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행안부·서울시 상대 국가배상 소송 추진한다...'인과관계' 관건
2022-11-10 19:04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와 법무법인 광야는 이태원 참사 사망자 유족과 부상자들을 대상으로 국가배상 청구인단을 모집하고 있다. 굿로이어스에 따르면 현재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 인원은 10여 명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법률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전수미 변호사(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벗어나려거나 경감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한민국·지자체를 피고로 하는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하려 한다"고 소송 추진 사유를 밝혔다.
"지자체 '재난안전법'·경찰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
국가나 지자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가배상법'이다. 국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 등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 변호사 등은 먼저 행안부·서울시·용산구에 대해 '재난안전법'을 위반한 책임을 물어 국가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봤다. 재난안전법 제20조는 행안부 등 재난관리책임기관의 보고 방법과 지침을 규정하고, 제25조는 시‧군‧구 안전관리계획 수립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염건웅 교수(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예방이 가장 중요하고, 현장 통제가 이뤄지기 전 계속 계획을 검토하면서 안전 계획을 수립하고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통제했어야 했다"며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면 행안부와 지자체 등이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법령을 위반한 책임을 물어 국가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는 경찰관이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는 경고·억류·피난 같은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윤희근 경찰청장이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미 인정했기 때문에 향후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데 중요한 판단 잣대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과거 '염전 노동 착취' 사건을 대리해 국가배상 판결을 받아낸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사고 발생 몇 시간 전부터 경찰력 동원을 요청하는 신호들이 100건 넘게 접수된 만큼 경찰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참사"라며 "국가배상 소송에서는 매뉴얼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112신고 이후 위험 단계를 격상하거나 경력을 보강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점으로도 이를 입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쟁점은 '정부 위법행위가 희생으로 이어졌나' 여부
2011년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법원은 지자체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급류에 떠밀려 사망한 A씨 유족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재난관리 책임기관인 서초구가 산사태 경보를 제때 발령하지 않았고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주민을 대피시키지 않았다"며 서초구청이 유족에게 4억7000만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에서 쟁점은 정부와 지자체, 경찰의 위법행위가 피해자 사망으로 이어졌는지다.
2012년 길을 가던 여성을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 잔인하게 살해한 오원춘 사건 당시 112신고를 받은 경찰의 미흡한 대처가 공분을 일으켰다. 피해자 가족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국가가 범행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면서 유족에게 9000만여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 판단에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경찰관들 위법 행위가 피해자 사망으로 이어졌는지를 확신할 수 없다며 다른 판단을 했다.
전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는 국민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직무유기 등 위법 소지가 크다"면서 "과거 사례나 판례를 통해 검토했을 때 최소한 과실로 인한 국가배상이 인정될 여지가 크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