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김정은 딸의 등장 …30년 햇볕정책 결말 '4대 세습'

2022-12-08 06:00

[이재호 논설고문 (극동대 교수)]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 9살 난 딸을 데리고 나타나다니,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8일과 26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화성-17형) 발사 현장과 자축 행사장에 딸 김주애를 데리고 나왔다. 김주애는 엄마(리설주)와 함께 발사 순간을 지켜보았고 아버지 손을 잡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진 속 부녀(父女)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바람에 공포의 미사일은 어디로 가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소녀의 이미지만 오래 남았다. 딸이 엄마를 많이 닮아 관심도 그쪽으로 쏠렸다. '판박이' '붕어빵'이라고들 했다. 그 틈새에서 비핵화 논의는 잠시 실종됐다. 김정은이 노리는 게 이거라면 성공한 셈이다.
 
'후계자 수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김주애 위로는 세 살 많은 오빠가 있다. 북의 남아선호(男兒選好) 현상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 발사 현장의 군 관계자들이 김주애를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부르고, 줄지어 그에게 ‘폴더 인사’를 했다고 후계 운운하는 건 성급하다. 김정은도 어릴 때는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미사일 공포는 사라지고 소녀의 미소만

김 위원장은 1남 2녀로 알려진 자녀 중에 왜 김주애만 데리고 나타났을까. 오빠(12세)나 막내 여동생(5세)을 데리고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김주애가 김정은이 원하는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김주애는 백두혈통이다. 김일성 왕조의 직계 핏줄이다. 백두혈통은 김씨 왕조를 떠받치는 정통성(legitimacy)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백두혈통이라야 주민들에게 먹힌다. 김주애가 미사일 발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북한 당국이 즉시 “백두산 정신의 핵은 다름 아닌 수령 결사옹위 정신”이라며 주민들에게 백두혈통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백두산 행군을 독려하고 나선 것은 그래서다.
 
둘째, 김주애는 북의 미래 세대다. 미래의 주역이 될 그를 핵·미사일과 나란히 놓음으로써 핵·미사일도 그리고 북한 체제도 영원하리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 김주애는 북한의 미래와 안전을 담보하는 상징인 것이다. (물론 김주애의 오빠와 여동생도 백두혈통이고 미래 세대다. 그러나 십중팔구 유학 중일 오빠는 공식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크기에 아직 공개하지 못했을 것이고, 여동생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리설주 우상화’ 시작되다
 
마지막으로 김주애는 엄마 리설주(33)와 닮았다. 이 대목이 핵심이다. 딸이 엄마를 안 닮고 누구를 닮겠는가마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에 머리 스타일(긴 머리 반묶음)과 옷차림까지도 닮았다. 꾸미다 보니 같아진 게 아니다. 세심하게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두 사람 사진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리설주의 위상 제고, 곧 우상화를 위해서다,

리설주는 백두혈통이 아니다. 김일성의 두 번째 부인으로 항일운동을 했던 김정숙(1917~1949) 같은 ‘여성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김정숙은 1941년 소련군 극동88정찰여단에서 활약했고 지금도 북에선 국모 대접을 받는다.) 리설주는 평범한 상류층 집안 출신으로 한때 은하수관현악단 가수로 활동했다. 2009년 김정은과 만나 세 아이를 낳긴 했지만 북한판 영부인으로서 아우라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김정은은 이런 리설주의 위상을 높여줄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리설주가 어린 자식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려면 격(格)부터 달라져야 했다. 특히 자신의 여동생이자 리설주에게는 시누이가 되는 김여정(34·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생각하면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게다. 김여정은 누가 뭐래도 정통 백두혈통이 아닌가.
 
올케와 시누이에게 맡겨진 北
 
리설주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는 딸 김주애를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백두혈통인 김여정에는 못 미치지만 리설주도 백두혈통(김주애)을 낳은 엄마다. 따라서 리설주를 차제에 사실상의 백두혈통에 ‘편입’시킴으로써 시누이인 김여정과 힘의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려면 엄마 김주애가 리설주와 닮아야 했다. 누구든 김주애를 보면 리설주를 떠올릴 정도가 되어야 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발사 현장에 나온 모녀의 사진을 보면 당 선전선동부에서 세심하게 터치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했다. 이 또한 김정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정은 자신도 집권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할아버지 김일성과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지 않은가.
 
