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경제 안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2022-09-26 06:00

[강준영 한국외대교수]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 명확한 정의는 어렵지만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외부의 유·무형 영향과 충격을 선제적 방어해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글로벌 경제는 무역 갈등이나 에너지·식량 문제 등 전통적인 경제 안보 이슈를 갖고 있었으나 최근 산업 안보, 기술 안보 등이 추가되면서 복잡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중국의 대립이 계속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7개월이나 지속되면서 국제 식량 및 에너지 시장도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불확실성의 확대는 자연스럽게 각국의 자원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고, 국제사회의 리더십 실종은 세계를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밀어 넣고 있다. 특히 전형적인 수출주도형 국가인 한국은 이미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중국 리스크’에 노출된 상황에서 일부 원자재의 심각한 대중 의존도로 경제 안보의 위협이 증대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에 벌어지는 바이든 행정부의 ‘메이드 인 USA’ 공세가 본격화되면서 기존의 ‘차이나 리스크’에 ‘바이든 리스크’까지 겹치는 공전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11월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면 전환과 자국 산업 보호를 기치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능가하는 법안과 조치 들을 연일 밀어붙이고 있다. 겉으로는 국제 규범 수호와 중국 견제를 내세우면서 전기차·반도체·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품 같은 최첨단 핵심 물자를 이제는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반도체 과학법’(CHIPS+/CHIPS and Science Act)과 친환경 투자 확대와 배터리를 포함한 전기차의 북미지역 최종 생산 조건을 규정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에 서명하고,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National Biotechnology and Biomanufacturing Initiative)를 행정명령으로 발동하였다.

이들은 중국 견제를 내세우는 이면에 사실상 실질적인 미국 주도의 첨단산업 재편을 시도하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국의 첨단산업과 기업이 유탄을 맞거나 맞을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반도체와 전기차는 한국의 핵심 수출품이며, 바이오산업 역시 한국이 심혈을 기울이는 미래 산업이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발 인플레이션 감축법인 IRA는 북미지역이나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은 국가의 광물과 부품으로 만든 배터리를 부착한 전기차에만 세금 면제와 보조금을 주는 규정이 있다. 즉 ‘북미 최종 조립 요건’을 갖춘 전기차만이 최대 7500달러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으므로 전기차 배터리는 원자재의 70%를 중국 광물에 의존하면서 한국에서 생산하는 한국산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대혜택을 믿고 미국에 투자한 기업에게 ‘핵심 물자의 미국 내 생산’이라는 법제적 제한은 커다란 불이익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반도체 과학법인 CHIPS+는 미국의 국가 안보 보호와 미국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내세우면서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에 390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면 10년간 중국 공장에 대한 28 나노미터(㎚) 이상은 중국 신규 투자가 금지된다. 3나노급 양산 경쟁 체제인 국제시장 수준을 감안할 때 효용성도 문제지만 투자하면 지원금을 회수하겠다는 정책은 이미 중국에서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40% 이상의 물량을 중국에 공급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반도체 공급망 협의인 ‘칩(Chip) 4’ 결성을 주도하면서 협력을 강조하는 미국의 이런 행보는 우려스럽다.

미국 내 바이오 생산시설 구축 등에 2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예고한 ‘바이오산업’ 행정명령도 마찬가지다. 이는 분야별 분업화에 따라 중국·인도·한국 등에 구축한 해외 의약품 위탁생산(CMO) 비중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 및 관련 의약품 개발에 성과를 보이는 한국 바이오 의약 기업들은 의약품 생산지역이 '미국 생산'으로 한정되면 타격을 피할 수 없다.

한국은 미·중 갈등의 와중에서 중국에 공동 대응하자는 미국의 ‘국제 규범’과 ‘글로벌 가치’ 수호에 보조를 맞추고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에 동참하고 ‘칩4’ 예비회담 참여를 수용했다. 기업들도 국내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와 전기차 공장의 대미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최근 일련의 조치들은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한국의 주력 산업을 견제하고 희생양을 삼은 꼴이다. 원천기술과 장비는 미국이 주도하지만 한국의 반도체 첨단 제조 기술 없이 중국 제어는 어렵다. 특히 한국과 중국이 양대 산맥을 구축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한국을 배제하면 중국 견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IRA 규정은 세계무역기구(WTO)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명시된 차별 금지 조항에 정면으로 저촉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미국이 그토록 강조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자유경쟁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고 ‘가치’ 공유에도 긍정적이지 않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인도의 반도체 협력 러브콜을 받고 있고, 멕시코에서의 전기차 생산 등 자구책을 찾고 있으며 정부는 캐나다나 칠레와의 광물 협력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중이다. 미국의 조급함이 오히려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도 미·중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논리를 전개하면 중국과 다를 바 없으며, ‘포괄적 글로벌전략 동맹’을 상징하는 최대 협력국 한국의 입장이 복잡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 우선주의가 또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지만 미국의 범국가적 공세에 우리도 범정부 차원에서 '전략적 이익'을 규정하고 원칙적으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경제 안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