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임지수 폭락, 위기의 물류] 올 물동량 1%도 안 느는데···사상 최대 규모 화물선 인도 앞둬

2023-02-21 05:35
코로나 때 발주한 백신 수송 선박 등
최근 10년 연평균 발주량의 3배 규모
저가 출혈경쟁···2008년 데자뷔 우려
화물기 개조 늘린 항공사도 부담 커져

해운사들이 발주한 사상 최대 규모 신조선이 올해부터 속속 물류 시장에 도입된다. 신조선 규모가 현재 컨테이너선 대비 17%에 달하는 수준이라 시장에 충격이 예상된다. 코로나19 시기 여객기를 개조해 화물기로 전환했던 항공사도 유사한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올해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화물 운송 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화물선과 화물기가 급격히 늘어난 탓에 해운·항공사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해운사에서는 빈 배에 일단 화물을 채워 넣기 위해 운임을 스스로 인하하는 출혈 경쟁이 재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글로벌 해운 시장에 대규모 신조선이 도입될 예정이다. 이는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발주한 화물선이 1~2년 동안 건조를 마치고 올해부터 해운사에 인도되기 때문이다.

2021년 글로벌 해운사는 사상 최대인 434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규모로 발주를 단행했다. 이는 최근 10년 동안 평균 연간 신조 발주량인 146만TEU 대비 세 배에 가까운 물량이다.

아울러 지난해 말 글로벌 전체 선복량 2550만TEU 대비 17%에 달하는 규모다. 국내 1위이자 글로벌 8위 해운사로 꼽히는 HMM 컨테이너선 선복량이 82만TEU가량임을 감안하면 그보다 4배 넘는 물량이 올해부터 시장에 공급되는 셈이다.

항공사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글로벌 대형 항공사는 코로나19 시기에 수요가 급감한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하면서 수익성 방어에 나섰다. 당시 코로나19 백신 등에 대한 항공화물 수요가 늘어나면서 화물기 전환이 급격히 진행됐다. 국내에서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이 비슷한 경영 전략을 추진해 화물기가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문제는 올해 화물 수요가 컨테이너선과 화물기를 채울 만큼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수 글로벌 조사 기관은 올해 글로벌 해운·항공 물동량이 1% 미만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감안하면 빈 배나 화물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역대급 공급과잉 우려에 해운업계 일각에서는 2008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출혈 경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2000년 초반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국제 교역량이 폭증하면서 글로벌 해운사는 이에 맞춰 선박 발주를 크게 늘린 바 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물동량이 크게 줄었고 공급과잉이 발생해 해운사 간에 대규모 출혈 경쟁이 시작됐다.

당시 글로벌 주요 해운사는 경쟁 해운사에 타격을 줄 목적으로 저가 운임 공세를 펼쳤고 이에 버티지 못한 해운사가 속출했다. 당시 국내 1위이자 글로벌 7위였던 한진해운마저 파산하기도 했다.

항공업계도 우려가 적지 않다. 올해 코로나19 우려가 줄어들면서 여객 부문 호조가 예상되지만 그동안 수익성을 지탱했던 화물 부문 실적 악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칫 여객 부문 회복이 더뎌진다면 화물기 급증에 따른 운임 하락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실제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선 여객 수는 459만1699명으로 전월보다 약 54만명(13%)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는 약 13배 늘어난 수준이다. 다만 폭발적인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월과 비교하면 58% 수준에 그쳐 아직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는 못한 모습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2008년과 같은 공급과잉으로 출혈 경쟁을 걱정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며 "사상 최대 규모로 발주한 선박이 속속 시장에 도입되는 만큼 더욱 운임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조선을 건조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