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의 제왕학] 일극집중(一極集中) ..나라의 흥망이 한사람에 달려있다

2022-10-28 06:00
시진핑 2기 3부작 (1)

[박종렬 논설고문]

한 나라는 한 사람에 의해 흥망이 결정된다
 
 
“한 나라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흥성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一國 以一人興 以一人亡).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그 나라가 쇠망하는 것을 걱정한다. 그래서 반드시 현명한 사람을 찾아낸 뒤에야 죽을 수 있다. 그런데 관중은 어찌 그렇게 죽었단 말인가?” -소순의 <관중론>에서
 
현재 중국 자금성(紫禁城) 수뇌부는 공자의 <논어>보다 정치와 경제를 하나로 녹여 경세제민(經世濟民)과 부국강병(富國强兵) 원리를 설파한 관중(管仲·BC 725?~645)의 <관자>를 열심히 읽으며 G1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알려진 관중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재상으로 제갈량이 롤 모델로 삼았던 인물이다.
소순(蘇洵·1009~1066)은 <관중론(管仲論)>에서 후계 구도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죽은 관중보다 관중을 제(齊)나라 환공에게 천거한 포숙아를 더 높이 평가했다. 환공의 반대편에 섰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 관중을 천거해 제나라 재상에 오르게 한 포숙아의 지인지감(知人知鑑), 즉 사람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자질을 높이 산 것이다.
관중은 중국 춘추시대 초기 제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다. 환공(桓公)을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만든 책사(策士)였다. 하지만 후계자 문제를 분명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환공보다 먼저 죽었고, 제나라는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위기 상황을 맞았다. 소순은 바로 미묘한 권력이양의 기미(機微)를 통찰한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다.
소순은 중국 역대 명문장가 중 동파(東坡)로 널리 알려진 소식(蘇軾)과 소철(蘇轍) 형제의 아버지다. 두 아들과 함께 삼소(三蘇)로 불렸고 ‘당송 8대가’였던 그는 ‘응집(凝集)되어 있는 노천(老泉)’으로 일컬어졌다. 생사를 건 권력투쟁의 본질을 직시한 <관중론>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7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에서 권력이 이양되는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투쟁의 원형은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유덕자(有德者)에 천하가 돌아간다고 공맹(孔孟)은 가르치지만 ‘중국 25사(史)’를 비롯한 사서(史書)에 기록된 역사 현장에는 예나 지금이나 칼날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있을 뿐이다.
 
