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의 제왕학] '최후의 사무라이' 아베의 미완성 야망

2022-10-04 15:57
제왕학으로 본 아베시대

[박종렬 논설고문]



“제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미국에 의해 강요된 헌법이 아닌 일본의 자주 한 법을 제정하고 싶습니다.”

1993년의 총선거에서 췌장암으로 1991년, 67세로 작고한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1924~1991) 후계자로 입후보했던 37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1954~2022)의 당선 소감이다. 그는 1993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8년 9개월 동안 총리로 재임한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 그는 외상이던 아버지 비서관으로 8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익힌 외교 수완을 발휘,‘지구본(地球本)을 부감(俯瞰)하는 외교’를 내걸고 176개국을 돌며 정상외교를 통해 외교에 강한‘강력한 일본’건설과 필생의 숙원인‘개헌’을 위해 일로매진했다.

1954년 9월 21일 도쿄에서 태어난 아베의 정치적 본적은 야마구치현. 자신의 선거구인 이곳은 그의 가족의 정치적 텃밭이자 일본 근대사 태동의 중심지였다. 메이지 유신(1868년)이 바로 이곳, 야마구치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존왕양이(尊王攘夷) 운동의 출발점이자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이 부국강병의 구상을 설파한 곳이기도 했다. 

총리 3명 배출한 정치 귀족 집안 출신

아베는 1세기 전 쇼인의 훈도 아래 성장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와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총리를 지냈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등으로 이어지는 정한파(征韓派) 후예다. 아베 가계를 보면 조슈번 출신으로 외조부가 56, 57대 총리를 지낸 기시, 외종조부가 61, 62, 63대 총리를 역임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1901~1975), 아버지가 외무대신을 지낸 자민당의 거물 아베 신타로였다. 총리를 3명이나 배출한 야마구치현의 명문거족으로 가업(家業)이 정치가 집안이다. 특히 아베 조부는 쇼인 수제자로 메이지유신의 선봉에 섰던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晉作:1839~1867)’를 흠모하여 아들과 손자 이름을 신사쿠의 이름에서 '晉' 자를 따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아베 신조(安倍晋三)로 지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우금치 전투와 끝까지 저항하던 지리산 일대의 동학군에 대해 일본군 최초의 제노사이드(대량학살) 작전을 전개, 동학군 수만 명을 학살, 섬멸한 조선 주둔군 최고 책임자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1850~1926)는 아베의 진 외고조부다. 요시마사‘딸의 손자’인 아베는 그의 현손(玄孫)인 셈. 당시 학살에 가담한 일본군 병사의 종군일지가 발견됨으로써 일본군 행위가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요시마사는 야마구치 출신으로 쇼인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악명 높은 일본군 소장 신분으로 당시 일본군 8,000여 명을 거느린 여단장으로 조선에 파병돼 아산에서 청군을 물리친 청일전쟁 승전 주인공이다. 

당시 일본군은 동학군 진압을 명분으로 청군과 함께 파병됐지만, 동학군이 조선 조정과 전주 화약을 체결해 주둔할 명분이 사라졌다. 그러자 국왕인 고종을 인질 삼아 주둔 명분을 만들려는 작전을 세워 고종과 당시 왕세자 이척이 있던 경복궁을 기습, 점거했다. 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고, 관동도독(만주총독)으로 재임 중 억지로 일본법을 적용, 안중근 의사를 극형에 세운 배후인물이다. 조선의 식민지화의 신호탄인 군사적 침략인‘경복궁 점령’ 주역인 그는 고종을 인질로 친일내각을 세워 갑오개혁을 강요한 원흉이다. 일본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던 오시마 소장은 청일전쟁 전공으로 작위(후에 자작으로 승작)를 받고, 러일전쟁 뒤에는 육군 대장까지 승진했다. 

아베의 외조부 기시는 1930~1940년대 만주국에서‘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총사령관으로 전시 수상’이었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와 함께 주요 요직을 지내며 일본 군국주의를 최전선에서 주도하던 A급 전범 용의자로 사형 판결을 기다리던 중 기사회생, 전후 총리대신을 역임했다.‘쇼와의 요괴(昭和の妖怪)’로 불린 기시는 1950년대 초 자민당 창당을 준비하며 “진정한‘일본 독립’ 실현은‘민족혼(魂)이 표현된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미-일 안보동맹을 주도했다. 60여 년 뒤 그의 외손자 아베 총리는“일본 헌법은 일본이 미국에 점령당한 시대에 제정됐다”라며 외조부 유업(遺業)인“21세기에 맞는 헌법 제정”을 정치목표로 제시, 개헌을 위해 진력했다. 

