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인사이트] 중국 경제의 지난 장면과 새로운 상황

2022-11-09 09:50

영국 콜린스 사전이 '2022년 올해의 단어'로 '영구적 위기(permacrisis)'를 선정했다. '영구적인(permanent)'과 '위기(crisis)'를 합쳐 만든 이 말은 불안정과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을 뜻한다.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 탈(脫)세계화 경향과 지경학적 파편화, 코로나19 재확산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현재의 시대상이다. 하나의 위기는 다른 위기로 증폭된다. 이 와중에 맞이한 한·중 수교 30주년의 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그간의 성취를 되돌아볼 겨를도 없이, 풀어야 할 과제는 많은데 새로운 상황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올해 초 중국과 한·중 관계의 지난 장면 및 당면한 현상들을 짚어본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 연말이 다가오며 다시 복기해 본다. 네 가지 장면이 새삼스럽다.

첫째 중국은 모두가 우려했던 방향으로 회귀하지 않았다. 역사를 30년 주기로 관찰해온 필자는 1988년 석사 학위 논문(덩샤오핑 체제의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개혁에 관한 연구)에서 이데올로기의 변용을 중심으로 경제개혁개방의 속도와 방향을 예측했다. 결론은 이랬다. "속도는 향후 시기 별로 완급을 달리할 수 있으나 방향은 불변할 것이다." 당시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이미 10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세계의 주류적 시각은 여전히 중국의 '마오쩌둥 시대 회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 20여 년간 중국은 과거로 회귀하지 않았다.

둘째 중국은 모두가 기대했던 방향으로 가지도 않았다. 경제가 발전하면 중국에도 서구식 민주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미국 행정부를 비롯한 서방 세계가 그렇게 생각했기에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가능했고, 중국은 WTO를 발판 삼아 성장 가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실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됐던가?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한 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을 이루어냈다. 중국이 경제 발전을 하고 나면 정치적 민주화로 갈 것이라는 서방의 예측은 하나의 가설로 끝났다. 중국은 더욱 자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더욱 사회주의적인 색채도 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국가 구조이자 흐름이다.

셋째 중국은 세계가 어려웠던 시기에 오히려 커져 왔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에 이어 그로부터 10년 뒤 미국발 금융위기 때에도 중국 경제는 영향력이 확대됐다. 양적인 성장을 하면서도 경제산업 정책의 변신을 계속 모색해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 시점은 아시아 외환위기의 파고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후 내수 확대와 구조조정에 나서기 시작한 '제10차 5개년 계획(10·5 계획 2001~2005)' 시기였다. 제12차 5개년 규획(12·5 규획 2011~2015) 시기부터는 균형과 조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했다. 14·5 규획(2021~2025)에 접어들어선 경제산업의 자주화, 디지털 경제, 녹색경제, 쌍순환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이런 사이에 국내 총생산(GDP) 수치 기준의 경제성장률은 해마다 낮아졌다. 적어도 현재까지 경제가 추락하리라는 ‘경착륙’ 상황은 현실화하지 않았다. 최근 2~3년간 경제성장률 수치가 해마다 큰 폭의 등락세를 보여왔지만, 기준을 달리하면 결론도 달리 나온다. 연간 단위가 아닌 2~3년 이동평균선을 기준으로 본다면 매년 1%포인트씩 낮아지고 있다. ‘연착륙’ 내지는 ‘롱(long) 랜딩’(점진적 하락)에 가깝다. 물론 각종 경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넷째 한·중 경제 관계의 폭과 깊이는 상상 범위를 넘어섰다. 수교 이후 30년을 큰 틀에서 되돌아본다면 중국의 경제 대국 급부상과 이를 가장 잘 활용한 한국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국은 대중국 무역과 투자가 동시에 급증했다.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무역수지 흑자액보다 더 많은 이익을 중국에서 일궈내던 시기도 있었다. 중국의 성장 효과가 고스란히 한국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성장하면 한국도 성장했고 중국 수출이 잘되면 한국 수출도 잘되는 시절이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중국을 얼마나 제대로 파악해 왔는지 생각해본다. 돌이켜보면 중국은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이면서 세계가 어려울 때 나 홀로 성장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은 역설에 가깝다. 아마도 중국 경제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무한한 공급 능력과 글로벌 시장 수요에 대한 대체 능력, 그리고 제도와 정책의 반(半) 개방성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요소들이다. 중국이 내다 팔면 값이 떨어지고, 중국이 사면 값이 올랐다. 중국이 사지 않으면 팔 데가 마땅치 않고 중국이 팔지 않으면 공급망 대란이 일어나는 상황이 됐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일반 법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반 개방성은 많은 외국 기업들의 원성을 샀지만, 중국 스스로는 외풍에 강한 경제 체질을 만들었다. 중국을 볼 때 양적인 측면에 치중한다면 잘 보이지 않는 중요한 흐름이다.

중국은 우리에게 여전히 ‘알 듯 말 듯 한 나라’다. 그 나라가 또 변해간다. 이번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나온 경제 메시지는 일견 모호하다. 하지만 잘 관찰해보면 발전과 안정의 동시 추구로 요약할 수 있다. 발전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은 앞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과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발전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경제사회 측면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안정화 정책을 추진해나가겠다는 의도다. 대내 정책의 본격화 시점은 내년 양회(2023년 3월) 종료 후인 2분기부터가 될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대 미국 관계에 있어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되 중심은 유지해 나가려 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이 추진할 예정이거나 이미 시작한 미래 경제산업 정책의 4대 초점은 산업 공급망 안정화와 에너지 다원화, 지역·계층 간 균형발전과 민생서비스 확충이다. 앞으로의 전개 양상과 관련해 몇 가지 시나리오 관점의 가설을 상정해볼 수 있다.

산업 공급망 안정화와 에너지 다원화 측면에서 중국은 해외 도입이 필수적인 핵심 원·부자재 확보를 위해 관련 국가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과거 중국은 해외 자원 확보를 위해 직접 진출을 통한 개발 위주로 나섰다가 해당 국가와의 복잡한 구조적 마찰이 발생하면서 큰 혼란을 겪었다. 앞으로는 해외 지역 별로 서로 주고받는 경제 교류 협력의 관계 속에서 공급망 경제 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자간 통상외교에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

다음으로 지역 간·계층 간 균형발전과 민생서비스 확충은 이제까지 시행해온 도시화 발전 전략을 계속 추진해나갈 공산이 크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발전을 단기간 내 이루었으나 그 대가로 지역 간·계층 간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내년 2분기부터 본격화되는 20차 당 대회 이후의 리더십은 불균형 해소를 위한 신형 도시화 전략을 재점화할 수 있다. 취업과 교육, 의료, 공공 서비스를 전국적 범위에서 강조하며 관련 정책을 속속 내놓을 것이다. 또한 많은 지방정부가 종래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국유지를 건설 개발사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재정의 상당 부분을 조달했으나 이제는 지방 특화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비록 그 속도는 비교적 완만하게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과정에서 기업 차원의 새로운 시장 기회가 많이 생겨날 전망이다.
 

중국 도시화 전략의 제도적 개혁과 HW 및 SW 기회 [자료=중국경제관측연구소]

 

박한진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필자 주요 이력

▷현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 ▷현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객원교수 ▷전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 ▷현 한중사회과학학회 부회장 ▷중국 푸단대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