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대란] 그때그때 다른 신의칙 적용···'인건비 쓰나미' 방어막 없는 산업계

2022-11-16 18:40
법원 '예견 가능한 경영난' 기준 모호
'인건비 따른 재정 타격' 해석 제각각
3高 등 경영난 속 경쟁력 하락 우려
업계 "세부적·합리적 기준 마련해야"

[사진=연합뉴스]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소송이 원고 일부 소송으로 끝이 나면서 산업계가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법원의 모호한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 기준이 여전하다며 향후 산업계를 둘러싼 통상임금 소송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신의칙 인정, 기업마다 다르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금호타이어 소송의 쟁점은 신의칙 적용 여부에 갈렸다. 재판부는 금호타이어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해도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고 봤다. 지난해 기준 2조6012억원의 매출 규모를 고려할 때 통상임금을 반영해도 기업 존립이 위태롭지 않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2020년 7월 한국GM‧쌍용자동차가 근로자들과 벌인 소송에서는 신의칙을 인정하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법원은 사측이 예측 못한 새로운 재정적 지출이 발생, 경영상의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봐 신의칙을 인정했다. 다만 그해 8월 기아와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았고,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 통상임금에서는 대법원이 사측의 손을 들어준 상고심을 파기해 원고 승소 취지로 부산고법에 돌려보내는 등 사측이 번번이 패하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12월 통상임금 소송이 빗발치자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처음으로 관련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정기성(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지급), 일률성(일정 조건을 맞춘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 고정성(업적이나 성과 등 추가 조건과 관계없이 지급)을 들며 계약 당사자 간의 신뢰를 의미하는 신의칙 원칙을 제시했다. 기업이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를 통상임금 산정의 예외로 보겠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판단 기준으로 삼은 2013년 경영 실적이 양호했다며 2014년과 2015년의 경영 악화는 예견 가능한 일시적 어려움으로 판단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호타이어의 경우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인해 완성차 업체의 신차 감산이 신차용 타이어 매출 타격으로 이어졌다”면서 “이를 예측 가능한 범위로 규정한다면 어느 기업이 수긍할 수 있겠는가”라고 토로했다.
 
◇車‧조선, 통상임금 문제 취약…임금 불평등 우려까지
 
한편에서는 최근의 글로벌 경기 침체와 원자재 가격 급등,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현상 등 기업 경영의 불투명성이 극심한 상황에서 법원이 지금처럼 통상임금의 신의칙 원칙을 모호하게 규정한다면 기업들의 경쟁력 하락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특히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이 긴 자동차와 조선 등의 기간산업은 통상임금 이슈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다. 급격한 미래차 전환으로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해야 하는 완성차 업계는 투자 부담이 더 커졌다. 통상임금 판결로 인해 기업들이 신입 직원들에게 낮은 연봉을 제시하면서 같은 직장 내 임금 격차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우 이러한 통상임금 이슈를 벗어나고자 2014년부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에 휘말렸고, 이후 통상임금의 재산정 작업에 들어가는 내홍을 겪는 등 성과급 지급 문제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한편 재계는 이날 금호타이어 판결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법원이 신의칙 원칙을 명확히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경영계는 이번 판결로 노사 간 합의를 신뢰한 기업이 막대한 추가비용 부담을 지게 돼 유감스럽다”면서 “신의칙 불인정 근거로 본 경영지표나 경영상황 등은 외부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신의칙 판단의 고려요소일 뿐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법원의 통상임금 신의칙 판단에서 노사가 모두 예측할 수 있는 세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아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