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부동산 폭등에 2030 민심 이탈…일당독재 균열 만들까

2023-05-10 10:46
상승폭으로 홍콩ㆍ뉴욕ㆍ런던 제친 싱가포르
부동산 시장 폭등으로 청년층 집권여당에 이탈 조짐
부동산 투자세력으로 외국인 때리기 반복

싱가포르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 금융허브’ 싱가포르의 입지가 흔들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를 못 버티고 외국인 근로자들이 싱가포르를 떠나고 있다. 일부 기업마저 임대료 부담에 싱가포르 철수까지 고려하는 상황이다. 친기업 환경과 유통 중심지란 매력에 이끌려 싱가포르로 몰려온 해외 인재와 기업들이 살인적 임대료에 떠밀리듯 싱가포르를 떠나고 있다.
 
사실상 일당독재인 싱가포르 정부의 입지도 위태롭다. 총선을 2년여 앞둔 상황에서 임대료 폭등 여파에 2030을 중심으로 민심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당국은 외국인 투기에 따른 임대료 상승을 막겠다며 ‘강력한 세금 인상’이란 칼을 빼들었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은 요원해 보인다.  
 
고금리로 부동산 시장 침체기인 세계…거꾸로 가는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부동산 가격이 하늘을 찌를 기세로 폭등하면서 집값 안정이 최우선 국정 어젠다로 부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9일 싱가포르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해지자 시민들이 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는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이 의회 의석의 90%를 장악한 사실상 일당독재 국가다. 1965년 독립 이래 싱가포르 정부의 역대 총리도 모두 인민행동당 소속이었다. 일당 독재에 가까운 정치적 조건에서도 대규모 민심 이탈 조짐이 나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는 인민행동당의 최우선 과제다. 70대의 고령인 리셴룽 현 총리는 미래 세대에 정치 권력을 이양하려고 한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의 의석 점유율은 89% 의석에 그쳤다. 사실상 일당 독재인 싱가포르에서 역대 가장 낮은 의석 점유율이었다. 위기감이 감돌자 리 총리는 인민행동당에 "정치는 청년 세대의 철저히 다른 삶의 열망과 우선순위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총선을 불과 2년 남긴 현 시점에서 청년 세대 삶은 부동산 문제로 엉망이 되고 있다. 임대료와 집값 모두 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세계 주요 국가가 고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부동산 침체기에 들어섰지만, 싱가포르만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부동산 정보업체인 나이트 프랭크 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지난해 4분기 주택 임대료가 1년 전보다 28.2% 올라 미국 뉴욕(18.6%), 영국 런던(17.8%), 캐나다 토론토(15.0%) 등을 제치고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임대료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도 매섭게 올랐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 부동산 가격은 전년 대비 29.7% 상승해 2007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실제 일부 싱가포르 국민은 언론에 인민행동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일당정치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테크 기업에서 근무해온 근로자 소남은 블룸버그통신에 "그들(인민행동당)은 밀레니얼 세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이들이 싱가포르에서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외국 노동력·자본 사라질까 '전전긍긍'
싱가포르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은 또 다른 문제점으로 이어진다. 필수품인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외국 자본과 노동력의 부담도 가중된다. 이들의 이탈이 본격화되면 싱가포르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싱가포르는 이른바 개방형 경제 체제다. 해상 무역에 유리한 지리와 적극적인 세제 정책을 통해 외국 자본 유치에 성공했다. 또한 주변 국가들로부터 노동력을 확보했다. 도시 국가라고 불리는 작은 영토와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주요 국가로 발돋음한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임대료 폭등은 싱가포르 경제에 치명적이다. 임대료가 오르면 해외 인재의 싱가포르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싱가포르 주택 임대료가 올해 엄청난 상승세를 보이면서 기업들이 직원들의 주거비를 일부 지원해주는 한편 이들을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할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근로자가 싱가포르를 떠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인구 560만명 중 28%가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개 주택을 임대하는 형식으로 생활한다. 누구보다도 임대료 상승의 직격탄을 받는 계층인 것이다. 

