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철의 AI 인문학] ⑲ AI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모라백의 역설이 있다

2022-10-11 00:05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 대초원. 여기엔 3m 이상 되는 둔덕이 즐비하다. 이 구조물을 만든 생물은 바로 흰개미. 이들은 침과 배설물을 진흙에 섞어 둔덕을 쌓았다. 각 둔덕 안에 수백만의 흰개미가 거대한 도시를 이루고 산다. 이 안에는 왕실, 육아실, 버섯을 재배하는 농장, 식량 저장고 등 다양한 방이 있다. 여기서 흰개미들은 버섯을 경작해 먹고 산다. 이 개미 왕국 내부는 자동으로 환기와 습도 조절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어떤 기후에서도 온도는 섭씨 27도, 습도는 60%를 유지한다고 한다. 개미가 만든 것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구조물이다.

개미의 이런 창발활동에 대해 곤충학자 휠러(William Morton Wheeler, 1865~1937)는 개미 군집이 한 생명체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여 거대한 개미집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떼지성(Swarm Intelligence) 또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발현한 것이라 설명했다. 무리 지어 이동하는 철새와 물고기도 떼지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예이다. 새들은 계절이 바뀌면 자신들에게 적합한 서식지를 찾아 선두를 따라 비행을 떠난다. 바닷속에는 포식자를 피해 떼를 지어 이동하는 물고기들이 있다.

1986년, 레이놀즈(Craig Reynolds, 1953~)는 보이즈(Boids)라는 인공 생명 프로그램을 개발해 떼지성의 원리를 인공지능(AI)에 접목했다. 그는 새 무리 비행을 시뮬레이션 해보니 중앙집중, 거리유지, 속도유지 등 몇 가지 규칙을 기반으로 개체들이 상호작용하여 복잡한 군집행동으로 연출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보이즈는 컴퓨터 게임이나 영화에서 새들이나 물고기, 양떼들이 무리를 지어서 움직이는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실감나게 표현하거나 화재 시 사람들의 대피 시뮬레이션, 비상구 위치에 따른 변화 등을 설계하는 데 쓰인다. 요즘은 드론 군집 비행, 아마존 물류 자동화 창고 로봇 키바(KIVA), 완전자율운전 교통체계 설계 등에도 사용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드론 군집비행으로 연출한 오륜마크 [사진=인텔]


KIVA나 드론 군집 비행과 같이 떼지성의 보편적인 알고리즘을 로봇에 적용한 것을 떼로봇공학(Swarm Robotics)이라 부른다. 지난 2018년 평창 올림픽 개막식 때, 드론 1218대가 군집 비행으로 오륜기를 하늘에 펼쳐서 경이로운 광경을 연출했는데 이것이 좋은 예이다.

뉴럴 임플란트(Neural Implant)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인간 두뇌에 통신 칩을 삽입, 텔레파시와 유사한 형태를 통해 사람들도 의식과 생각을 모아서 군집지능처럼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 상상은 1984년 깁슨(William Gibson, 1948~)이 발표한 뉴로맨서(Neuromancer)라는 SF 소설에서 시작되었는데, 소설 속 미래 인간은 컴퓨터 칩을 뇌에 이식하여 사이버스페이스로 진입한다. 사이버스페이스 개념대로 인간 두뇌에 칩을 심어 컴퓨터에 연결, 뇌파로 로봇 팔이나 무선 자동차를 구동하는 실험들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 수많은 인간의 두뇌가 연결되어 떼지성이 발현된다면 과연 어떤 일을 할까? 아마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다른 레벨의 문명사회가 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라벡의 역설' 40년…아직 유효할까

“우 투더 영 투더 우, 에 투더 이 투더 아이~ 하~” 

AI와 우영우가 만나면 이정도 인사는 나누지 않을까?

