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방향성 잃은 경제안보, 관제탑이 안 보인다
2022-12-27 19:06
컨트롤 타워는 우리말로는 관제탑이다. 이 관제탑은 공항에서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비행고도, 이착륙 순서와 활주로를 지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관제탑이 모든 주변 항공기의 비행궤적과 풍향, 풍속 등을 잘 파악한 후 정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을 경우 항공기들 안전운항이 큰 위협을 받게 된다. 바야흐로 전 세계는 지금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경제안보가 모든 국가에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경제안보를 중시하고 대통령실에 이를 담당하는 비서관직을 신설하였다. 그러나 경제안보라고 간주되는 사안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고 각국이 취하는 정책도 불투명하다 보니 경제안보에 대해 실효적인 방침을 내놓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를 감안해도 지금 경제안보 분야에서 정부의 컨트롤 타워 기능이 잘 보이지 않고 각 부처들은 각개약진하는 바람에 우리 기업들은 당혹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안보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기에 이 같은 정책혼선은 차후 우리에게 값비싼 비용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 이런 혼선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경제안보와 관련하여 우리가 방향성을 잘 잡지 못하고 있는 영역 몇 군데를 짚어보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경제안보라는 개념이 중요시하게 된 첫째 이유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양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이 경쟁은 사실상 패권경쟁이다. 그리고 이 패권경쟁의 승패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미국은 한사코 첨단분야 기술과 장비가 중국에 이전되는 것을 막고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을 분리(decoupling)시키려 하고 있고 중국은 이런 저지망을 뚫으려 한다. 이 경쟁의 와중에서 한국기업들은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낀 샌드위치 형편이 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경제실리와 시장접근적 관점에서만 판단을 해서는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다. 중국시장이 여전히 크다는 미련이 있기에 당장 과감한 분리조치를 취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첨단기술에서 우위를 상실하면 패권이 넘어가는 사활적인 문제이기에 시장분리 속도를 늦출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동맹인 우리는 시장분리가 결국 불가피하다고 본다면 단기손실이 있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안보적,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러면 미국의 중국 견제효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우리 기업에 득이 될 수 있다. 단, 미국기업보다 우리 기업들이 이 조치에서 더 앞서 나갈 필요는 없다.
다음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구상하고 있는 ‘인도.태평양경제협의체(IPEF)’와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위한 ‘Chip-4’와 같은 협의체에 어떤 방식으로 동참할까 하는 문제이다. 이는 미국이 중점 추진하고 있는 의제이므로 이에 참여할 필요는 있으나 이 협의체가 어떤 성격을 띨 것인지 잘 따져보고 참여해야 한다. 그냥 무턱대고 참여만 할 것이 아니라 이 협의체가 새로운 공급망을 형성하고 이 공급망이 참여국 모두에게 호혜적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이들 협의체의 규범형성(rule-making) 과정에서 우리 국익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 협의체들이 미국의 이익만 반영하고 중국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우리가 다른 국가와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안보에 중요한 제품의 공급망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경우 중국시장은 물론 중국에 대한 지렛대도 상실하게 되는 단점이 있으므로 이런 입장을 협의체에서 반영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원자재, 희귀광물 등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 문제가 있다. 이 전략 자원을 필요로 하는 개별 기업들이 전방위로 뛰어 확보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원 민족주의에다 자원무기화가 함께 진행되는 현 국제정세를 보면 각국 정부의 협조 없이 기업 단독으로 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 컨트롤 타워가 각 기업의 노력을 파악하고 전반적인 교통정리를 하면서 기업을 지원, 독려하고 상대 정부와 협력의 틀도 만들어 내야 한다. 과거 자원외교를 적폐로 몰던 정권의 우매함이 지금 우리가 겪는 원자재 및 주요광물 공급불안을 불러왔다. 물론 정권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던 당시 공기업 경영진의 태도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자원개발 사업을 단기적 성과라는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이 밖에 경제와 외교, 안보이익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개별 사안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입장이 모호한 면이 있다. 예를 들면 화웨이 통신장비를 우리 통신 인프라망에 설치하는 문제는 전 정부 이래 여전히 개별 기업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단기적 성과계산에 급급한 기업에 장기적 국가안보 리스크를 판단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원자력 발전소 해외진출과 관련하여 우리 한수원과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법적 분쟁을 벌이는 것도 걱정스럽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원자력 협력분야에서 양국은 제3국에 동반진출 하기로 하였기에 미국은 한국이 이 약속을 안 지킨다고 여길 것이다.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이를 조율해주는 주체가 없으니 한수원이 폴란드, 체코 등에 독자진출을 주장하여 문제가 커지는 꼴이다. 이 두 사안 모두 경제안보 분야 컨트롤 타워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