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반정부 시위 두번째 사형 집행…UN 여성기구서 퇴출

2022-12-16 16:04
'히잡'에서 시작된 이란 반정부 시위 3개월째 지속
이란 당국, 청소년·청년 등 시위 가담자 무차별 폭행 및 사형
국제 사회 비판 여론 들끓어...EU 제재에 UN 내 기구 퇴출도

이란 테헤란 거리 모습 [사진=AFP 연합뉴스]

이란 반정부 시위가 3개월째 지속되는 가운데 희생자들이 늘면서 이란 정부를 향한 국제사회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시위는 지난 9월 학생이었던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올바르게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됐다 의문사하면서 촉발됐다. 당초 여성 인권 운동의 성격을 띠었지만 남성과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반정부 시위로 번져 나갔다.

국제사회도 적극적인 지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란 당국은 시위 관련자를 잇따라 사형시키는 등 더욱 폭압적인 행태로 맞서는 모습이다.  
당국, 첫 사형 집행 후 나흘 만에 '공개 교수형' 강행

반정부시위에 참여했다가 12일 사형이 집행된 이란의 마지드레자 라흐나바드(23,왼쪽)와 지난 8일 형이 집행된 시위 참가자 모센 셰카리(23,오른쪽) [사진=BBC News]

이란 당국은 지난 12일(현지 시각) 시위 가담자에 대한 첫 '공개' 사형을 집행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사법부 등은 레슬링 선수 출신의 마지드레자 라흐나바드(23)에 대한 공개 교수형을 집행했다. 이란 당국은 "라흐나바드가 흉기로 보안군 2명을 살해하고 4명을 다치게 했다"며 "그는 '모하레베'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모하레베는 '신에 대항해 전쟁을 벌인다'는 의미의 페르시아어다.


반정부 시위 관련 사형 집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비공개로 진행된 첫 번째 집행과 달리 이번 집행은 도심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당국은 손발이 묶인 채 검정 천을 뒤집어쓴 라흐나바드의 시신을 건설 크레인에 매달아 공개했다. 

지난 8일에는 역시 모하레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모센 셰카리(23)가 비공개로 처형된 바 있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이란 프로축구 선수 아미르 나시르-아자다니(26)도 사형 위기에 처했다. 이 밖에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했던 이란 대표팀도 반정부 시위에 연대 의사를 밝히기 위해 경기에서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았는데, 관련해 대표팀이 귀국 후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보도까지 나온 상황이다. 

국제 앰네스티는 최근 이란 정부가 2명을 처형한 데 이어 반정부 시위 관련 20명을 추가로 교수형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위를 감시해 온 이란 인권 활동가들은 지난 9월 중순 이후 최소 488명이 사망했으며, 1만8200명이 구금됐다고 주장했다.

미성년자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망자 가운데 미성년자가 44명으로 전체의 약 15%를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지난 10월 수영 선수 출신의 16살 소녀 아스라 파나히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보안군의 구타로 목숨을 잃었다.

이란인권센터(CHRI)는 "구금된 미성년자 중 최소 3명이 사형 위기에 처했다"면서 "이란 정부는 아이들을 거리에서 총살할 뿐 아니라 교수대로 보낸다"고 비판했다.

'UN 여성기구 퇴출' 국제 사회 비판 확산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총회에서 ECOSOC 산하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이란을 제명하는 내용의 결의안 찬반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첫 사형 집행이 이뤄진 지 나흘 만에 당국이 반인도적인 공개 처형을 강행하자 국제사회는 일제히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란은 이번 사건으로 국제연합(UN) 산하 여성 기구에서 퇴출 당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14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는 2026년까지 남은 임기 동안 이란을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제외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CSW는 양성평등과 여성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활동하는 기구다.

미국의 제안으로 결의된 이번 사항은 54개국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일본, 유럽 등 29개국이 찬성하며 가결됐다. 중국과 러시아 등 8개국은 반대했고, 16개국은 기권했다. 

린다 토마스 그린필드 UN 주재 미국 대사는 "이란을 퇴출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며 "이란이 회원국으로 있는 것은 위원회의 신뢰성에 큰 오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란 여성들을 지지할 것이며, 이란이 여성지위위원회에서 자국 여성들을 공격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의 UN 대사 아미르 사이드 이르바니는 "결의안은 허구의 내용에 따른 근거 없는 내용과 날조된 주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이 불법 행위는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하는 위험한 선례를 만들 수 있다"고 반박했다.

유럽연합(EU)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공식화하며 압박에 나섰다. EU 외교이사회는 지난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반정부 시위 강제 진압 및 인권을 침해한 이란인 24명과 관련 기관 5곳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결정했다. 특히 이란 국영 방송사 IRIB는 협박과 고문으로 끌어낸 반정부 인사들의 '강제 고백'을 방송하는 등의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이란 보수 강경파 종교 지도자인 세예드 아흐마드 카타미 등 성직자를 비롯한 이란군 고위인사 등이 제재 대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이란은 EU가 그들을 강력히 규탄할 것이며, 이란 여성과 이란 내 평화로운 집회를 지지하기 위한 어떠한 조처든 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사형 집행은 당연히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