 과거사 부정, 헌법 개정을 향한 일관된 행보  

일본 부흥과 패권 국가를 꿈꾼‘현대판 사무라이’아베는 2022년 7월 8일, 선거 지원차 찾은 유세현장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고 했던가? 인간은 관을 덮은 뒤에야 평가해야 한다는 엄격한 말이다. 그가‘사무라이는 다다미방에서 편안하게 와석종신(臥席終身) 하느니 들판에서 자객 손에 죽는 것이 낫다’는 19세기 일본의 유신지사(維新志士)들처럼 ‘들판 같은’유세장에서 암살당하자 일본 열도가 한때 추모 분위기였다. 지난 7월 12일 도쿄 내 사찰인‘조조지(増上寺)’에서 2500여 명이 조문한 가족장에 이은 정부 주도 장례식은 관례에 따라 ‘정부·자민당 합동장’으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베 내각에서 4년여 외무상을 지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헌정 사상 최장인 8년여 탁월한 지도력과 실행력으로 총리라는 중책을 맡았으며 동일본대지진 부흥, 일본 경제의 재생, 일-미동맹을 축으로 한 외교 전개 등 내정과 외교에서 큰 업적을 남겨 국제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라며 ‘국장’(國葬)을 발표했다. 

사망한 지 80여 일 만인 지난 9월 27일, 일본 정·재계 관계자 3600여 명, 218개 국가·지역 정부 관계자, 일본 주재 외국 대사 700여 명 등 4300여 명이 참석, 부도칸(武道館)에서 진행된‘아베 국장’에 대해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부 양심 세력은“정치인으로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그를‘비극의 영웅’으로 미화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1967년 사망한 전후 초대 총리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국장 이후 55년 만에 치러진 국장에 단호히 반대하는 일부 용기 있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극우세력과 아베 계파의원들의 지지로 국장은 진행되었다.‘세기의 장례식’으로 아베 국장 일주일 전에 500여 명의 해외 국가 정상 조문객들과 국내 주요 인사 2000여 명, 국내 100여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치러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국장과 상대적으로 비교되고, 또 G7 정상’이 외면하고 외국 참석자도 줄면서, 조문 외교 명분이 약해져‘아베 국장은 가짜 국장’으로 반쪽 국장 논란이 일었다. 기시다 총리는 추모사에서“통한의 극치”라며“일본과 세계의 많은 사람은‘아베 총리 시대’를 회고하며 당신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추모객들이 2㎞ 넘는 줄을 서서 헌화하기도 했지만, 국장에 반대하는 70대 남성이 분신을 시도하는 등 국장 반대 여론이 53%인 가운데 국회 앞 1만 5000여 명이 반대 시위를 하는 등 어수선한 가운데 국장이 치러졌다.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는 “일본은 오래전부터 자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로 자리 잡기를 염원해왔다. 그래서 한반도를 일본의 지배하에 두어 아시아 대륙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다.”면서“아베는 제2의 히틀러를 닮아가고 있다. 그 수단은 인사권 장악과 개헌 헌법의 긴급 사태 조항이다. 혐한 극우세력이라는 그의 친위대가 조력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독재국가로 향하는 아베 정권이 1945년 이전의 대일본제국을 복원하려는 의도로 그 시나리오를 추진해나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아베는 2년 전 총리 퇴임사에서 개헌을 못 하고 떠난 데 대해 단장(斷腸)의 아픔을 느낀다는‘우경화 상징’으로 주변국의 비난을 샀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비극적 죽음으로 추모 열기가 달아오르며 1백 년 전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살된 이토 국장에 버금가는‘국장 이벤트’를 통해‘영웅 아베의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의 정치행로는 외조부가 못 이룬 ‘개헌’을 위한 집념 어린 투쟁의 궤적이었다. 그는 2006년 자민당 총재 출마 변으로 “사무라이 된 자, 그 뜻을 세워야 그 뜻한바, 기 또한 좇는다”라는 쇼인의 말을 인용했다. 한번 뜻을 세우면 견인과결(堅忍果決) 즉 ‘굳센 인내와 과감한 결단력’으로 목숨을 걸고 실천하겠다는, 개헌에 대한 각오였다. 일본을 확실하게 개혁하겠다고 비전을 제시하는 그에게 일본인들은 열광했다.‘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보통국가’로 희석하고, 자신의 책 제목을‘아름다운 나라’로 포장했지만, 그 속내는 침략적 팽창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을 메시지를 통해 끊임없이 발신했다. 이것이 일본‘민족의 원형’즉 대륙침략을 바라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 지지를 끌어모으는 집권 책략으로 활용,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된 것이다.

