고 개선 노력을 기울이도록 유도해 순환경제사회 구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