시진핑, 종신 집권 길을 열다
 
10월 23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69)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었다. 1990년대 제정된 국가주석 연임 제한 규정이 2018년 당대회에서 삭제되었고 그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직전 주석이었던 후진타오(胡錦濤·80) 시대까지 유지되었던 2연임 초과 금지 원칙을 깨고 사실상 영구집권의 길을 연 셈이다. 동시에 자신의 위상을 공식적으로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과 같은 반열에 올렸다. 시 주석은 이번 당대회에서 후계자 지정도 없어 마오쩌둥이 누렸던 ‘영수(領袖·최고지도자)’ 칭호를 부여받으면서 장기집권 체제를 완성했다. 마오쩌둥 이후 처음으로 종신 집권이 가능한 일극집중(一極集中)의 1인 영구집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시진핑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인 1953년에 태어난 5세대 지도자다. 그는 2013년 3월 후진타오 뒤를 이어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에 올랐으며 제6대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군 통수권자) 겸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일했다. 그는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중국 헌법에 명시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라는 ‘10년 제한’ 금지 조항을 삭제했고 2021년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를 통해 종신 집권의 기틀을 마련한다.
시진핑은 최근 20차 당대회에서 대만(臺灣) 무력 침공과 양안(兩岸) 통일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미국 CIA는 영구집권을 정당화할 만한 치적이 없는 시진핑이 본인의 3연임이 끝나는 2027년 이내에, 이르면 2022년 말에라도 대만 침공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주석 임기 ‘10년 제한’ 규칙을 당초 설계한 사람은 덩샤오핑이었고 1인 권력이 아닌 집단지도체제를 만들었다. 신격화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등 중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1인 지배체제’ 폐해를 실감한 덩샤오핑을 위시한 개혁·개방 시기 원로들 간 합의에서 도출된 후계구도 안정화 시스템이었다.
이때 당대 최고지도자가 한 대를 건너뛰어 차차기(次次期) 지도자를 후계자로 육성하는 ‘격대지정(隔代指定)’이란 관례도 세웠다. 차기 권력 계승자를 최소 5년 전 또는 10년 전부터 미리 낙점하고 부주석에 임명해 차기 지도자로 육성하는 방식이다. 이런 관례에 따라 시진핑 주석 역시 2007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에 의해 차차기 중국 지도자로 낙점됐다.
지난 세기 치열했던 정치 경험을 통해 중국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후계구도 안정화가 정치와 국가체제 안정의 근간임을 체득했다. 일찍이 마오쩌둥은 자신의 후계자로 린뱌오(林彪)나 화궈펑(華國鋒)을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덩샤오핑 역시 후야오방(胡耀邦)이나 짜오즈양(趙紫陽)의 실패가 있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 바로 전·현직 고위 간부들의 합의에 따라 새로운 지도자를 미리 정하자는 것이고, 그 결과가 바로 ‘격대지정’이다.
마오의 독단적 지시로 실시된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1957년 이후 상급 간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당원과 국가 공무원들을 벽지 농촌이나 공장에 보내 노동에 실제로 종사시키는 하방운동(下放運動), 줄여서 하방(下放)을 세 차례나 겪고 류사오치(劉少奇) 등 2인자의 죽음을 보면서 마오 1인 장기집권의 폐해를 몸으로 체험한 덩(鄧)은 후계자 선정이 정치적 안정의 요체임을 경험했다.
이 논리에 따라 1992년 14차 당대회에서 장쩌민(江澤民) 총서기를 선출한 이후 관행적으로 당대회를 통해 10년 단위(1기 5년)로 최고지도자가 바뀌었다. 장쩌민과 함께 후진타오를 후계자로 지명하여 장쩌민 이후 시대를 이끌도록 했다. 그리고 후진타오는 후계자 수업을 마치고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올라 10년 동안 중국을 통치했다. 장쩌민 역시 시진핑과 리커창 등을 후계자로 지명하여 2012년 제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집권하는 길을 열었다.
물론 덩샤오핑의 ‘원톱’ 후계자와 달리 18대 후계구도는 ‘투톱’의 경쟁 구도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임자가 차차기 후계자를 사전 낙점해 안정적인 권력 승계가 이뤄지도록 하면서 장쩌민·후진타오 시대는 각각 10년으로 막을 내렸다.
시진핑 주석도 과거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이번에 ‘자진 퇴진’을 선택한 이를 칭송할 때 등장하는 ‘높은 인품과 굳은 절개(高風亮節)'란 칭송을 받으며 떠나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함께 후계자 구도 군(群)에 선발되면서 서열 6~7위 상무위원으로, 더불어 국가부주석과 부총리로 임명되어 차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18차 당대회에서는 후춘화(胡春華)와 순정차이(孫政才)가 제6세대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정치국 위원에 진입해 후계구도에 성큼 다가섰다. 이들 역시 시진핑과 리커창의 경쟁 구도와 마찬가지로 양자 경쟁 구도를 형성해왔다.
그동안 중국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은 7~9인으로 적절한 권력 배분을 통해 파벌 간 균형을 유지해왔다. 또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 견제에 나서면서 ‘집단지도체제’라는 중국 특유의 권력 구도를 만들었다. 중국 공산당은 50대 초·중반 정치인을 상무위원으로 발탁해 후계자로 정치 수업을 시켰고, 후진타오 전 주석과 시진핑 현 주석 역시 각각 1997년과 2007년 당대회에서 54세로 상무위원이 된 뒤 이변 없이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하지만 시진핑은 이런 오랜 불문율을 깼다. 5년 전인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후계자를 지명해야 했지만 오히려 당 헌법을 개정해 3연임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절대 권력이 생길 수 없도록 국가주석을 2연임까지만 할 수 있다는 ‘임기제’ 규정이 훼손되면서 집단지도체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그동안 고수해온 68세 이상 인물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머물지 말자는 ‘칠상팔하(七上八下·67세 유임, 68세 퇴임)’라는 나이 제한도 깨졌다. 이제는 능력이 있으면 오르고 능력이 없으면 내려온다는 ‘능상능하(能上能下)’라는 원칙이 대신한다.
10월 22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기구이자 의사 결정 기구인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10년째 집권 중인 시진핑은 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재선출돼 3연임이 확정됐다. 시진핑 1인 절대권력 시대가 개막되었다.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방 등 중국 권력의 전통적인 3대 파벌이 적절하게 상무위원에 배분되던 관례도 깨져 집단지도체제가 붕괴했다. 중국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도 4명을 갈아치우며 모두 시 주석 측근인 이른바 ‘시자쥔(習家軍)'으로 구성됐다. 통치 이념과 정책에 대한 책사 역할을 하며 정권이 세 번 바뀌어도 살아남은 5위의 왕후닝(王滬寧·67)은 이번에 4위 상무위원으로 유임됐다.
이번 대회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 지위에 대한 ‘두 개의 확립’을 한층 더 공고히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당장(黨章·당헌) 개정안이 만장일치로 처리됐다. ‘두 개의 확립’이란 ‘시 주석의 당 중앙 핵심 및 전당 핵심 지위 확립’과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시진핑 사상)의 지도적 지위 확립’을 말한다. 이에 따라 2017년 열린 직전 19차 당대회 때 당장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당의 지도 사상 중 하나로 명기된 데 이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마련된 셈이다.
시 주석이 집권 3기에 들어 1인 체제를 완전히 굳히면서 사실상 임기가 15년이 아닌 20년, 더 나아가 종신 집권을 노릴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 소식통은 “다시 권좌에서 내려오기에는 시 주석이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시 주석은 푸틴처럼 사실상 종신 집권 모델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지난 5일 “시 주석의 목표는 중국을 넘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며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순간까지 통치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시 주석의 장기집권 앞에 놓인 과제도 녹록지 않다. 전문가들은 시진핑 3기 시대에 대한 도전은 당내가 아니라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경제 실적 등 외부에서 제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집권에 성공한 시 주석은 마오쩌둥의 ‘신중국 수립’,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장쩌민의 ‘홍콩·마카오 반환’처럼 역사에 남을 치적을 만들기 위해 ‘대만 통일’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당대회 개막식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우리는 평화통일이라는 비전을 위해 최대한의 성의와 노력을 견지하겠지만 무력 사용 포기를 절대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고 ‘대만 무력 통일 불사’를 처음으로 대내외에 선언했다.
당대회 폐막식에서 공개된 당장(당헌) 개정안 결의문에는 “대만 독립을 단호히 반대하고 억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담겼다. 대만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전반적인 국방력 강화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은 물론 미·중 갈등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