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톨레랑스' 사라진 한국 사회 곳곳 멍든다

2023-01-02 13:50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태평로 숭례문 일대에서 촛불전환행동 주최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49일을 맞이한 지난달 16일, 포털과 지상파 3사, 주요 종편과 일부 언론은 일제히 각사의 댓글 서비스를 일시 중단했다. 참사 추모제를 앞두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혐오 댓글이 게재되는 것을 우려한 사전 조치였다. 실제 한 언론사와 카이스트가 이태원 참사 직후 10일간 네이버 기사에 게재된 댓글을 분석한 결과 전체 댓글의 58%는 혐오 발언인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의 혐오 여론은 고스란히 오프라인으로 이어져 일부 시위대와 유족 간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혐오·갈등 수위가 폭발 직전으로 치닫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0명 중 5명은 우리 사회의 혐오 수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같은 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내놓은 조사에서 한국사회의 갈등지수는 이미 2016년 기준 OECD 30개국 중 3위를 기록했다. 반면 정부의 갈등관리능력은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정치와 법치가 갈등 해소와 공론의 기능을 상실한 상황인 셈이다. 이에 더해 전문가들은 양극화와 다문화 등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혐오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온라인 등을 통한 ‘혐오의 보편화’도 빠르게 유행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양극화·공포심리가 혐오정서로...온라인이 ‘촉매’
특히 최근에는 양극화와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소수자·약자 혐오가 강화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나 장애인 시설에 대한 혐오 발언처럼 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물린 혐오 발언이 등장하고 있다”면서 “이해관계나 가치관과 어긋나면 곧바로 적대와 혐오를 표출하는 모습이 세대·남녀 간 등 모든 면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수자에 대한 경계심을 ‘공포’로 뒤틀고 이를 통해 혐오정서를 강화하는 모습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장애인이나 다문화·이주민 집단은 사실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약한 집단이다. 혐오의 원형인 ‘중세 마녀사냥’처럼 소수자들을 위협과 공포의 존재로 여기도록 만드는 게 현 혐오 현상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의 혐오와 갈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크게 2가지를 꼽는다. 우선 국내 정치가 갈등과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정치에서도 타협의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고 갈등을 지속 확산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 일반에도 영향을 미쳐 다른 가치를 용납하지 못하는 정서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 갈등을 해소해야 할 사법부도 혐오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 논란의 경우 공사중지 처분이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마저 나온 상황이지만, 이를 둘러싼 혐오와 대립은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상의 혐오발언도 갈등 양상을 증폭시키는 주 요인으로 지적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시민들이 혐오 표현을 접한 주요 경로(복수응답)로 인터넷 방송 39.7%, 온라인 포털·카페·커뮤니티 31.8% 등 온라인이 가장 높은 지분을 차지했다.
 
이 교수는 “소통공간이라는 특징을 가진 인터넷의 여과 기능이 작동하지 못해 혐오 표현이 더욱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설 교수도 “SNS 등은 의견이 동일한 사람들만이 뭉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며 "이런 확증편향이 혐오와 갈등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가가 갈등관리 위한 사회적 장치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위험수위로 얼룩진 혐오·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사회적 장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사회 지도층들이 혐오로 인한 사회 균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행동지표를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설 교수도 “갈등은 현대 사회에서 필연적 부분이지만 결국 국가가 이를 얼마나 잘 관리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면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사회에서는 일부의 혐오 발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발언에 대해 동일하게 극단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상의 혐오 표현 확산에 대해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용자들도 정보를 확인할 때 SNS 등에 의존하지 말고, 방송과 신문 등의 정확한 보도와 전문가의 해석, 신뢰할 만한 정보를 수집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