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오징어 게임' 이후의 콘텐츠 생태계
2022-09-28 09:24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 2021년 9월 17일이다.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오징어 게임’을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오징어 게임’이 콘텐츠 분야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에 환기한 것은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이하 IP)의 중요성이다. ‘오징어 게임’의 제작비는 300억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으로 획득한 수익은 1조 원 이상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으로 발생한 수익을 넷플릭스가 독점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들도 논의되고 왔다. 지식재산권을 포괄적으로 양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저작권 포괄적 양도 금지와 추가 보상 청구권 등이 IP 독점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사업자 간 사적 계약에 법·제도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대한 한계에 대한 지적과 함께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IP 독점 이슈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와 협업한 제작자들은 넷플릭스를 투자처로 선호하고 있다. 제작비 전부에 일정 부분의 이윤까지 보장해 주는 넷플릭스의 제작 방식은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과 제작사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넷플릭스에 의한 IP 독점은 국내 콘텐츠 제작 생태계가 앉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배태된 측면이 없지 않다.
넷플릭스가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의 헤게모니를 주도하던 시기는 끝났다. 아니 끝나야 한다. 전자의 문장이 현실에 관한 인식을 묘사하는 문장이라면 다음 문장은 당위적인 바람에 가까운 것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넷플릭스가 IP를 포함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계약을 맺어 왔던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향후 IP를 통해 수익을 다각화 해나가는 방식은 국내 콘텐츠 제작 투자에 있어 이정표가 될 것이다. 향후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제작 투자한 작품을 온전히 통제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강하게 작용할 것이며,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원하는 콘텐츠 제작자들과 제작사들도 여전히 많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국내 콘텐츠 제작 투자에 있어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변곡점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내수 시장에서의 성공만으로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시장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제작 시장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이 국내 콘텐츠 시장의 투자 부담을 덜어 주고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의 위상을 높여 주는데 일조했다는 것만으로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제작 관행을 받아들이기에는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너무도 많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콘텐츠와 관련된 대한민국의 공신력 있는 평가 체계 마련이다.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국제적인 명망을 가진 시상식과 행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콘텐츠 평가 체계를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이라는 콘텐츠 강국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그 상징성으로 인해 국내 콘텐츠가 미국의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경우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효과가 크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아카데미, 에미상 등에 도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상이 높아진 만큼 대한민국에서도 국내 콘텐츠를 포함해서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를 평가할 수 있는 행사를 확대하고 체계를 정비하는 일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오징어 게임’의 성취에 대해 상찬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오징어 게임’이 남긴 숙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은 이제 다른 방식의 질적 성장이 필요한 시기를 맞이했다.
노창희 필자 주요 이력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