아베는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 불과 1년 만에 총리직을 내려놓은 뒤 5년여 선거구인 야마구치에서 권토중래를 노리며 절치부심했다. 정치적 사표로 삼았던 쇼인과 이토, 기시 등 선조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선거구에 머무는 동안 이들의 묘를 수시로 참배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로 조선 정벌의 야욕을 담은 쇼인의 광기 어린『유수록』과 쇼인 생애와 유서『유혼록』을 소설화한 후루카와 카오루(古川薫)의『유혼록의 세계』(留魂録の世界)를 읽고 또 읽으며 취미로 해온 서도를 익혔다. 자신의 처지를 빗댄‘적연부동 감이수통(寂然不動 感而遂通: 周易‘계사 전’),‘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홀연히) 천하의 연고에 느끼어서 통하게 된다’즉‘항상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고, 한번 감응하게 되면 사물의 모든 원리에 두루 통한다.’라는 문구를 기회 있을 때마다 휘호로 남겼다.“마치 울지 않던 새가 한번 울면 세상이 놀라고, 날지 않던 새가 한번 날면 하늘 끝까지 오를 수 있다”라는 활연관통(豁然貫通)의 뜻을 새기고 또 새겼다.‘일본 중심으로 아시아를 장악한다’는 대담한 구상을 담은 쇼인의『유수록』, 30만여 명의 데모대의 반대에도 미·일동맹을 밀어붙인 뒤 자객으로부터 허벅지에 칼을 맞으며‘독립된 일본의 자체 헌법’을 위해 고투한 외조부 기시의 개헌 구상 등, 천하를 도모한 경륜(經綸)과 유훈(遺訓)에 눈을 뜨니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세습 정치인’이 아닌 이토 같이 역사에 한 획을 긋는‘정치가’가 되겠다는 새로운 야망이 역사적 사명이자 정치적 소명으로 다가왔음직하다. 
외조부 기시가 반납했던 동경올림픽 유치, 인도 태평양 구상 등은 바로 이런 정치적 사색의 결과물이었다.‘과거 일본으로부터 탈각(脫殼)’구호는 이런 구상의 구체적 메시지로 세상에 드러났다.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을 치료하면서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낸 그는 단단한 각오와 결기를 다짐하며 도쿄로 돌아가 2012년 총선에서 승리, 두 번째 총리에 등극했다.

 전쟁할 수 있는 ‘강한 일본 건설’을 꿈꾸다 

그는 2차 내각 출범 후인 2013년 1월, 초판인『아름다운 나라』를 보완,『새로운 나라로-아름다운 나라로 완전판』을 출간,“강한 일본을 되찾고 싶다”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총리 취임 1년째 되는 날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1차 정권 때 참배를 미룬 것은‘통한(痛恨)의 극치(極致)’였다.”며, 총리로는 처음으로 쇼인 묘소 앞에 무릎을 꿇고“앞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겠습니다”라고 고(告)했다. 1차 내각 때와 전혀 다른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야말로 군자표변(君子豹變)의 정치적 행보였다.

일찍이 쇼인의 구상은 북으로 조선과 만주와 중국, 남으로는 대만과 필리핀 그리고 인도차이나반도와 인도까지 취한다는‘일본 굴기(日本 崛起)’였다. 쇼인 사상에서 정치적 상상력과 영감을 얻은 아베의 정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스스로 반성해 내가 옳다면 천만 명이 반대해도 나의 길을 간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라는 맹자 말을 실천에 옮겼다. 평소 정치가를 싸우지 않는 정치가’와‘싸우는 정치가’로 분류하고, 자신은 싸우는 정치가를 지향한다고 말해온 아베는 국내에서는 개헌을 위해 총력 투쟁했다. 대외적으로는 미·일동맹을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도, 외교·안보 분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특히 미·중 패권경쟁 구도 속에 당시 케미를 이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해외 방위비 절감과 일본 군사력 강화 움직임이 맞아떨어지면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 묵인하에 일본의‘군사 대국화’를 밀어붙였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장기불황이었던‘잃어버린 20년’을 극복했고, 무섭게 성장하는 한국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아시아 패권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중국이 G2 국가로서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비증강과 팽창정책 추구를‘균형’이 깨지는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의 시그널로 통찰하고, 아베는 동북아정세를 구한말 청일전쟁 같은 일촉즉발의‘전쟁 전야(前夜) 재현’으로 간주, 국가전략을 재구성한 셈이다.

기시다 총리 겸 자민당 총재는 2022년 7월 10일, 아베 암살 이틀 뒤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압승을 거둔 다음날 기자회견에서“아베 전 총리의 뜻을 이어받아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와 헌법 개정 등 난제를 풀어가겠다”라며, 개헌 문제와 방위력 강화를 역설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신냉전 분위기와 우파의 상징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져온 호기를 놓쳐선 안 된다는 각오를 피력한것이다.