호주 국적 금융업 종사자 벤 던은 알자지라 통신과 만나 "싱가포르의 용광로 같은 다문화사회, 화창한 기후, 살기 좋은 환경에 끌렸다"라며 "싱가포르에 사는 것을 나와 가족은 좋아하지만 이번 임대료 상승은 심각하다. 우리는 오는 6월 고국인 호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벤 던이 살던 집의 임대료는 몇 달 만에 7000싱가포르 달러(약 700만원)에서 1만1000 싱가포르 달러(약 1100만원)까지 치솟았다. 

물론 상황이 조금 나은 경우도 있다. 기업에서 임대료를 지원해주는 경우다. 하지만 이들도 임대료 상승 폭을 오롯이 보전 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임대료를 보전받더라도 그 부담은 기업이 짊어지게 된다. 비용의 증가로 일부 기업은 싱가포르 철수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싱가포르 유럽 상공회의소의 지난 3월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주거 임대를 갱신한 외국인의 절반은 임대료가 40%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286개 회사 가운데 40%가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월 1500싱가포르 달러 이상을 추가 지원해야만 했다고 답했다. 상황이 악화할 경우 기업의 70%는 직원을 싱가포르가 아닌 다른 나라로 재배치할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상 중국인 겨냥...외국인 취득세 강화 꺼냈지만 효과 미지수

싱가포르 당국이 찾은 부동산 시장 불안정의 원인은 외국인 투자자다. 핀셋 전략 카드까지 꺼내 수요 잡기에 나섰지만, 현재까지는 그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이 짙다.  

싱가포르 당국은 차이나머니가 급격하게 밀려오면서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을 야기했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인 국적별 부동산 소유자 변화 수치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국 투자자는 싱가포르에서 2016년 이후 가장 큰 외국인 구매자다. 

특히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 해외 투자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 싱가포르 당국의 판단이다. 중국 투자자들이 코로나 대유행으로 경제활동이 봉쇄되는 극단적인 경험을 겪으면서 자산 분산의 필요성을 체감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외국인들은 싱가포르 민간 아파트 물량의 6.9%를 매수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중국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부동산을 대거 구매하다보니 주택 가격도 임대료도 급등한 것이다. 

싱가포르 당국은 수요 억제 카드를 꺼냈다. 세금을 강하게 부과해 부동산을 사려는 심리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대상을 외국인 구매자로 특정했다. 

싱가포르에서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세금은 취득세(BSD)와 추가 취득세(ABSD) 등 두 가지다. 이 중 추가 취득세는 부동산을 구매하는 이의 국적 및 보유 부동산 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싱가포르 당국은 지난 4월 28일 부동산 당국은 ABSD를 60%까지 상향 조정하고 이날부터 바로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30%였던 기존 세율이 2배로 뛴 것이다. 영주권자도 2주택 이상을 매입할 경우 ABSD를 20% 납부하도록 했다. 브랜든 리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는 "외국인 구매자에 대한 세율 조정이 말도 안 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가혹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2025년 총선을 의식한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 대책에도 싱가포르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 여부는 미지수다. 창 슈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싱가포르로 자금을 옮기려는 열풍을 식힐 수 있지만 예상만큼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세율 조정만으로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수요 억제보다 공급이 우선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주택 공사 속도를 올려야 하고 주거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공급망 혼란 등으로 공사 속도가 미진한 점을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 중 하나로 언급했다. 

싱가포르의 주택 정책이 구시대적이란 비판도 많다. 싱가포르의 HBD(공공아파트) 구매는 기혼자와 미혼자를 엄격히 구분한다. 미혼자는 35세까지 아파트를 구매할 수 없다. 반면 기혼자는 21세부터 자격이 주어진다. 

당장 야당은 여당의 약한고리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야당인 노동당은 지난해 미혼자의 주택 구입 가능 연령을 28세로 낮출 것을 제안한 상태다. 블룸버그통신도 청년 기술 노동자를 중심으로 정부가 미혼자의 주택 구입 가능 연령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나온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