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인사이트] ​세계가 바뀌고 중국도 바뀌면 한중 경제교류 틀도 새로 짜야

2022-07-21 07:00

 

한-중 경제교류의 흐름[그래픽=임이슬 기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2년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았고 필자도 중국 업무 경험이 30년이나 됐다. 수교 후 5년, 10년 단위로 한·중 경제교류 성과를 기록했다. 수치가 달라졌을 뿐 양적 확대 흐름은 변함없었다. 30년이 된 2022년, 지난 흐름은 여전히 유효한가?

한·중 경제 관계를 큰 틀에서 되돌아보면 중국 경제의 급성장과 이를 잘 활용한 한국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교역이 전무후무한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30년간 한국 총수출액이 8배 증가했는데 대중국 수출은 60배 늘었다. 수출하면 중국, 중국 하면 수출로 통한 장기 특수였다.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1992년까지는 한국이 매년 적자였다. 흑자로 돌아선 것은 1993년이다. 대중국 가공무역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다. 수교를 계기로 한·중 투자협정이 체결되면서 대중국 직접투자가 증가했다. 중국에 설립한 공장들은 한국산 원·부자재와 중간재를 수입했고, 이것이 통계적으로 대중국 수출 실적으로 집계됐다. 이런 구조는 대중국 투자와 수출이 동시에 급증하고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중국에서 만든 제품은 선진국으로 수출됐다.

한때 중국 측에서 무역 불균형 시정 요구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양적인 팽창 속도가 워낙 빨랐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한국도 성장했고, 중국의 수출이 잘되면 한국도 좋았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성공은 재능과 지운, 시운의 합작품이다. 재능은 가진 재주고, 지운(地運)은 지리적 특성이다. 시운(時運)은 좋은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여기에 한·중 경제교류를 대입해보자. 재능은 한국 경제와 기업의 역량과 실적이고 지운은 거대 시장(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것이다. 시운은 국제 환경이다.

재능은 대중국 수출과 무역수지 실적의 변화로 살펴볼 수 있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대중국 수출은 2010년경부터 흐름이 달라졌다. 연도별로 증가와 감소가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1996년 100억 달러, 2010년 1000억 달러를 각각 넘어선 후 2000억 달러 선에는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중국 하면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이란 등식도 2010년 이후 흔들리는 듯하다. 2022년엔 1~4월 65억 달러 흑자(누계)였으나 5월과 6월 각각 10억 달러 이상 적자를 기록했다. 원인을 분석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올해 들어 상하이 등에서 코로나 봉쇄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고 대중국 수출이 정점을 지났을지 모른다는 얘기도 있다. 조금 더 관찰이 필요하겠지만, 과거 한때 +0.8(매우 밀접한 동행 관계) 수준까지 갔던 양국 간 경제의 상관계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은 잘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다. 상관계수가 현저하게 줄어든다면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는 유리하겠지만 자칫 중국 시장에서 성과도 위축될 수 있다. 한·중 간 지리적 위치 관계인 지운은 변화가 없는 요소다. 한국 기업은 여전히 중국 내 상품과 서비스 수요에 가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시운이다. 지난 30년간 시운은 세계는 정치적으로 평온했고 경제적으로는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였다. 상품과 서비스, 인적 요소가 국경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배치됐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 후 30년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 교류 성과를 거둔 가장 큰 거시적 배경은 세계화였다.

지난 30년 미국과 중국은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공생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은 가공무역을 하며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들어 공급했다. 미국은 싼값에 사갔다. 중국은 돈을 벌었고 미국은 물가 걱정을 덜었다. 중국은 번 돈을 쓰지 않고 미국 국채를 사 모았다. 미국은 그 덕에 장기 저금리 시대를 유지했다. 국제관계에서 중국은 미국이 짜 놓은 국제질서를 받아들였다. 미국은 개입주의 외교정책과 ‘워싱턴 컨센서스’로 유일 패권 국가를 자처했다. 양국은 충돌은커녕 갈등에 빠질 일도 드물었다.

'세상은 나뉜 지 오래면 합치고, 합친 지 오래면 나뉘는 법(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이라고 했다. 제국의 흥망성쇠와 이합집산을 그려 낸 삼국지 첫 구절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양국 간 경제적 동거에 틈을 가르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 달라졌고, 중국도 양적 성장을 접고 질적 발전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수출에 의존한 성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게 됐다.

이 같은 거대 흐름의 변화는 한국의 대중국 경제 교류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됐음을 시사한다. 이제까지 한국의 자본·기술을 중국의 노동력과 결합해 양적으로 키워왔다면, 앞으로는 속도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질적인 성숙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경제적 실용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협력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한국과 중국 간 새로운 경제적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양국 간에는 가공무역이 이미 시효를 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미래 전략 산업과 중국의 중점 육성 전략 사업은 상당 부분 겹친다. 이미 치열해진 경쟁이 갈수록 심화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종래엔 중국에 투자하고 부품·소재를 수출하면 성과로 연결됐지만, 앞으로는 중국의 정책적 변화와 새로운 시장 트렌드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회를 찾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우리가 잘하는 분야를 강조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보다는 중국이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내놓은 구조로 가야 한다. 그것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은 줄이고 협력 공간을 확대하는 길이기도 하다.

둘째, 중국의 도시화 정책에 주목해야 한다. 도시화 건설은 중국이 수십 년에 걸친 장기 고성장 정책 과정에서 누적되어온 지역 간·계층 간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추진하는 거대 국책 프로젝트다. 현재 총인구 대비 도시 거주 인구 비율이 65%, 도시 호적 인구 기준으로는 50% 수준인 도시화율을 높이겠다는 것이 목표다. 도시화 정책에 따른 시장 효과는 마치 인수분해하듯 시장을 나누어서 접근하는 세분화 전략이 필요하다. 도시화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면 토지 제도와 소득 분배 제도를 대거 손질하고(제도적 개혁), 지능형 교통체계 등 도시 인프라를 확충(하드웨어)하며 보건의료 시스템·교육·공공 서비스도 보완(소프트웨어)해야 한다. 여기서 전에 없던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앞으로 도시화 추세에 따라 중산층 인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중급 품질·중급 가격대 제품과 서비스 수요가 확대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셋째, 고령화 추세로 대표되는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실버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관련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3조 달러 수준으로 커지며 미용·건강·패션 등에서 온라인 쇼핑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동안 관심을 모았던 영·유아용품 시장은 고급화되면서 성숙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국 내 유아용품 생산업체들이 노인용품으로 옮겨가고 있고 월가 자금이 중국 실버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중국 증권가에서 들린다. 다른 한편에서는 젊은 세대(Z세대)가 경제 주력군으로 급부상하면서 소비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전통 차를 찾지 않고 커피를 즐기며 새로운 화장품 소비와 캠핑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변화는 대중국 경제의존도를 적절한 수준으로 줄이는 계기로 활용해야 하겠다. 동시에 중국 시장의 변화에 대해서는 당혹하기보다는 세심하게 관찰해서 양국 기업 공동의 이익 분모를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담당해나갈 수 있는 인력의 발굴과 육성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하겠다.




 

박한진: KOTRA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 중국 푸단대 기업관리학 박사 [사진=박한진 교수 제공]



필자 박한진: KOTRA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 중국 푸단대 기업관리학 박사


▷현 코트라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 ▷현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강의교수 ▷전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 ▷전 한중사회과학학회 부회장 ▷중국 푸단대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