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의 제왕학] 시진핑 '중국夢'과 대만통일 전략 뒤의 '짙은 그림자'
2023-01-09 14:59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2012년 11월 29일 첫 임기 시작 보름 만에 ‘중국몽(中國夢)’을 집권 이념으로 선포했다. ‘중국몽’은 ‘두 개의 백 년’, 즉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과 신(新)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성취할 국가 전략 목표다. 2021년 ‘모든 국민이 풍족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는’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를 만들고, 2049년에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국가 비전의 청사진이다. 경제·군사적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초일류 패권 국가로 도약하는 ‘중국의 꿈’을 구현하는 시대를 여는 것이다.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한 경축대회에 지도부 중 유일하게 인민복 차림을 한 시 주석은 중국인 모두가 중산층이 되는 ‘샤오캉 사회를 달성했다’며 ‘탈(脫)빈곤’을 선언하고 ‘중화(中華)민족은 세계에서 위대한 민족’임을 역설했다.
“··· 5000여 년 유구한 문명의 역사가 있고, 인류 문명 진보에 불멸의 공헌을 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조금씩 반(半)식민지, 반(半)봉건사회가 되어 국가가 모욕당하고 인민이 박해당했으며 문명이 몽진했다. 중화민족이 겪어보지 않은 재난에 부닥쳤다. 그때부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중국 인민에게 ‘중화민족의 꿈’이 됐다. ··· 100년 동안 중국공산당이 단결해 중국 인민의 모든 분투·희생·창조를 이끌었다. 이를 귀결하는 것이 바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우리는 첫 번째 100년 분투 목표를 실현했고, 중화 대지에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를 건설해 절대 빈곤 문제를 해결했다. ··· 대만(臺灣) 문제를 해결하고 조국 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임무이자 중화민족의 염원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과 ‘평화통일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 대만 독립 도모를 단호히 분쇄하고, 민족 부흥이라는 아름다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 중국 인민의 국가 주권과 영토를 지키는 굳은 결심과 확고한 의지를 정립해야 한다. 중국 인민은 어떤 외래 세력도 우리를 괴롭히고 압박하거나 노예화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런 망상을 꿈꾼 자는 14억여 중국 인민이 피와 살로 건설한 강철 만리장성에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다.”
‘조정이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一朝天子 一朝臣)’라는 중국 정치의 불문율(不文律)을 깨고, 장쩌민(江澤民)부터 후진타오(胡錦濤)를 거쳐 시진핑까지 세 명의 총서기를 섬겨온 유일무이한 ‘세 왕조의 이데올로그’로 이념·선전을 총괄해온 왕후닝(王滬寧)이 설계한 ‘중국몽’은 3기 시주석 체제에서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책사(策士)의 나라’인 중국답게 시진핑 2기 체제에서 국가서열 5위였던 왕후닝은 3기 체제에서 4위로 한 단계 격상됐다. 학자 출신으로 지모(智謀)를 흉중에 품은 기재(奇才)로 평가받는 그는 2018년 당헌(黨憲) 개정과 2021년 11월 ‘역사결의’를 통해 시진핑을 마오 이후 ‘최고 위인’으로 격상시켜 ‘시진핑 후계자는 바로 시진핑’이라는 시진핑 장기집권과 ‘일존(一尊) 체제’ 구축을 선도했다. ‘시진핑을 보려면 왕후닝을 보라’는 말대로 시진핑의 핵심 브레인답게 2020년 10월 이른바 ‘두 개의 수호(兩個維護: 시진핑 당 중앙 및 전당의 핵심지위 수호, 중공 중앙의 권위와 집중통일 영도의 수호)’와 2021년 8월 이른바 3차 ‘역사결의’를 끌어내고 ‘두 개의 확립(兩個確立: 시진핑 당 중앙과 전당의 핵심지위 확립,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을 주도해 시진핑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반열에 오른 강력한 최고 지도자인 영수요, 주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왕후닝은 1991년 <미국은 미국을 반대한다(원제목 美国反对美国)>는 저술에서 중국 외교의 오랜 기조인 ‘다극(多極)체제론’ 대신 ‘미국에 맞서 싸우는 새로운 대국’으로써 중국 부상을 주창, 대외정책도 바꾸었다. 시진핑이 총서기가 된 2012년부터 본격화한 ‘신형대국관계론(新型大國關係論)’의 이론적 토대가 된 이 책에서 “4년마다 순조로운 정권 교체를 하는 미국의 내면을 보면 개인주의와 향락주의, 기술주의에 빠져 몰락, 세계 패권국 지위를 잃을 수밖에 없다”라며 “약점 많은 미국은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흑인과 원주민, 여성들이 미국에서 겪는 현실은 미국이 평등 사회가 아님을 보여준다. …미국 정당들은 시장에서 정치후보자를 상품으로 광고하고, 행상(行商)처럼 팔 뿐이다. …미국에선 기술이 사람을 정복했다. 우리가 미국을 압도하려면 반드시 과학·기술 분야에서 추월해야 한다. …고유의 정신과 가치관이 붕괴한 미국은 지속하기 어렵다.”
