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주의 몰락(上)] 尹, '총재부활' 소리 듣더라도 黨장악 노골화…승부수냐, 자충수냐

2023-02-20 05:00
윤석열 대통령, 당무 개입·사당화 논란
총선 승리 위해 친윤세력 위주 운영 판단
"당비 300만원 낸다"…명예당대표론도 나와
당권주자 윤심팔이 경쟁...정당민주주의 훼손 우려

정치권이 분열로 치닫고 있다. 여당의 차기 전당대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개입 논란으로 이른바 ‘윤심(尹心) 감별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야권도 협치를 내팽개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둘러싼 방탄 논란으로 인해 난방비 방안 등 민생 대책은 물론 ‘곽상도·김건희 쌍특검’ 추진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모두 정당주의 기본인 ‘당정 균형’과 협치를 무시한 탓이다. 아주경제는 3회에 걸쳐 정당주의 몰락으로 쑥대밭이 되고 있는 여의도 정치권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은 한 달에 300만원 당비를 낸다. 일반 의원들(30만원)보다 (대통령이 당비를) 10배는 더 내는데 당원으로서 할 말이 없을 수 없지 않으냐."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른바 '당무개입'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 핵심관계자가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나 밝힌 입장이다. 1호 당원으로 얼마든지 당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후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13일 "당정이 하나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정분리 재검토론을 제기했다. 이철규 의원은 15일 윤 대통령의 '명예 당대표' 검토 보도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한 발 더 나갔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제왕적 총재정치 부활이냐"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3김 시대'와 함께 사라진 '당정일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1990년대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까지 역대 대통령은 여당 총재를 겸직했다. 대통령실(당시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집권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직적 당정관계'를 구축했다. 이른바 책임정치를 앞세운 '당정일체'의 시대다.
 
그러나 2000년 들어 시대적인 목소리가 달라졌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3권 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에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스스로 내려놨다. 그는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 잔재"라며 '당정분리'를 선언했다. 

물론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당민주주의를 위해 당정분리를 선언했지만 대통령의 당 장악력 약화로 이어졌다. 대선과 총선 등 큰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실과 여당이 반목하거나 대립하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5년 임기 내에 성과를 내고 싶은 단임제 대통령과 재선을 염두에 두고 여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여의도 정치권의 근본적인 입장차가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2003년(새천년민주당)과 2007년(열린우리당) 여당을 두 차례 탈당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따로, 당 따로 누가 책임지나. 책임 없는 정치가 돼버렸다"고 토로했다. 당정분리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후 2017년 촛불 정국의 힘을 업고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여당 현역 의원들을 대거 내각에 포함시키는 '당정 원팀'을 추진했다. 부동산 폭등과 '내로남불' 논란에 따른 민심 이반으로 정권재창출에는 실패했지만, 2020년 21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고 임기 평균 지지율 50%대 달성에 성공했다.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은 2006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권·대권 분리를 공식화하면서 '수평적 당정관계'의 시대를 열었다.

그렇지만 이 전 대통령은 '친박(박근혜) 공천학살'로 보수 진영 갈등을 야기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진박(진짜 친박근혜) 공천' 등 당무개입 논란에 자유롭지 못했다.
 
◆지지 기반 미약한 尹정부...'당정 원팀 넘어 융합으로'
 
윤 정부에서 '당정 원팀'을 넘어 ‘당정 융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는 것은 현 정부의 취약한 통치기반이 원인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최초의 0선 대통령이다. 기성 여의도 정치권에 신세를 지지 않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동시에 기성 정치권과 정서적 연대가 느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힘 유력 당권주자 김기현 후보가 '탄핵 위험성'을 언급하고 후원회장이자 윤 대통령의 멘토로 불린 신평 변호사가 '윤 대통령 탈당'을 거론한 것 역시 그러한 위기의식의 발로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들을 겨냥해 ‘윤핵관 프레임'을 제기하는 이들을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라고 발끈한 것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절대적으로 지지해줄 팬층은 빈약하고,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 거대 야당의 벽은 강고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취임 1년이 다 되도록 대통령 대선 공약인 정부조직법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인가"라며 "현재 상황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윤 대통령은 주도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선 내년 총선 승리가 필수불가결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총재정치' 부활 논란을 감수하고 공천에 일부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의 친위세력을 당 내에 배치하고, 이를 총선 승리로 연결시키겠다는 각오로 풀이된다. 다만 대통령의 당 장악력 강화 시도는 '정당민주주의 약화'로 이어질 위험성이 상존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의힘 당권 후보들이 윤심에만 호소하고 있다. 미래 비전이나 정책 발굴은 외면하고 오로지 윤심을 자극하고 있다. 유력주자인 김 후보는 "내년 총선의 얼굴은 윤 대통령이지 당 대표가 아니다"라며 '관리형 대표'를 사실상 자임하는 한계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