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열린경제] 계묘년 '상저하고' 한국경제 … 지속 가능한 성장 날개를 펴라
2023-01-03 18:45
문제는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는 데 있다. 풀린 뭉칫돈이 지금에 와서는 2차 위기의 불씨가 되고 있다. 많이 풀린 돈이 물가를 자극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충격 등이 가세하면서 물가의 고삐가 풀려버렸다. 결국 미국 FRB 등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강행군에 나서면서 통화환수발(發) 2차 위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래도 1차 위기에 비해서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본다. 정책으로 시작된 2차 위기의 매듭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정책이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같은 궤적에 있다. 정부가 최근에 내놓은 ‘2023년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그 고민의 흔적이 뚜렷하다. 정부는 올 상반기를 고비로 보고 있다. 물가가 올 초까지는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이지만 원자재 가격 하락과 수요 둔화 등에 따라 상승 압력이 점차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3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예상치는 지난해(5.1%)보다 낮아진 3.5%다. 성장률은 하반기로 갈수록 세계 경제 개선 등에 힘입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게 정부 전망이다. 그래도 연간 성장률은 올해 2.5%에서 1.6%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상저하고(上低下高)가 될 것이란 얘기다.
2023년 경제정책 방향은 이런 경제기상도에 대한 처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물가 안정화 노력을 계속하면서 성장을 부추기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겠다는 것이다. 역대 최대 수준인 총 50조원 규모의 시설 투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중소기업과 수출 지원 등을 위해 정책금융을 45조원 확대하고 반도체, 해외 건설, 디지털 등 5대 분야를 중심으로 수출 경쟁력 제고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게 경기 부양 대책의 골격이다. 여기에 모빌리티, 에너지, 금융 등 7개 테마별로 핵심 규제를 혁신해 나가겠다는 게 경제의 활력을 키울 방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3년 경제 운용 청사진에서 눈에 띄는 점은 별도의 ‘정책 바구니’로 ‘신성장 4.0 전략’이 추가됐다는 점이다. 성장 잠재력이 취약해지는 시점에서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총론의 방향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성장 4.0 전략은 크게 세 가지 틀을 갖추고 있다. 첫째는 에너지와 의료 등 미래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둘째는 디지털 기술혁신을 일상의 변화로 연결하며, 셋째는 반도체와 배터리 등 신산업 전략을 통해 초격차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신성장 4.0 전략이 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과 초일류 국가로의 도약이다. 국가의 미래 비전으로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일부 아쉬운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한국 경제가 이미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는데도 여전히 양(量) 위주의 사고가 지배적이고 이를 뒷받침할 질(質)적 고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체계적인 추진 전략이 보이지를 않는다. 현행 지속가능발전법은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래 세대가 사용할 경제·사회·환경 등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여건을 저하시키지 않고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지속 가능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기초해 ‘경제의 성장, 사회의 안정과 통합 및 환경의 보전이 균형을 이루는 발전’이 바로 지속 가능 발전이다.
이와 관련해 각국이 주력하고 있는 영역은 바로 녹색성장이다. 같은 성장을 하더라도 이제는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회복시키는 그린 성장을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호라이즌(Horizon) 유럽’이라는 성장전략에서 5개 과제를 선정했는데 이 중 4개(기후 회복력, 바다와 담수 복원, 기후 중립 도시 100개, 토양과 생명 관리)가 그린 성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독일도 ‘하이테크 전략 2025’의 3대 영역에 지속 가능성을 포함시켰고 부속 과제로 산업의 탄소중립화, 플라스틱 저감, 지속 가능 순환경제, 생물다양성 확보 등을 선정해 놓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 지출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물론 2023년 경제정책 방향과 신성장 전략에도 산업, 수송 등 부문별 탄소 감축 목표 설정, 탄소 포집 같은 핵심 기술 개발, 에너지 절약, 탄소중립 도시 10개 조성 등 각론이 들어 있긴 하다. 하지만 탄소중립 산업을 만드는 데 전력투구하면서 이를 새로운 지속 가능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하겠다는 총론적 의지가 잘 읽히지를 않는다. 특히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40%(2018년 대비) 감축해야 하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의 녹색 도약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이 빠져 있다. 이 대목에서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의 진단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금세기 중반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세계 경제를 전환하는 것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전례 없는 기회다. 탈탄소 사회에서 새로운 기회를 파악하고 경제구조 전환이 모두에게 긍정적 영향을 발휘하게 하면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가 3억개 이상 추가로 만들어질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그린 성장이 산발적인 각론에서 성장전략의 중심축으로 격상돼야 하는 이유다. 같은 관점에서 환경과 사람을 돌보는 투명하고 윤리적인 기업 경영을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책의 비중도 지금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다.
성장 전략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점은 하향 추세를 지속하고 있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가시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정책에서도 이를 의식한 대책이 포함돼 있긴 하다. 투자 활성화 방안, 생산성 향상 노력, 여성과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율 제고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각론으로는 부족하다. 이대로라면 0% 또는 마이너스로 떨어질지 모를 잠재성장률을 적정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는 일은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중차대한 과제다. 그런 만큼 잠재성장률 2%대를 마지노선으로 지키겠다는 목표를 공론화하고 이를 위한 종합 대책을 세워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성장 전략의 ‘상단 메뉴’에 항상 들어가야 하는 숙제다. 이 밖에 정부는 ‘신성장 4.0’을 간판으로 내세운 만큼 낙수효과를 통해 성장의 과실이 경제 전반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을 유도해야 하며, 경제의 덩치가 커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낮은 수준인 국민의 행복도를 올리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2023년은 위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성장의 물꼬를 열어가야 하는 해다. 이 때문에 당장은 눈앞의 단기 대책에 더 많은 무게중심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정부는 긴 호흡으로 국가의 중장기 가치를 제고하고 한국 경제의 질적 기반을 다지는 일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게 명실상부하게 초일류 국가로 가는 길이다.
최남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영학 석사 ▷MTN 대표이사 사장 ▷YTN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