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논란의 벽산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 들여다본다

2022-09-14 07:02
벽산엘티씨엔터프라이즈 몸집 키우고 지분 '몰빵'... 편법 증여 논란 도마에

[사진=벽산]

벽산그룹에서 경영권 승계의 지렛대로 꼽히는 벽산엘티씨엔터프라이즈와 ㈜벽산을 대상으로 국세청의 고강도 세무조사가 동시에 진행 중인 가운데, 국세청이 이번 조사에서 벽산그룹의 지분 이동 과정과 내부거래 적정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란 시각이 일각에서 나온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벽산엘티씨엔터프라이즈(이하 벽산엘티씨)의 최근 3년 평균 내부거래 매출액 비율은 전체 매출의 95%를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벽산 등 각사 결산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의 지난해 총매출액 381억원 중 371억원이 내부거래로 발생했다. 벽산에서 거둬들인 매출이 208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하츠 138억원, 벽산페인트가 25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벽산과 벽산페인트, 하츠는 벽산엘티씨에 2020년과 2019년에도 각각 336억원, 317억원 규모의 건자재 등을 매입해줬다. 이는 벽산엘티씨 전체 매출의 각각 96%, 93%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벽산엘티씨 매출이 △2019년 341억원 △2020년 349억원 △2021년 381억원씩 꾸준히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내부거래 증가가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희철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장남인 김성식 사장에게 넘겨주기 위해 이 회사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벽산의 최대주주였던 김 회장은 지난 2020년 벽산엘티씨에 지분을 대거 이동시키며 그룹 경영에서 빠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2020년 3월 27일 벽산 지분 603만5840주를 담보권실행을 사유로 처분했다. 해당 주식 가운데 430만1357주는 같은날 벽산엘티씨가 넘겨받았다. 

이어 같은해 5월 22일 하츠가 벽산 주식 122만주를 장내매도했고, 이 주식도 벽산엘티씨가 장내매수를 통해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같은 주식 변동이 일어나기 전인 2019년 말 현재, 벽산 2대 주주로 지분 4.96%를 보유했던 벽산엘티씨는 3개월 만에 지분 10.64%까지 확대하면서 최대주주에 오르게 됐다.  

반면, 벽산 지분 8.8%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던 김 회장은 1분기 만에 0%까지 털어내면서 벽산그룹에서 물러났다.  

현재 벽산그룹에 대한 김 회장의 영향력은 벽산장학문화재단을 통한 간접적이고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벽산장학문화재단은 지난 1985년 벽산그룹 설립자인 故 김인득 명예회장이 현금 7억5000만원을 출연해 만든 공익재단으로, 김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국세청 전 고위 관계자는 “개인인 김희철 회장의 경우 양도세 이슈, 법인(벽산엘티씨엔터프라이즈)의 경우 법인세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조사4국이 나섰다는 건 보통 사주 일가 비자금 조성과 연관성이 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