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대출 재연장] '연장없다' 해놓고 뒤집은 정부...오락가락 정책에 금융권 혼란

2022-09-27 16:08
연착륙 방안 마련해온 은행권 "부실 더 키울 우려"
전문가 "금융지원, 폐업 지연시키는 부작용 초래"
정치권 압박에 기존 입장 번복했다는 지적도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이 당초 이달 말 종료할 예정이었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만기를 연장한다고 하자 금융권이 혼란에 빠졌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새출발기금과 같은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포함한 민생 안정 금융지원책을 내놓으면서 더 이상 만기 연장은 없다는 방침을 고수해 왔는데 이를 스스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금융권에 과도한 짐을 지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그동안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또 한 번 연장하는 데 대해 “예외적인 상황을 계속 끌고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네 차례 연장을 했는데 또 연장하게 되면 더 큰 문제로 갈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채무 상환을 계속 미루면 부실 채권이 어느 수준인지 파악하기 어렵고 이 같은 조치가 차주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 위원장은 만기 연장·상환 유예 종료를 앞둔 이달 초에 중소기업·소상공인과 간담회를 하면서 5차 연장에 대한 군불을 땠다. 그는 간담회 후 “중소기업 대출 지원과 관련해 한 번 더 연장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며 “한두 달 전부터 금융권, 관계 부처 등과 어떤 식으로 연착륙시키는 게 맞는지 계속 논의해왔다”고 재연장 가능성을 시사했다.
 
자체적으로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온 시중은행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주요 은행은 코로나19 관련 대출을 장기 분할 상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KB국민은행은 코로나19 기업여신 특례운용을 지원받은 계좌를 대상으로 만기 연장·상환 유예 등을 최장 10년 분할해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은행 또한 유예 종료 후 일괄 상환하거나 기존 월 상환금의 1.2~2배 등으로 선택 상환하는 등 장기 분할 상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은행권은 만기 연장·상환 유예 등 금융 지원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 부실을 한꺼번에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7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0.22%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네 차례 만기 연장·상환 유예로 인한 착시 효과다. 금융회사가 차주에 대해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가 불투명해지다 보니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5차 연장에 대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만기 연장·상환 유예 재연장에 대한) 취지는 공감하지만 부실 우려가 높은 대출 만기를 마냥 연장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적극적인 금융 지원이 장기적으로 매출 증가 등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상환 능력이 좋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채무만 증가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면서 금융 지원이 회생 불가 소상공인에 대해 폐업 시기를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에 방침을 번복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는 지난 19일 금융위를 방문해 김소영 부위원장을 만나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 추가 연장을 요구했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또한 전날 "금융당국이 7월부터 만기 연장·상환 유예 연착륙 협의체를 구성한 만큼 차주들이 각자 상황에 맞는 충분한 정상화 기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