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갈등 봉합의 해법은 '관용'

2023-01-02 05:00

[조상희 사회부장]

이념과 성별, 세대, 지역, 빈부 뒤에 오는 공통된 글자를 꼽아보자면 ‘갈등’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다원주의를 이념적 토대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갈등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요소다. 하지만 단순한 갈등 수준을 넘어 생각이 다른 쪽을 사멸시켜야 하는 적(敵)으로 몰아버리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다름을 용인하지 못하는 적개심 가득한 분열 양상은 문재인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봉합되지 못하는 양상이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종합해 ‘갈등 지수’를 산출한 결과 한국의 갈등 지수는 3위를, 정부의 갈등관리능력을 나타내는 갈등관리지수는 27위를 기록했다.

성난 민심은 이런 적개심을 검찰을 통해 표출해 왔다. 본인 입맛에 맞는 시민단체를 부추기거나 앞세워 반대파 숙청을 위한 각종 고소·고발에 쌍심지를 켰다. 시민들만 탓할 것은 아니다. 검찰도 부화뇌동한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이 무혐의나 각하 처리한 사건이 윤석열 정부 들어 줄줄이 재수사 대상에 오르고 있다. '채널A 사건'을 보도한 MBC 관계자들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특혜 휴가 의혹' 사건에 대한 재수사 명령이 대표적이다.

재수사를 하라는 것은 이전 수사가 '정치 수사·봐주기 수사'란 전제가 깔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론이 뒤바뀐다고 해도 이전 수사나 이번 수사 중 하나는 '정치 검사'에 의한 보복 성격의 수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갈수록 심화하는 사회 갈등 원인으로 정권 교체기마다 '적폐 청산' 등 저마다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전 정권에 대한 사정 작업이 손꼽힌다. 수사의 핵심은 환부만 신속히 도려내야 하는데 삼족을 멸했던 봉건시대의 구습을 답습하듯 사건의 핵심과 관련성이 적은 실무자들까지 수사 대상에 올리면서 반대 진영의 거센 반발을 불러온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교육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교육문화수석과 교육부 장차관을 비롯해 전·현직 공무원, 민간인까지 25명 안팎을 대거 수사 의뢰 대상에 올린 바 있다. 진상조사 보고서에 실무급 직원들까지 '부역자'로 기록되자 공무원 사회의 내부 분위기는 혼란 그 자체였다. 당시 '인적 청산'이 아닌 '시스템 개혁'을 강조한 대통령의 수습성 발언에 대대적인 사법적 단죄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책임 정도가 적은 일선 공무원도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공직사회가 더욱 위축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경제 상황이 지난해보다 더 가혹할 것으로 관측되는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통합과 소통, 관용이 요구되는 한 해다. 정치적 사안과 생계형 범죄 수사에서도 관용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재수사와 5공 비리 수사를 주도한 검사 출신인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자서전을 통해 "무섭고 엄정한 검사의 일은 검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따뜻한 검사의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했다.

정치적 사건에서 주범이 아닌 하위 피의자와 생계형 사범에 대해선 법경제학 관점에서 기소유예나 벌금형 등 선처를 확대하는 것을 고민해 볼 시기다. 검찰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배려와 공감을 통한 관용의 정신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팍스 로마나'는 관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로마제국 흥망사를 다룬 '로마인 이야기'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인보다 못한 지력, 켈트인보다 못한 체력, 카르타고인보다 못한 경제력을 가진 로마가 1000년이나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관용'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민족들을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로마는 역설적으로 도저히 관용할 수 없는 문화와 습관을 지닌 민족들을 받아들이고 동화하는 데 실패하면서 서서히 붕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