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특별 기고] 한중 경제 관계, 새로운 30년을 위해

2022-09-30 14:28

<편집자주> 올해는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중 양국 관계의 우호와 협력을 다져야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한국과 중국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뜻을 함께하자는 취지로 각계 저명인사의 깊이 있는 견해가 담긴 글을 본지에 싣게 되었습니다. 지난 30년은 한·중 양국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고 경제 파트너로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한국과 중국은 함께 많은 역경을 이겨왔습니다. 한·중 관계는 이제 새로운 기점에 서 있습니다. 

이번 기고 릴레이에는 한·중 수교 과정의 경험담부터 한·중 교류를 위해 현장에서 땀 흘린 여러분들의 이야기까지, 양국 수교 30주년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30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가득히 담겨있습니다. ​한국의 북방외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그리고 세계사의 변화에 순응하는 한·중 수교는 우리들의 소중한 역사이기에 독자들에게 이 글이 한·중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박한진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전 KOTRA 중국지역본부장[사진=한·중수교 3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필자는 중국과 인연이 각별하다. 부친의 1982년 "10년 후면 중국이 열린다. 무엇을 공부하든 중국과 연계하거라"라는 예언'에서 시작됐다. 필자는 1982년 대학에 들어가 중국을 전공했다. 10년이 흘렀다. '예언'은 족집게처럼 적중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은 수교했다. 그해 코트라에 들어가 30년 동안 중국경제 이론 공부와 우리 기업의 중국진출 업무를 했다.

1990년대는 수교와 동시에 중국 경제사절단이 앞다투어 한국을 찾았다. 그들은 초급 직원이었던 필자를 만나려고 복도에서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다. 사절 단원들은 삼성동 무역센터(현 트레이드타워)를 바라보며 탄성을 연발했다.

2000년대의 중국은 그야말로 '천지개벽'했다. 한·중 교류가 전 방위로 확대됐고 상하이 푸둥지역의 스카이라인은 자고 나면 달라졌다. 당시 필자가 중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매달 한 명씩 인터뷰한 일은 중국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춘추항공(春秋航空)은 여객기 한 대로 상하이와 산둥성 지난(濟南)을 오갔는데, 지금은 보유 항공기가 100대를 넘는다. 엘리베이터TV 생활정보 전문기업인 포커스 미디어는 다국적 기업이 됐다.

2010년대엔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란 말이 큰 화제를 모았다. 앞서 출간된 동명 저서(2007)가 다큐멘터리로 방영되면서부터다. 중국산 제품이 없으면 하루 버티기도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금 보면 중국발 공급망 쇼크의 서막이었다.

2020년대의 중국은 복합적이다. 공생하던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고 있다. 미국은 산업정책을 강화했고, 중국은 통상정책을 강화했다. 중국이 팔면 값이 내려가고, 사면 오르며, 중국이 팔지 않으면 공급망 위기가 오고, 사지 않으면 해외시장이 위축된다.

앞으로 한국의 대(對)중국 경제교류를 위해 몇 가지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중국 내수시장에 제대로 들어가자. 정책과 시장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중국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로 진출하자. 그것이 경쟁을 완화하고 상호 협력 공간을 확대하는 길이다.

둘째, 중국의 도시화 정책을 활용하자. 토지·소득 분배 영역의 제도적 개혁, 도시 인프라를 포함한 하드웨어 개혁, 의료·교육·공공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 개혁에 걸쳐 새로운 시장이 생길 것이다.

셋째, 실버시장에 주목하자. 2030년까지 3조 달러(약 4301조원) 수준으로 커지며 미용·건강·패션 등에서 온라인 쇼핑 인구가 증가할 것이다. 중요한 변화다.

시장을 볼 때 낙관론과 비관론은 모두 필요하다. 낙관론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만든다. 그것이 비즈니스의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