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경영 진단] 끊이지 않는 직장내 괴롭힘…IT업계, 갈등 커진다

2022-10-09 08:30
MZ세대 유입으로 기존 세대와 갈등 본격화 등 요인

경기 분당에 위치한 네이버 제2사옥 '1784' 내부. [사진=네이버클라우드]

국내 IT업체들이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신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섰지만 사내 갑질 사건이 끊이지 않으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개인적 성향이 강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대거 사회로 진출한 데에 따른 영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난 상황에서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이동통신사와 포털·게임 업체들은 온·오프라인 방식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체계를 운영 중이다.

SK그룹사는 자사와 계열사 임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제보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회사에 해당 내용이 전달되면 사내에서 사건 경위 파악, 징계 수위 결정 등 처리를 우선적으로 진행한다. SK텔레콤은 이 과정을 윤리경영실에서 전담한다.

KT는 그룹인재실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시스템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관련 신고는 사내 업무 포털 사이트에 온라인 접수하거나 지정된 상담원·심리상담센터에 직접 방문해 대면 방식으로 가능하다. 징계 여부·수위는 사내 고충심의위원회가 결정한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정도경영담당팀이 익명 투고 시스템을 상시 가동 중이다. 사내 윤리 위반 및 부정 행위들은 모두 이 시스템에 신고 접수할 수 있다. 총괄자는 상무급 임원이다.

네이버는 올해 6월 이사회 직속 '인권 전담조직'을 신설했다. 전사 임직원의 인권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컨트롤타워를 세운 것이다. 지난해 5월 상사의 폭언과 업무 스트레스 등에 시달린 한 직원이 자살한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이후 사내 조직문화 점검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카카오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는 '핫라인'을 운영 중이다. 사내 윤리경영팀에서 전담한다. 이 팀은 사건 접수를 비롯해 경위 파악, 피해자 상담과 필요 시 상임윤리위원회 보고 및 조치까지 진행하고 있다. 윤리위는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되거나 재적 위원의 반 이상 동의가 있는 경우 열린다. 윤리위원 9명이 논의해 징계 수위를 정하게 된다.

넥슨·넷마블 등 국내 게임사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2019년부터 온라인 사건 접수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인사실장의 총괄하에 인사실에서 관련 업무를 전담한다. 넥슨은 2017년부터 직원 대상 심리 상담소인 '내 마음 읽기'를 운영 중이기도 하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최고법무책임자(CLO)가 총괄하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채널 '엔씨통'을 두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업계의 노력에도 직원 간 괴롭힘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의원실(국민의힘)이 고용노동부·네이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에는 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총 19건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신고됐다. 올해에만 임원 중징계 건 포함 두 건의 직장 내 괴롭힘 징계 처리 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 해결이 어려워 노동부 신고까지 이뤄지는 경우도 매해 느는 추세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2019년 2130건, 2020년 5823건, 지난해 7745건이었다. 2019년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관계 등의 우위를 악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황지호 노무법인 로율 대표(공인노무사)는 "MZ세대와 기성세대 간 생각과 이해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기성세대는 사회 생활에 직원 간 친밀도를 높이는 것도 포함된다고 보는 반면 MZ세대는 개인적인 성향이 더 강해 업무 외적인 활동 등을 어색해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신고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회사나 직원이 특정인을 상대로 사회적으로 분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한 공인노무사는 "실제 사건을 접하다 보면 신고 대상자의 잘못을 공론화해 그를 의도적으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도 있다. 일단 사건이 접수되면 인사 조치 등 절차도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회사·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된 괴롭힘 예방 교육이 더 절실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