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표준계약서 개정안 내놓았지만…창작자 단체 "오히려 '개악'돼" 규탄

2023-01-11 18:38
웹툰작가노조 등 창작자 단체 기자회견…"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사진=웹툰작가노동조합]


문화체육관광부가 웹툰 등 만화계 표준계약서 개정에 착수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창작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웹툰작가노동조합, 한국여성만화가협회 등 창작자 단체들이 일제히 표준계약서가 오히려 '개악'됐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11일 웹툰작가노동조합은 서울 합정동 휴이동노동자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체부가 처음 공표한 표준계약서 개정 초안은 창작자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상생협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이었다"라며 "기본 틀부터 잘못돼 있으며 현장 실용성이 떨어지고 창작자에게 불리한 독소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2월 16일 웹툰 플랫폼, 제작사, 작가 등과 함께 상생협약문을 발표했다. 또 상생협약문을 구축한 웹툰상생협의체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표준계약서를 전면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노조에 따르면 표준계약서 개정 초안은 지난달 23일 별도로 열린 설명회를 통해 처음 공표됐다. 기존 표준계약서보다 3종 많은 9종의 계약서로 구성됐다. 그러나 개정 초안만 보면 오히려 개정 전보다 더욱 창작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이는 그 동안 지속적인 간담회 개최 등 현장과의 소통을 간절히 요구해 온 창작자들을 무시한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의견서를 통해 표준계약서 개정 초안의 문제점을 짚었다. 우선 창작자들에게 정작 필요한 종류의 계약서가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웹툰 산업은 현재 플랫폼과 제작사(CP), 창작자 등 3자 이상의 다중 계약 구조가 자리잡힌 상황인데 정작 초안에는 3자간 계약서와 플랫폼·제작사 간의 계약서 등이 아예 빠졌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아무리 제작사와 창작자 간 계약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플랫폼과 제작사 간 계약이 불합리할 경우 결국 작가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창작자들의 권리를 표준계약서에 명시되는 명확한 기준을 통해 지켜줄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창작자들의 오리지널 작품에 대해서는 확고한 저작권 보장을 가능하도록 하는 계약서, 그리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노블코믹스(웹소설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된 웹툰)' 작품에 대해 웹툰 창작자들이 기여한 만큼 고유한 권리를 지켜줄 수 있도록 하는 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노조는 이와 함께 표준계약서에 전체적으로 '합의'라는 단어가 남용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 쟁점 대부분이 계약 당사자 간 합의를 전제로 명시돼 표준계약서에 언급된 기준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한 예로 웹툰연재계약서에는 창작자가 플랫폼이나 CP에 계약기간 대상 저작물의 온라인 서비스 연재에 대해 배타적발행권을 부여하도록 했는데, 이와 관련해 양자 간 합의도 가능하다고 언급됐다. 배타적발행권자는 복제·배포 및 전송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향유해 저작권이 침해당할 경우 독자적인 소송 등 권리 구제 행위가 가능한데, 여기에 '합의'를 접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개정 초안에 창작자 휴식권에 대한 내용이 모호하게 언급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앞서 발표된 상생협약문에는 큰 틀에서 창작자 휴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언급됐다. 그러나 개정 초안에도 휴식권 관련 내용이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고, 플랫폼·제작사와의 협의의 영역으로만 남겨 뒀다는 점을 노조는 비판했다. 

노조는 또 상생협약문에서 비교적 확실하게 정해진 정산 정보 공개 의무 역시 정작 표준계약서에서는 모호하게 언급됐다고 짚었다. 

그간 창작자들은 자신들이 정확히 얼마를 받고 일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이에 상생협약문을 통해 작품 저작권자와 수익을 배분받는 모든 당사자가 웹툰 판매량, 조회수, 코인당 금액, 유료판매 비율 등 작품 수익을 역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매출 관련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인정했다. 필요 시 기존 정보 제공 방식을 개선하고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작 상생협약문에도 명시된 이러한 내용이 표준계약서에는 오히려 더욱 후퇴했다는 지적이다. 정산의 근거 자료는 작가가 별도로 요청해야 받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김현희 한국여성만화가협회 이사는 "이 계약서가 그대로 사용된다면 많은 창작자들이 더 나쁜 환경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며 "표준계약서라는 말처럼 업계에서 이 계약이 표준으로 자리잡게 돼 더 좋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웹툰작가노조는 표준계약서 개정을 원점에서부터 재논의하자고 문체부에 요구했다. 또 웹툰작가 등 정책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과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하자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