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이우환이 전하는 '무한'...14년 만의 개인전 'Lee Ufan'
2023-04-18 18:12
국제갤러리서 5월 28일까지
“이제 우리는 망령된 ‘인간’을 넘어서 ‘개체로서의 나’와 외부와의 관계적인 존재로 재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남이 중요한 것이지요. 나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독특한 신체성을 띠고 있으며, 대상 그 자체도 아니고 정보 그 자체도 아닌, 이쪽과 저쪽이 보이게끔 열린 문, 즉 매개항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타자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가 작품이고 이것은 새로운 리얼리티의 제시입니다.”
국제갤러리는 오는 5월 28일까지 K1·K2 2층·K2 정원에서 이우환의 개인전 ‘Lee Ufan’을 개최한다.
2009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두 번째 전시이자,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 설립(2015)을 제외하면 국내 관람객들이 14년 만에 맞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이우환의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아우르는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의 메인 무대를 장악하는 그의 조각들은, 그가 1956년에 일본으로 이주해 전위적인 미술운동인 모노하를 주도하기 시작했던 1968년과 동일한 연도에 처음 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 온 ‘관계항(Relatum)’ 연작의 연장선에 있다.
국제갤러리는 “규정지을 수 있는 ‘관계’ 대신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를 의미하는 ‘관계항’을 제목으로 선택한 데에는, 작품의 개별 요소들이 끊임없이 맥락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관계에 놓이도록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다”라고 설명했다.
자연을 상징하는 돌, 그리고 산업 사회를 대표하는 강철판 등 작업의 요소들과 함께 하나의 ‘관계항’으로서 작품 공간에 직접 개입하게 되는 관람객은 두 사물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침묵 중에 진행되는 대화를 명상하듯 관찰하며 자아와 타자의 공생(co-presence)을 생각하게 된다.
이우환은 “돌은 시간의 덩어리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다. 돌에서 추출된 것이 철판이다. 그러니까 돌과 철판은 서로 형제 관계인 것이다. 돌과 철판의 만남, 문명과 자연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 내 작품의 발상이다”라고 설명했다.
1관에 설치된 신작 ‘Relatum – The Kiss’(2023)를 통해 작가는 의인화된 은유의 예시를 보여준다. 작품의 부제인 ‘키스’로 각각이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는 두 개의 돌이 조우하며 접점을 만들고, 각각의 돌을 둘러싼 두 개의 쇠사슬 또한 포개어지고 교차하면서 교집합의 양상을 만들어낸다.
1관의 안쪽 전시장 한 쪽에 자리하고 있는 ‘Dialogue’라는 제목의 드로잉 4점은 그의 유명한 회화 연작 ‘Dialogue’를 연상시키는, 정신과 호흡을 극도로 통제하고 가다듬어야만 찍어 내릴 수 있는 커다란 ‘점’과 자연물을 묘사하는 듯한 제한된 수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2관 2층에 전시되는 ‘Relatum – The Sound Cylinder’(1996/2023)는 강철로 만든 속이 텅 빈 묵직한 원통과 그에 기대어 놓인 돌로 구성되어 있다. 원통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밖으로 숲 속의 새들, 비와 천둥, 산 속의 개울이 만드는 자연의 소리와 에밀레종의 종소리가 공명하듯 흘러나온다. 이 밖에도 2관 같은 공간에는 빈 캔버스와 돌이 마주보고 있는 ‘Relatum – Seem’(2009)이 설치돼 있다.
이우환의 작품은 유한하지만 ‘무한’을 품고 있다. 하나의 거대 서사이자 이론 그 자체인 이우환의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