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첫 회의 파행...'공익위원' 사퇴 촉구에 심의 난항 예고

2023-04-18 17:15
고용노동부 "1차 전원회의, 빠른 시일 내 세종에서 개최할 것"

1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가 파행, 근로자위원 등이 퇴장한 후 회의장이 비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심의위원회(최저임금위) 전원회의가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양대노총은 최저임금위 공익위원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의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을 국정 제1과제로 내세우면서 노동계에 압박을 가하는 분위기라, 향후 최저임금 심의는 상당한 갈등 고착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18일 오후 3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첫 회의는 결국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을 포함한 공익위원 9명이 불출석하면서 파행으로 이어졌다. 박 위원장 등은 근로자위원 9명이 아닌 노동계 인사들이 회의장에서 '물가 폭등 못 살겠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하라!', '권순원 공익위원 사퇴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투쟁 구호를 외치는 상황을 문제 삼았다.

최저임금위 사무국 관계자가 노동계 인사들이 "회의장 점거를 했다"는 표현을 했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날 노동계 인사 10여명은 가만히 선 채로 손팻말을 들고 '노동탄압 앞잡이 최저임금 공익감사 사퇴하라' '불공정한 공익간사 사퇴 촉구한다'라는 구호를 외쳤을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박 위원장과 공익위원들은 회의가 예정된 3시보다 50분이 지난 상황에도 입장하지 않았다. 한 노동계 인사는 오후 3시 35분께 "지금부터 15분간 최저임금위 위원장을 기다리겠다"며 "조속하게 회의가 시작되길 바란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사무국 직원을 통해 노동계 인사들의 퇴장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근로자위원들은 회의 무산을 선언하며 퇴장했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올해 최저임금 논의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첫 회의부터 근로자나 노동자위원들 입장도 거부한 채 회의도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 무산됐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결국 차기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회의가 무산됐다.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모두발언이 끝나면 배석자를 제외한 기자들과 다른 참석자들(노동계 인사 등)이 퇴장한 뒤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관행"이라며 "위원장이 노동자들의 의사 전달 기회조차 박탈한 채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회의 장소 위층인 19층에 머무른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계 인사들이 회의장을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파행 소식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위는 사용자위원 9명, 근로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7명으로 이뤄진다. 근로자위원은 모두 양대노총(민주노총, 한국노총) 소속이거나 관련돼 있다. 사용자위원은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등이 참여한다.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6일 근로자위원 3명과 사용자위원 2명이 새로 위촉됐다. 

통상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해 주로 학계 인사들로 이뤄진 공익위원들의 목소리가 최저임금에 반영된다. 지난해 2023년 최저임금 심의도 공익위원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번엔 노동계가 "부조리한 공익위원 사퇴하라"고 주장하는 만큼, 공익위원이 전원회의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을 지가 미지수다. 

양대노총은 이날 전원회의에 앞서 권 교수의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권 위원은 윤석열 정부에 노동 개혁 방안을 권고한 전문가 집단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으로 활동했다. 연구회는 최근 논란이 발생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의 밑그림을 그렸다. 양대노총은 권 위원이 '졸속 심의'를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양대노총은 이날 회의가 파행되고 입장문을 통해 "노동계는 그동안 최저임금위 진행 관례대로 모두발언 이후 피케팅 인원 모두 퇴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박 위원장은 책임 있는 공식적인 해명이나 설명도 없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총도 파행되고 2시간 뒤 입장문에서 "노동계의 무리한 주장과 행동으로 인해 최저임금위가 개최되지 못했다"며 "공익위원의 최저임금 심의가 아닌 활동을 문제삼아 사퇴를 요구한 것은 공익위원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공익위원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고용노동부도 입장문을 내면서 "특정 공익위원 사퇴를 요구하는 장내 시위로 인하여 최저임금위가 결국 개최되지 못했다"며 "2015년도 전원회의 시 위원 외에는 근로자·사용자 측 각 6명씩만 배석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고용부는 차기 전원회의 일정을 잡지 못한 점을 두고 "빠른 시일 내에 1차 전원회의를 세종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