오징어 게임에 이어 또 한번 K-드라마의 명성을 빛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매회마다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면서 세계인의 가슴에 울림을 주었다. 우영우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대신 행동과 감정표현이 어눌하다. 우영우는 다른 변호사들이 상상도 못하는 기발한 생각으로 늘 승소하지만, 아이들도 잘하는 회전문 통과가 우 변호사에게는 커다란 과제로 묘사된다.

우리에게 유명한 천재 AI 알파고. 하늘의 별만큼 수가 무궁무진하다는 바둑에서 알파고는 바둑계의 황제들을 이겼다. 알파고는 기황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묘수를 찾았다. 하나, TV로 중계된 대국장면에서 알파고의 모습에선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되었다. 바둑돌을 놓는 것은 3세 정도의 어린이도 할 수 있는 단순 동작인데 알파고는 이 동작을 할 수 없다.

우영우와 알파고는 둘 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지만,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약점도 닮아 있다. 1988년 카네기멜론 대학 로봇공학과 모라벡 교수(Hans Moravec, 1948~)가 처음 소개한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다. 모라벡의 역설은 "인간에게 쉬운 것은 컴퓨터에게 어렵고 반대로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컴퓨터에게 쉽다"는 내용이다. 모라벡의 역설을 AI에 대입하면, 프로 수준으로 체스나 바둑 등을 두는 AI를 개발하는 것보다 서너 살짜리 수준의 운동이나 자율신경반응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렵다는 것으로 표현된다.
 

2016년 한국 서울에서 대국을 치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앞줄 오른쪽) [사진=구글 공식 블로그]


한 가지 드는 의문은 “모라벡의 역설이 아직도 유효할까?”이다. 모라벡이 역설을 주장한 지 거의 40년이 넘게 지났고, 그동안 AI 기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컴퓨터의 연산 능력도 한계가 있었고 인체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과 유사하게 작동하는 인공신체를 만드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현재는 어떨까? AI는 진화를 거듭, 스스로 학습하기에 이르렀다. 딥 러닝과 인공신경망과 같은 기술은 이미지의 판단과 같은 감각적인 측면에서 AI의 판단을 정확하게 해주었다. 이제 로봇은 인간의 행동을 모방할 수 있게 되었고 오히려 사람보다 더 안정적으로 걷고, 뛰고, 터치하고, 재주 넘기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첨단 인공피부로 로봇은 사람의 터치감각을 가지고 정밀한 수술도 거뜬히 해낸다.

이제 인간을 닮아가는 AI가 넘어야 할 장애는 ‘감정표현’ 정도다. 하지만 이 부분은 기술문제가 아니라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섣불리 손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인간보다 우월한 지능을 가진 AI가 분노나 증오 같은 감정을 갖게 되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체스를 두지 않는다

"고상한 저음 가수들 사이에서 펑크 록 가수가 시끄러운 곡조를 뽑는 것같이 그 로봇은 앉아서 15분 동안 계산을 한 다음 1m를 이동하고, 다시 주저앉아 15분 동안 계산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려 빠진 로봇은 싫었습니다. 저는 좀더 빠른 로봇, 실제 사람들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로봇을 원했습니다."

1990년대 초 로봇 공학자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 1954~)는 느려 터져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천재보다는, 어느 곳이든 헤집고 뛰어다닐 수 있는 강아지를 만들고 싶었다. 대다수 연구자들은 블록으로 만든 장난감 같은 로봇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외생적이고 자연적인 환경이 배제된 곳에서 로봇은 온실 속 화초처럼 작동했다. 로봇은 우선 주변을 스캔해서 환경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인식하고 움직이기 위한 계산을 시작한다. 로봇은 먼저 주변 환경에 대해 모델링하고 그 모델 속에서 자신의 미션을 이행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행동으로 번역한 다음 작동을 하는 식이다.