이런 미국관을 바탕으로 왕은 “중국이 국력을 집중하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등 국가가 될 수 있다”라면서 시에게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一帶一路)’, 그리고 ‘전랑외교(戰狼外交)’를 헌책했다. 중국 경제력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웃돌고, 국제적으로 ‘G2’ 대우를 받는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허장성세(虛張聲勢)만은 아니다.
“2020년까지 중산층 사회를 이룩하고 2049년까지 부강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경제력에 기반을 둔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항공모함, 탄도 미사일, 사이버 전력을 갖춘 군사 강국으로 거듭나, 중화인민공화국 건설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미국을 넘어 새로운 역학 관계에서 중국 중심 시대를 열겠다…”
‘일국양제’의 전략구상으로 대만을 평화적으로 통일한다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하고, 절부당두(絶不當頭·실력이 될 때까지 절대로 우두머리가 되지 말라)하라’는 유훈은 용도 폐기되었다. 특히 덩의 “미국과의 대결을 100년간 피하라”는 유촉(遺囑)을 걷어차고 시진핑은 미국을 대체할 중국 주도의 '신시대'를 선언, '살기등등하게 상대를 핍박하는' 돌돌핍인(咄咄逼人)의 단계로 이른바 ‘중국몽’을 천명하고 나서자 미국 지도자들은 중국 부상을 패권 경쟁에서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8년 3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상대로 무역 전쟁을 선포, 이른바 ‘미·중 갈등’이 시작됐다. 2021년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 역시 강력한 대중(對中) 압박·견제라는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바이든도 중국의 급격한 부상 억제를 대외정책 최우선과제로 채택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견제·봉쇄하려는 전략 목표를 위해 동맹국들을 끌어들이는 ‘반(反)중국 벨트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 증대와 팽창주의, 그에 따른 한국, 일본, 동남아 국가 등 주변국 안보 불안을 미국이 불식시키려 하면서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참여해 만든 연합체)를 강화·확대했다. 미국 주도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5개국은 국가 안보를 위해 인터넷 사용자 활동을 모니터링, 공유하는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다섯개의 눈)로 중국을 견제하는 최첨단 군사기술동맹을 새롭게 구축했다. 미국은 나토에 이어 서방 강대국들의 모임인 G7을 D10(‘민주주의’ 10개국 연합체)으로 확장하고, 인도 태평양경제구조(IPEF) 주도 등 복합 중층구조로 대(對) 중국 포위망을 거미줄처럼 엮어 중국 봉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엘리트들도 최근 수년 동안 중국에 대한 태도가 급격히 바뀌어 이제 중국을 적(敵)으로 보는 데 초당적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국무장관으로 미·중 수교의 조타수였던 헨리 키신저도 “미국과 중국이 이제 냉전 초입에 접어들었다”라고 진단했다.바이든을 비롯한 미국 지도자들은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차이가 크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권위주의 국가들이지만, 그 반대편에는 미국 중심의 민주주의 진영이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의 홍콩 민주화 운동과 신장(新疆)·티베트의 소수 인종 억압은 미국 지도자들이 이런 주장의 정당성을 위해 가장 자주 드는 사례가 됐다.
