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먹통' SK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반년…운도 못 뗀 책임·배상 논의

2023-03-30 18:18
사고 원인 조사·감식 덜 된 채 '정부 대책 '발표
카카오 이용자·고객 보상 규모 추산도 진행 중
SK㈜ C&C와 상호 책임·배상 논의 조건 미충족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들이 2022년 10월 17일 경기 성남시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카카오톡 먹통’ 사태의 당사자인 카카오와 SK㈜ C&C(이하 ‘SK’)가 사고 발생 6개월이 돼 가는 지금도 공식적으로 사고 책임 소재를 가리고 피해 배상을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태를 야기한 SK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 원인이 명확하지 않고, 카카오의 이용자·고객사 대상 보상 규모 파악도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20일 공시한 사업보고서를 통해 “이용자와 사회에 대한 책무를 다 하는 과정에 비용이 발생했으며, 2022년 기준 매출 손실과 이용자 보상에 따른 단기적 재무 영향은 약 400억원 규모”라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날 별도 공시한 연결감사보고서에 ‘연결회사 고객 대상 보상’을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점도 밝혔다. 카카오는 “연결회사가 입주한 SK 판교 데이터센터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당기 중 연결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일시적인 장애가 발생했다”면서 “연결회사는 고객사에 대한 손실 보상으로 추가적인 경제적 효익의 유출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당기 말 현재 해당 금액을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없다”고 했다. 전체 이용자·고객 대상 보상 액수를 확정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SK도 지난 14일 공시한 감사보고서의 회사 보유 자산, 부채, 손익 등 재무 상태에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 관련 액수를 도합 355억원 수준으로 반영했다. 유형자산 항목 중 ‘공기구비품’ 액수에 35억1000만원 감소 처리해 기말 금액을 1425억원으로 쓰고, 관련 주석으로 “처분 등 당기 중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발생한 손실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당부채 항목 중 ‘기타충당부채’ 액수를 기초 대비 285억1300만원 증가한 322억300만원으로 쓰고 “당기 중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설정한 금액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또 ‘금융손익 및 기타영업외손익’ 항목에 발생한 34억4700만원을 ‘화재손실’ 액수로 기재했다. 이 항목에 피해가 경미한 일부 고객사 보상이 포함돼 있지만, 카카오와 관련성은 전혀 없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카카오와 SK가 상호 책임소재를 가리거나 관련 피해 보상을 조율하기 위해 먼저 해결돼야 할 문제가 있다.

SK는 불분명한 화재 원인이 공식 판명되고 주요 사실 관계가 정리된 후 회사 입장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2월 정부 발표에 따르면 판교 데이터센터 전기실내 무정전 전원 공급장치(UPS)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발생한 불꽃(스파크)으로 화재가 일어났지만, 근본 원인이 배터리의 자연발화인지 외부 요인에 의한 발화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화재를 수사 중인 경찰은 작년 말께 외부 요인에 의한 화재보단 배터리 내부에서 발화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를 전달받았다.

그러나 이 사고를 계기로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서비스 안정성 강화 방안’을 마련해 발표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홍진배 네트워크정책실장에 따르면 정부는 ‘왜 UPS 배터리에서 스파크가 튀었는지’ 공식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현재도 소방청, 분당경찰서가 사고에 대해 조사·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는 카카오가 자사와 연결 회사에 대한 고객 피해 보상을 우선 마무리하고 SK에 그에 상응한 피해 배상을 포함한 구상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한다. 양사 논의는 큰 틀에서 양사의 기존 계약 내용에 달렸지만, 이해관계가 상반된 양측이 원만하게 합의하려면 역시 사고 원인 규명과 카카오의 손실이 구체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카카오는 먼저 서비스 장애 여파로 발생한 자사와 연결 회사의 이용자·고객 피해 보상 액수 등을 추산해 데이터센터 고객사로서 입은 손실과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업계에선 양측의 원만한 합의보다 소송전을 점치는 관측도 나온다. 데이터센터 화재 보상 관련 법적 다툼을 빚은 실제 사례로 지난 2014년 삼성SDS 과천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가 있다. 이 사고로 당시 입주사인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금융사 서비스 전면 중단 사태가 일어났다. 삼성SDS는 사고 직후 과천 데이터센터에서 불이 난 발전기의 교체·증설 공사와 연도(연기를 내보내는 통로) 공사를 맡았던 삼성중공업·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테크윈)·대성테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다.

법원은 1심에서 시공 하자를 단정할 수 없다며 삼성SDS에 패소 판결했으나, 2심은 시공 하자를 인정하고 삼성중공업 등이 약 284억원을 삼성SDS에 배상해야 한다며 삼성SDS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지난 24일 대법원에서 확정돼 배상 분쟁이 9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삼성SDS는 사고 후 소송이 진행되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여러 차례 공시를 통해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자체 손실 뿐 아니라 고객사에 대한 영업피해 보상과 관련해 인식한 충당부채 액수, 배상책임보험 수령 한도액, 손해사정인의 사정 결과에 따른 보상금 지급액 등을 추정·확정해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