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62조원 반도체법 발표했으나…"북미ㆍ亞 생산 따라잡기 힘들 것"

2023-04-19 16:42
적은 예산과 복잡한 절차가 한계로 지목



 

반도체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반도체 산업 강화를 위한 EU 반도체법(EU Chips Act) 최종안을 발표했다. 법안 시행을 위한 중요 관문으로 여겨지는 '제3자 협의'까지 이뤄냈지만, 막상 북미와 아시아의 반도체 산업을 쫓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적은 예산과 절차가 복잡한 관료주의가 한계를 만든다는 지적이다. 

로이터 통신은 18일(현지시간) EU의 반도체 지원법 합의 소식을 전하며 지원 규모가 미국 반도체 지원법보다 작다고 평가했다. EU 반도체 지원법은 430억 유로(약 62조원·470억 달러)인 반면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은 520억 달러(약 68조원)으로 알려졌다. 

앞서 유럽의회는 이날 오후 EU 반도체 지원법 3자 협의 최종 타결 소식을 전했다. 3자 협의는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와 27개국을 대표하는 이사회, 유럽의회가 세부 내용을 확정하는 일이다. 이사회와 유럽 의회 표결만 거치면 정식으로 법안이 시행된다. 

EU 반도체 지원법은 역내 반도체 산업에 43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EU의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현재 EU회원국들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9% 수준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7년 이내 반도체 생산 규모를 4배로 늘려야 한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EU가 심각한 반도체 공급 불안정을 겪은 것이 계기로 작용했다.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등장과 대중 수출 규제 강화가 겹치자 EU는 반도체 자력 생산 증대를 계획했다. 아울러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감이 커지는 점도 반영됐다. 티에리 브르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법안을 통해 공급망을 재조정하고 (자체 생산량을) 확보할 수 있어, 아시아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EU 반도체 지원법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EU의 보조금이 적다는 것이 주된 근거다. 미국 싱크탱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 크리스토퍼 시테라 선임연구원은 "유럽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서 세계에서 가장 소형화된 칩을 제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보조금이 부족하고 경쟁이 치열하다"며 "약 430억 유로의 투자만으로 유럽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두배로 올리려는 것은 환상이다"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2030년까지 K-벨트에 510조원 이상 투자한다는 한국 정부의 계획에 비해서도 EU 지원금 규모가 적다고 언급했다.

EU의 관료주의가 비효율성을 만들어 업체를 다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크리스토퍼 사이테라 유럽정책분석센터 연구원은 로이터 통신에 "미국은 연방의회에서 보조금을 승인받을 수 있지만 EU에서는 27개 모든 회원국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EU의 관료주의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유럽 투자를 계획 중인 반도체 업체들은 EU 반도체법을 환영하고 나섰다. 독일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발표한 미국 인텔은 이 법안에 근거해 EU로부터 보조금을 지급 받을 예정이다. 인텔 측은 "(이번 반도체법 발표는) EU가 미래 산업의 확장을 위해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로이터 통신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