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사고와 헤어진 이지선 교수의 꽤 괜찮은 해피엔딩
2022-11-01 02:00
스물셋 나이에 교통사고로 중화상을 입고 마흔 번이 넘는 큰 수술을 이겨내고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이지선 교수. 이제는 사고와 잘 헤어지고 지금은 꽤 괜찮은 해피엔딩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와 두 번째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꽤 괜찮은 해핑엔딩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A. 우리 모두가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살면서 배우잖아요. 한때 내 인생이 슬픈 결말로 끝날 뻔한 상황들이 있었는데 결국 살아남아서 계속 오늘을 살다 보니 인생이 꽤 괜찮은 해피엔딩 일 거라고 생각해요.
A. 인생의 전반전에는 좋은 학교를 나와서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아주 평범한 삶에서 뭔가를 이루려는 노력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이미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행복을 현재 누리면서 살고 있고요. 지금의 제 마음은 오늘을 살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Q. 사고와 잘헤어졌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예전에는 사고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사고를 만난 사람이라고 했었잖아요. 이제는 헤어진 건가요?
A. 사고를 당한 일이 아니라 만났다고 생각하니까, 내 자신이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아니라고 제 스스로를 정의하기 시작하면서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고요. 만남의 결과는 헤어짐일 수 있는 거잖아요. 많은 과정들 속에 이제는 사고와 헤어졌다고 말하게 되면서 사고가 현재의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다짐한지 꽤 된 것 같아요.
A. 부담은 아니고 내가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Q. 지금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신데요. 이 길을 걷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A. 사고 전에는 유아교육을 전공했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아동상담 같은 걸 하고 싶었어요. 그걸 준비하던 중에 사고를 만나게 됐고 그 이후에 제가 몰랐던 경험들을 하게 됐어요. 아픈 사람의 마음이 어떤건지 알게 됐고, 불행해 보인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참 많이 다르고 아주 불쌍해 보인다는 시선을 받는 사람이 됐잖아요. 길에서 사람들이 저를 구경하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했는데 제 마음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사람들이 “저러고 어떻게 살아. 나 같으면...”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었어요. 너무 괴로울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어 보니까 이 삶에도 남들은 모르는 살아갈 의미가 있었고 삶의 기쁨이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고 그게 가능해지기 까지 제 주변에 참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어요. 그 도움이 어려울 때 일수록 얼마나 소중하고 따뜻한지 더 경험하게 되면서 ‘나도 이런 인생을 살면 좋겠다. 누군가 내 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같이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고요. 그래서 사회복지를 하게 됐어요. 잘 돕는 일을 하고 싶어서.
Q.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 바뀐 게 있나요?
A. 작은 것에도 의미를 두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들,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면서 전보다 훨씬 더 많은 행복을 누리면서 살게 됐어요.
Q. 롤모델이 있나요?
A. 아주 많은 것 같아요. 저희 엄마의 씩씩하고 빠른 상황판단을 하는 모습도 있고요. 최근에 강원국 작가님과 정호승 시인님을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글쓰면서 사는 이분들의 삶과 상대방을 편하게 하는 기술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요즘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Q. 요즘 취미가 있나요?
A. 이것저것 찾고 있어요. 취미노마드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저것 별거 다 하는데 그 중에서도 좋은 건 맛있는 음식 만들어서 가족들과 같이 먹는 거,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떠는 걸 제일 좋아해요.
Q. 특기나 강점, 약점이 있나요?
A. 제가 글도 좀 쓰고 말도 좀 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강점은 심각한 상황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좋은 걸 찾아내려고 하는 게 저의 강점이에요. 약점은 심각한 상황을 너무 못 견뎌 하는 거예요.
Q. 좌우명이 뭔가요?
A. ‘오늘을 살자’인데요. 제가 내일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였었잖아요. 사고 이후에 내일을 꿈꾸는 게 어려운 시절도 있었고 꿈꿔본 미래라는 게 너무 어둡기만 해서 괴로웠던 시기에 진실에 더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그 진실은 ‘우리 인생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계획할 수도 없으며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노력한 사람에게 내일이 주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내게 주어진 삶을 진짜 열심히 살자. 이건 선물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오늘을 보내기보다 오늘을 충실하고 소중하게 살자.
Q, 삶을 누군가는 희극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비극이라고 하는데요. 교수님에게 삶은 뭔가요?
A. 제게 삶은 선물이죠. 내가 어떤 사람이고 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이건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값 없이 주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뭔가를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쟁취하려고 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들에 대한 의미와 그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더 누리자는 생각을 하고 살아요.
Q. 사고 이후 삶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A.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게 훼손되지 않고 잘 지켜져야 되더라고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사랑 받는 시간이나 희망을 꿈꾸는 것이나 절망하는 순간 무거움에 대해서도 가치에 대해 알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더 보려고 삶에 우선순위로 더 두게 됐고요. 저를 위해 헌신해주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에게 제가 살아남아서 할 수 있는 기쁨이 될 수 있는 일들이 조금 더 우선순위에 있는 것 같아요. 그 분들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지 않고 기쁘게 하자는 마음이 제 우선순위예요.
Q.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붙잡아 준 건 뭔가요?
A. 사고 이후 초반, 생명을 놓고 싶었던 순간에 엄마의 목소리와 살아만 주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 저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절망이 생겼을 때 신앙적인 것에서 하나님의 목소리가 있었고, 그 이후에도 뭔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늘 저를 버티게 해줬던 것 같아요. 그때 어떤 말일 수도 있지만 저랑 시간을 보내주는 마음들을 기억하고 그게 진짜 사랑이다라는 마음들을 기억할 때 정말 다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내가 사랑 받은 기억, 나를 응원해줬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제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에요.
Q. 말 한마디가 삶을 바꾸기도 하는데요. 교수님의 삶을 바꿔줬던 말 한마디가 있나요?
A. ‘사랑하는 딸아’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목소리였던 것 같아요. 저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잖아요. 제 자신도 저를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부정하고 부인하고 버려버리고 싶은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여전히 저를 향해서 ‘사랑하는 딸아’라고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었고 그 음성들이 제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끊임 없이 그 음성이 들렸던 것 같아요. 제가 사랑할 수 없는 저를 주변의 사랑으로 저를 사랑할 수 있게 됐고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으로 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Q. 요즘 자존감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어쩌다가 자존감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게 된 걸까요?
A. 제가 한때 자존감이 낮았던 이유가 상황의 변화도 있고, 그 상황에 대해서 자꾸 남과 비교했던 마음들이 제 자신을 무너뜨렸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나 주변에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혹은 세상이 정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누가 정한지 알 수 없는 기준들과 내 상황을 대입해서 비교하다 보니까, 불행해지는 거예요. 자존감을 높이려면 모두가 소중하다는 진실 앞에 서야 될 것 같고 자신을 갉아먹는 삶에 태도들을 끊어내야 돼요.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해줬던 기억들을 생각하면서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Q. 사랑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사랑은 제게 결국 생명을 줬어요. 사랑이라는 삶을 지속하는 힘을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랑은 생명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