세계 패권을 놓고 자웅(雌雄)을 겨루는 현대판 ‘그레이트 게임’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중 패권전쟁이 ‘무역분쟁’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패권 전쟁’으로 치열해지는 상황은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진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기원전 5세기 기존 패권국 스파르타에 급부상한 신흥강국 아테네의 도전으로 벌어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록한 그리스 역사가이자 장군이었던 투키디데스는 ‘신흥강대국이 기존 세력 판도를 뒤흔들면 양측이 무력충돌로 치닫게 된다.’고 분석했다. 전쟁 원인을 예언이나 도덕 문제, 우연이 아닌 국제적 문제로 파악한 것이다. 여기에 착안해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란 용어를 만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벨퍼 센터의 그레이엄 앨리슨 소장은 미·중 정상회담 직전인 2018년 4월 2일 〈W.T〉 칼럼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미국의 세계 경제생산 비중은 1980년 22%에서 오늘날 16%로 떨어진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에 2%에서 18%로 증가했다. …신흥강대국 중국과 패권국 미국의 대립과 대치는 향후 수년간 고조되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것이다.”
국제안보전문가로 유명한 앨리슨 소장은 “지난 500년 동안 지배적인 패권 국가 지위는 16차례 붕괴했으며 그중 12건은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였다”라며 “냉전 시대 미·소 관계, 20세기 초 미·영 관계 등 무력충돌을 피한 4차례는 도전하는 국가와 도전받는 국가의 태도와 행동에 엄청난 조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지적했다.
2027년 ‘대만 침공’으로 통일 국가 완성?
1인 장기집권 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한 시진핑의 ‘중국몽’은 옛날 중국이 패권 국가를 자처할 때와 같은 ‘화이질서(華夷秩序) 부활’이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에서 빛을 발한다’라는 의미로 중화(中華)라 자칭했고, 주변 국가를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즉 오랑캐로 취급했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중·일 대결 구도 역시 거칠어지고 있다. 미국 퇴조의 틈을 타 아시아 맹주(盟主)를 노렸던 고 아베 전 총리는 2021년 대만 싱크탱크인 국책연구원 주최 포럼에서 화상으로 “대만의 비상사태는 일본의 비상사태이며, 따라서 미·일 동맹의 비상사태가 된다. 중국 지도부,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를 인식하는 데 오해가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대만 공격 시 개입한다.”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자격·권리가 없다. 잘못된 길로 불타 죽을 것”이라며 주중 일본대사를 불러 강력하게 항의했다.
최근 ‘해양세력인 한·미·일 대(對) 대륙세력인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도가 동북아시아에서 다시 형성되고 있다. ‘현대판 히틀러’라는 별명으로 러시아를 23년째 이끌어온 푸틴, 시진핑과 김정은은 10년째 장기집권이지만 한·미·일은 집권 기간이 4년 혹은 길어야 8년이어서 권력 장악력이 취약한 실정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까지 발발, 두 진영의 대립 전선이 더욱 선명해 졌다. 시진핑의 장기집권 명분인 대만통일은 대만해협의 긴장을 고조시켜 연쇄작용으로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듯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주한미군과 주일 미군 공군기지는 중국의 ‘원점 타격’ 대상으로 미군의 대만 전쟁 투입은 물론 그 이상의 협력을 압박할 것이다.
100여 년 전 청·일 전쟁 패배로 대만을 일본의 최초 식민지로 내줬던 국가적 치욕을 상기하는 중국은 ‘제2의 청·일 전쟁’을 불사하고 대만통일을 국가 대전략으로 설정,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대만 침공’은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이자 시 주석 4연임이 걸린 21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27년을 유력한 시기로 예측, 대만을 둘러싼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했을 때 대응할 우리의 유연한 외교·안보 전략이 절실하다.
역사적 격변기를 맞아 한반도 운명에 ‘결정적 역할’을 할 시진핑 주석, 이제 이 ‘한 사람’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미국과의 패권전쟁, 계속되는 경기 침체, 제로 코로나 정책에도 최근 창궐하는 코로나, 1인 장기집권에 대한 불만, 신장·티베트의 인권탄압 등은 한비자(韓非子)가 지적한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 즉 ‘이치(理致)가 아닌 것이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옳은 이치라도 법에 우선할 수 없으며, 법도 권세를 능가하지 못하고, 그 권세라 할지라도 마침내 하늘, 즉 민의를 거역할 수 없다.‘는데 천자(天子)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시진핑 황제‘의 ’중국몽‘이 어떤 결말로 귀결될지 역사의 추이가 궁금해 진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