‘아베 없는 아베 노선’은 아베의 유훈(遺訓)통치로 이어져 당장 헌법 9조 개정 논의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자민당은 무력행사 영구 포기, 육해공 전력 불(不) 보유’를 규정한 9조를 유지하면서도 헌법의 재해석을 통해 ‘필요한 자위 조치’를 내세워 자위대 보유 명기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여기에 사실상 선제공격이 가능한‘반격 능력’(敵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공식화하고,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1%에서 2%로까지 증액하면 일본은‘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넘어 이제‘세계 3위 군사 대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총격으로 허망하게 막을 내린‘아베 극장(劇場)’

조선의 망국을 초래한‘국권 침탈’의 주역들을 배출한 야마구치 출신으로 그동안 숱한 반한(反韓) 망언,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과거사 왜곡, 재무장 시도, 경제 제재, 생체실험의 상징인 731부대 마크 비행기 탑승 등, 우리나라를 여러모로 괴롭혀온 까닭에 아베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명복을 빌지만, 마냥 애도(哀悼)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한일본대사관에 차려진 아베 분향소를 찾아 방명록에“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고 아베 신조 전 총리 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적었다. 윤 대통령의 조문을 두고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조문 기사에“현 총리도 아닌 전 총리인데 직접 참배해야 하는가”라는 댓글부터 “징용 위자료에 무역 보복으로 대응한 사람에게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논한다니….”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아베를 추모한다는 우리나라 지도층들의 조사(弔辭)는 100여 년 전 이토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 당시 친일파들이 벌였던 치욕스러운 처신을 상기시킨다. 당시 대한제국 순종은 친히 통감부를 방문해 조문하고, 이토에게 문충공(文忠公)이란 시호를 내렸다. 또 궁내부대신 민병석과 조선 민족 대표 조중응을 이토 국장(國葬)에 조문 사절로 보냈고, 대한제국 황실을 대표해 이토 가족에게 은사금으로 당시 화폐로 10만 원(현재 20억여 원 상당)을 전달했다. 총리대신 이완용은 사흘 동안 서울 시내 일원에 가무음곡 금지 지시를 내렸다. 유림을 비롯한 13도 대표를 자칭하는 얼빠진 자들은 이토 암살에 대해 죄를 청하는 사죄사(謝罪使)를 파견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물론‘죽음은 모든 죄를 사(赦)한다’라고 하니 고인의 공과(功過)를 따지지 않고 조문할 수도 있다. 미국 바이든은 정부 기관에‘조기 게양’을 지시하고, 아베 집권 때 9차례 만난 시진핑은 중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개인 명의 조전’을 보냈다. 아베에게 애도 대신 전쟁광이자 역사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한 중국은 엘리자베스 장례식에는 왕치산 부주석을 보냈지만, 아베 국장에는 글로벌 인지도가 없는 전직 과학기술부 장관을 보내 국민 정서를 대변했다. 27차례 만났다는 푸틴도 조전을 보내는 등 각국 정상이 애도했지만, 대한민국 대통령만은 메시지가 달라야 했다. 그래서 아베 죽음을 대하는 지도층의 민족 정서를 외면한 조사는 구한말 이토 암살 때와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누대(累代)에 걸쳐 한국을 괴롭힌 아베 집안의 두꺼운 업장(業障), 특히 아베가 멘토로 삼은 외할아버지 업보(業報)로 일본 토착화에 큰 도움을 준 한국출신 문선명 목사가 창시한 통일교 신자 아들 총에 피격당한 악연(惡緣)이‘천망회회(天網恢恢) 하나 소이불루(疎而不漏)’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할 따름이다. 아베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 지난해 생일 때 67세에‘죽은 아버지보다 더 살 수 있겠느냐’고 했다는데, 이토와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아베는 자신의 선거구후원회 회원까지 초청, 벚꽃놀이를 세금으로 한 권력 사유화로‘벚꽃 추문’에 시달리다 건강상의 이유로 퇴진했다. 그러나 상왕(上王) 노릇을 하며‘개헌’을 위해 다시 세 번째 총리로의 롤백을 노리던 아베의 망집(妄執)을 연출한‘아베 극장’은 자위대 출신이 쏜 총소리와 함께 허망하게 대단원의‘막을 내렸다.’ 하늘이“여기까지”라는 그의 퇴장은 일본 전국시대의 전설적 무장인 다케다 신겐(영화 影武者 주인공)의 손자이자 다케다 카츠요리의 아들로 16세에 아버지와 함께 할복 자결하면서 남긴 사세구(辭世句:사람이 죽으면서 남긴 글귀)를 떠올리게 한다.

“허무하구나, 모든 것이 폭풍 앞의 벚꽃이로다. 흩날릴 때까지는 한낱 봄날의 꿈일 뿐임을.”(あだに見よ誰も嵐の桜花 咲き散る程は春の夜の夢)****22817 왕 102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