브룩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단지 인지와 행동이라는 두 가지 단계만으로 로봇이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브룩스의 로봇에는 인식이라는 골치 아픈 절차가 필요 없다. 이런 판단으로 브룩스는 실세계의 행동들을 어떻게 긴밀하게 모듈화 할 수 있는가를 연구했다. 그는 1990년에 발표한 논문, ‘코끼리는 체스를 두지 않는다(Elephants don‘t play chess)’에서 "기호를 통한 논증보다 실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AI도 학습 능력을 지니고 세상과 교류하며 스스로 지능을 채워 나갈 수 있어야 하고 AI를 두뇌로 사용하는 로봇이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려면 논리보다는 학습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바탕으로 브룩스는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를 거론했다. 체화된 인지는 “환경 속에서 하나의 체계가 계속성과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구성요소를 다양한 방법으로 적응시켜 만들어낸 결과”이다. 인간의 경우 뇌의 모듈은 몸 전체에 퍼져 있는 감각, 운동기관들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 이를 단순한 학습을 통해서 묘사하거나 역학적, 공학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AI가 인간과 같은 체화된 인지를 가지려면 정교한 학습방법이 필요하다.

인간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인지과정에 정서라는 기제가 개입한다. 정서는 외부 자극에 대한 평가시스템으로서 인간의 지능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다. 만일 AI가 정서를 인지과정에 사용할 정도가 되면 우리는 이것을 슈퍼 AI라 부를 수 있다. 그때가 되면, AI가 인간을 넘어서고 지배하려 들지 않을까?
 
인간은 AI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반다이 공식 유튜브 채널 다마고치 25주년 기념 영상 속 한 장면 [사진=반다이 유튜브 영상 갈무리]


알에서 태어나니 강아지나 고양이는 아니다. 알같이 생긴 플라스틱 덩어리.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다마고치 이야기다. 다마고치는 1996년 일본의 반다이에서 발매한 장난감. 작은 기계 안에서 가상의 애완동물을 키우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다마고치의 영상은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엉성했다. 문방구에서 파는 만원짜리 장난감이었으니 그 안에 정교한 구동장치와 비주얼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마고치 키우는 사람들은 실제 동물을 키우는 것처럼 이 작은 기기와 감정을 나눴다. 기이한 사회현상도 나타났다. 차를 몰면서 다마고치에게 밥을 주다가 나무를 들이받고 죽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것 때문에 시험을 못 친 학생이 해외 토픽에 등장했다. 수업에 장애를 준다는 이유로 세계의 많은 학교들은 다마고치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단순한 모습의 인공생명체를 실존하는 생명체라고 믿으면서 시간과 정성을 쏟고 사랑을 나누었고 죽음을 애도했다. 사랑이란 감정은 인간의 일방적인 생각만으로도 생기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무척 싱거운 존재다. 밥 주고 배설물 청소를 하고 목욕 시중까지 들면서 인간이 바라는 것은 거의 없다. 집사가 ‘빵’ 하는 총소리를 입으로 낼 때, 한번 뒹굴어 주면, 집사는 자지러지며 기뻐한다. 다마고치나 말 못하는 짐승과도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인간이다. 지능을 갖추고 인간의 행동과 감정을 학습한 AI가 말동무까지 되어 준다면 사랑의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간이 AI와 사랑에 빠진다면, 상대방인 AI는 인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AI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된다면 특정 인간과 사랑을 시작하는 AI는 그 사람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학습하고 표현을 할 것이다. AI가 자신을 향한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감정에 대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한 반응을 할 때 인간은 AI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방적인 믿음일 뿐. 기계 내에 사랑이란 영적현상이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로봇과의 사랑은 노령화 사회의 새로운 솔루션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기대 수명이 100세 이상이 되면 배우자와 사별하고 여생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이때 자신의 이상형과 꼭 닮은 로봇이 새로운 배우자로 등장해서 여생을 함께해 주는 일, 가능하지 않을까?
 

강시철 비엔씨티코리아 회장 [사진=강시철 비엔씨티코리아 회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