김정은의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생모 고용희(1953~2004)와 여성 편력이 극심했던 아버지 김정일의 순탄치 않았던 결혼생활을 보면서 자랐다. 고용희는 재일동포로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북에 들어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김정일의 눈에 들어 네 번째 부인이 됐다. 김정일과 사이에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 세 자녀를 낳았지만 2004년 지병으로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까지도 김씨 왕조의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김정은은 스무 살이었다.

 
生母 고용희와 같은 운명은 NO!
 
고용희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상화 시도가 있었다. 김정일(2011년 사망)의 ‘10·8 유훈’에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가 된 데에는 모친(고용희)의 뛰어난 노력과 공적 덕분”이라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희는 2000년대 초와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 한때 ‘평양의 어머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신분이 낮은 무용수 출신인 그를 누구도 영부인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생모에 이어 아내인 리설주까지도 그런 운명으로 떨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리설주도 고용희와 같은 연예인(가수) 출신이다. 리설주가 남편이 내민 그 줄을 잡고 ‘백두혈통’의 성(城)에 무난히 입성할 수 있을까. 부모를 따라 자식의 신분을 바꾸는 게 아니라 거꾸로 자식을 따라 부모의 신분을 바꾸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진짜 백두혈통인 시누이 김여정과 관계에는 문제가 없을까. 올케와 시누이 관계라는 게 마냥 좋을 수만은 없고 보면 향후 북한을 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리설주와 김여정은 한 살 차이다.
 
드라마 ‘궁중 잔혹사’를 보게 될 수도
 
권력은 부자(父子) 간에도 나눠 갖지 못한다. 하물며 올케와 시누이 사이에서야. 김정은의 힘이 조금만 빠져도 두 여자는 치열한 권력 쟁패로 치달을 수 있다. 리설주의 아이들에게 김여정은 고모다. 북한에서 ‘고모’란 어떤 존재일까.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반역죄로 몰아 고사총으로 잔인하게 처형한 바 있다.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한 편의 리얼 드라마, ‘궁중 잔혹사’를 시청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예고편은 오래전 김일성 시대에 아들 김정일과 그의 계모 김성애(1924~2014·여맹위원장)가 이미 보여준 바 있다. 김정일은 계모에 맞서기 위해 계모와 아버지 김일성의 사이를 끈질기게 이간질했고 마침내 1974년 자신을 중심으로 한 후계 체제를 굳힘으로써 김성애를 밀어냈다. 세습 왕조의 행로와 운명이 대개 그러하다.
 
忍耐하며 ‘레짐 체인지’의 순간 기다려야
 
어떤 경우나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은 부정적이다. 9살 난 어린 딸을 통해 대대손손 핵과 미사일로 인민을 지켜주겠다고 공언까지 했는데 핵을 포기하겠는가. 비핵화는커녕 남북 관계도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진정한 관계 개선보다는 이런 식의 핵·미사일 이벤트나 쇼에 치중할 게 분명하다. 그러다가 언제든 국지 도발로 긴장도 조성하고 내부 결속도 도모할 것이다.
 
크게 보면 이게 30년 햇볕정책의 결말이다. 햇볕정책의 양탄자 위에서 현대사에 전무후무한 4대 세습이 진행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리설주 우상화 작업도 이미 시작됐다. 햇볕정책에 대한 총체적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뒤틀린 남북 관계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그렇다고 책임 논쟁을 벌이자는 것은 아니다. 책임 논쟁은 거대한 블랙홀이 돼 한국 사회를 집어삼킬 것이고 그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다. 다만 햇볕정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얻자는 얘기다.
 
다시 ‘인내와 관리의 시간’인 듯하다. 섣부른 대화도, 대결도 자제하면서 상황을 관리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과욕은 피해야 한다. 역대 진보‧좌파 정권이 ‘임기 중 남북 정상회담 개최’라는 욕심을 버렸다면 대북 정책에서 시행착오를 그만큼 줄였을 것이다. 관리하면서 인내하다 보면 누가 아는가, ‘궁중 잔혹사’의 결과로 왕이 바뀌듯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의 순간이 다가와 있을지도.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