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너무나 '고독한' 한국사회

2023-03-08 06:00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주위에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외로움은 홀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준다. 사람은 외로움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 즉 자기의 본성과 내면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인간 성숙에 꼭 필요한 자기 단련의 필수조건이며 의도적으로 찾아야 하는 소중한 가치이다. 그리고 이 외로움을 극복한 후에라야 비로소 인간은 타인과 원만하게 공존할 수 있다. 홀로 있으되 고독하지 않으며 대중 속에 있으되 귀찮지 않은 성숙한 인격체로 발전할 수 있다. 외로움은 위대하고 가까이 두어야 할 좋은 친구인 셈이다.

그런데 원치 않는 외로움과 고독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강요된 외로움은 자발적 외로움과 달리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는다. 청년들은 연애와 결혼에서 멀어지고 있다. 결코 연애와 결혼이 싫어서가 아니리라 믿는다.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경제적 부담감이 현실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 자존감이 무너진다. 원하지만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이러한 것을 요구하는 상대방과 사회에 대한 원망이 솟구친다. 그러면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남에게 배려하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말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데 누가 누구를 챙겨준단 말인가! 이제는 각자 자신의 것만 책임지면 된다. 타인은 어떻게 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타인의 일에 관여할 책임도 여유도 없으므로 나에게 그러한 것을 강요하지도 말아달라고 요구한다. 너와 나는 따로따로 각각의 길을 가면 된다.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런 세계에서 연애와 결혼은 멀어진 희망이며 자신의 삶과는 무관한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청년들은 멀어지는 신기루에 일말의 아쉬움을 느낄까?

이러한 현상이 비단 연애와 결혼뿐일까? 실제로 자신을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는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도 증가했다. 취업에 실패하고 인간관계에 상처받아 사회활동의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고립을 선택한 것은 아니리라. 강요된 고립이다. 우리 사회가 최근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과 달리 일본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경험했다. ‘히키코모리’ 현상이다. 1990년대 불황으로 인해 취업의 기회를 빼앗긴 이른바 ‘취업빙하기’ 세대로부터 유래한다. 2015년 만 15~39세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히키코모리는 54.1만명으로 추산되었다. 2019년 만 40~64세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61.3만명으로 추산되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신의 집, 아니 그 집 속의 작은 방안에 자신을 고립시킨다. 후자의 실태조사에서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사람의 57.5%는 최근 6개월간 가족 이외의 사람과 ‘전혀 대화하지 않았거나’ ‘거의 대화하지 않았으며’ 53.2%는 관계 기관과 ‘상담조차 원하지 않았다’. 히키코모리 상태가 7년 이상 지난 비율은 40%를 넘고 있어서 이러한 고립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획기적인 대책이 없는 한 비슷한 현상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현상이 깊이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치하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일본은 그 해답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바로 ‘8050문제’이다. 무슨 해괴한 문제란 말인가? 앞에서 보았듯이 40~64세의 히키코모리 인구가 무려 61만명이나 된다. 이들은 과연 무엇으로 먹고살고 있는가? 바로 부모의 도움이다. 그렇다. ‘8050문제’란 50세의 히키코모리를 80세의 부모가 부양해야 하는 데서 비롯된 각종 사회문제를 말한다. 일본은 이미 20년도 넘게 히키코모리 문제가 누적되어 왔고 그 종착점이 바로 이 문제이다. 더구나 이들 세대는 경제적 약자로서 세대 자체가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상담조차 거부하는 세대의 문제이다. 부모가 사망해도 히키코모리 자식은 사망한 부모의 시체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조차 있다고 하니 이 문제가 얼마나 처참한 상황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2021년 도쿄도의 에도가와구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18만 가구 중 히키코모리가 있는 가구는 무려 7604가구이며 성별로는 여성, 연령대로는 40대가 많았다고 한다. 이 중 25%는 ‘상담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다. 그다지 멀지 않아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는 끔찍한 미래일 수 있다.

가족은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후의 중요한 거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이러한 가족조차 약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2021년 기준으로 33.4%이다. 세 집 중 한 집은 혼자 살고 있다. 약 30% 수준에 있는 일본보다 더 높은 비중을 보인다. 2050년에는 39.6%에 이를 전망이라 한다. 머지않아 열 집 중 네 집은 혼자 산다는 얘기다. 그때 현재 20대 청년은 50대가 될 것이고 현재 부모 세대는 80대가 될 것이다. 가족이 주던 안정감과 상호부조의 기능은 무엇으로 대체해야 하는가? 부모의 노후를 보완해 주던 가족의 기능은 이미 소멸된 지 오래이다. 노년의 외로운 사람들도 이제 자신의 남은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기다린다. 아니 은둔형 외톨이의 자식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음을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웃지 못할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는 우리의 얼굴을 마스크 속 깊은 곳에 숨게 만들었다. 코로나가 사라져 가는 지금, 정부의 규제가 사라진 지금에도 우리는 여전히 마스크 깊은 곳에 우리의 얼굴을 감추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사회 속에서 움츠려 있다. 우리 사회는 참으로 고독한 사회인지 모른다. 그러나 강요된 외로움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손상시킨다. 강요된 외로움을 방치한 결과는 일본이 잘 보여 준다. 자살, 고독사, 은둔형 외톨이, 8050 문제, 경제적 빈곤, 범죄의 발생이 그것이다. 그리고 인구감소는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중대한 부산물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향하고 있는 이 거대한 경향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일본은 이제야 대책 마련에 부산하다.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서는 안 된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성장했지만 그 내면은 참으로 빈곤하다. 내면의 빈곤은 우리에게 강요된 외로움을 선물했다. 그러나 강요된 외로움은 진정 자신이 선택한 외로움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이제 혼자서 조용히 나 자신의 본래 모습, 우리 사회가 처한 본래 모습을 응시할 때다. 그러한 외로움은 위대하고 가까이 두어야 할 친구이기 때문이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