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양곡법에 1호 거부권 행사…野 "입법권 정면 거부" 반발

2023-04-04 19:06
"전형적 포퓰리즘...우리 농가에 도움 안돼"
민주화 이후 16차례 중 재의결 한 번뿐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규정했다. 개정안 국회 통과를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입법권을 정면 거부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향후 여야 '강대강 대치'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반박했다.

지난달 23일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번 거부권 행사는 현 정부 출범 후 첫 사례이자,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로 약 7년 만이다.

헌법 53조에는 국회에서 의결(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된 법률안이 정부로 넘어오면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이를 공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법률에 이의가 있을 시 이의서를 첨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로 돌아온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더 어려운 조건을 충족해야 다시 확정되며 정부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민주당은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민주당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등 투쟁 수위를 높였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민주화 시대 이후 민생 입법을 거부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면서 "1호 거부권은 입법부를 겁박해 '통법부'로 전락시키려는 국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질타했다. 
 
민주당은 재의결 절차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16차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있었고, 국회 재의결이 성공한 경우는 단 한 번 존재한다. 2003년 12월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특검법안'으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집권여당 민주당을 탈당했던 특수한 상황이 있어 가능했다.

여기에 현재 국민의힘(115석) 소속 의원이 재적 3분의 1을 넘겨 재의결 가능성은 극히 낮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농업 경쟁력 저하'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게 명약관화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에 일종의 입법 공세로 맞불을 놓는 것이다.

이에 맞서 정부와 국민의힘은 오는 6일 당정협의를 통해 쌀값 안정을 위한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민주당의 공세를 사전에 꺾고 자칫 돌아설지 모를 농촌 표심을 달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러한 여야 대치 정국이 22대 국회의원 총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시작'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박 평론가는 "총선 승리가 목표인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통과'라는 정치적 성과를 야당에 절대 넘겨줄 수가 없을 것"이라며 "선거에서 농심이 매우 중요한데, 민주당이 주도한 법안이니 거부권을 당연히 행사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