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생존전략] '無지출' 도전, 채소테크··· 물가 뛰자 소비자·유통街 바뀌었다

2022-09-21 06:00

[그래픽=아주경제]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지난 2년 넘는 기간 이른바 '플렉스(flex, 과시형) 소비'가 대세를 이뤘다.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하는 보상심리에 따라 본인에게 고가의 명품 등을 선물하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 패턴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소비 트렌드에 변화가 감지된다. 절약이 주요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한 푼이라도 아끼는 '짠물소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 '짜다'는 표현은 돈 쓰는 데 인색하다는 의미로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지만, 현재는 '짠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물가 시대에 맞게 알뜰한 소비와 슬기로운 재테크를 한다는 의미로 인식되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고물가 상황 속에서 짠물소비족(族)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9일까지 이마트의 저녁 8시 이후 즉석조리 매출 신장률은 23.8%다. 할인 폭이 큰 저녁시간대에 제품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각 점포별로 편차가 있긴 하지만 오후 7~8시 이후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30~40%까지 즉석조리 식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판매 가치가 떨어진 'B급 상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롯데마트가 시세보다 최대 30% 저렴하게 판매하는 ‘상생과일’ 10여종은 지난달까지 올해 누적 매출 신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00%에 이른다. 상생과일은 맛과 영양은 일반 과일과 차이가 없지만, 외관에 흠이 있어 제값을 받기 어려운 제품이다. 

최근에는 심지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사이에선 '무(無)지출 챌린지'가 유행이다. 아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일정 기간을 버티는 '무지출 챌린지'는 남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생필품을 사는 것을 제외하고 돈을 안 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쓰레기통이나 카페 식기반납대 등을 뒤져 남이 버린 영수증을 줍기도 한다. 영수증을 온라인 사이트에 인증하면 최대 50원에 해당하는 포인트를 적립해주기 때문이다. 

'채소테크'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 작년에 유행했던 '파테크(파+재테크)'에서 한 차원 진화한 것이 채소테크다. 배추, 상추, 고추 등 품목이 다양하다. 최근 배추 등 채소 가격이 급등하면서 집에서 직접 키워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분위기를 반영한다. 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신선채소류 가격은 전년 대비 28% 상승했다. 이는 2020년 9월 가격 상승률이 31.8%를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소비패턴을 반영해 유통업계도 마케팅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업계의 경우 가성비를 앞세운 '반값 경쟁'이 한창이다. 대형마트는 치킨과 피자, 탕수육, 초밥, 도시락 등의 메뉴를 외식 매장 대비 반값에 선보이고 있다. 편의점은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서도 도시락과 샌드위치, 커피 등 전문점 못지않게 품질을 높이는 방식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백화점업계도 앞다퉈 중고시장에 뛰어들며 유통산업 경계를 허물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16일 서울 신촌점에 중고품 전문관 ‘세컨드 부티크’를 오픈했다. 이에 앞서 롯데백화점은 지난 7월 서울 잠실 월드몰에 '빈티지 마켓 팝업'을 선보인 데 이어 지난 16일에는 부산 광복점에 패션 셰어링 플랫폼인 '클로젯셰어' 팝업을 열고 중고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물가가 오르다 보니 소비자들의 지갑 사정도 여유롭지 못하면서 짠물소비가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며 "이를 고려해 유통업체들도 반값 경쟁, 중고시장을 겨냥한 마케팅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