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한류가 공공외교의 첫 단추가 돼야 하는 이유

2022-09-05 06:00

[이병종 교수]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를 평정하고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이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이 시점에서 과연 한류는 어디쯤에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때다. 한국의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등 문화상품은 이제 세계 정상급이 되어 한국을 매력적인 국가로 만들었고 외국인들이 한국을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한국의 위상이 강화되었고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여기에 더해 한류의 인기는 한국 상품의 해외 경쟁력을 높여주고 있고 그로 인해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국가 브랜드 개선이 가져다 주는 대표적인 세 가지 혜택, 즉 수출 증대, 관광객 증가, 그리고 외국인 투자 확대 모든 면에서 큰 효과가 있다.

폭발적인 한류의 인기가 국익에 상업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과연 한류의 파급 효과가 여기서 끝나야 할까? 이제쯤은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필자는 한류를 통해 외교적인 국익을 추구하는 것을 다음 목표로 상정한다. 다시 말해 공공외교의 수단으로 한류 및 한국 문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점은 한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공공외교 청사진에 이미 명확히 밝혀져 있다. 외교부의 공공외교 기본계획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즉 문화, 지식, 정책이다. 문화를 바탕으로 외국인의 사랑을 이끌어 내고 다음 그들에게 한국에 관한 지식을 전파하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한국의 정책, 특히 외교 정책을 지지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같이 한류를 단계적으로 발전 승화 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문화 현상이 영속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호는 변하고 이로 인해 한 문화의 인기는 부침을 거듭한다. 과거 프랑스나 홍콩의 영화, 일본의 팝 음악이 인기를 끌다가 시들어 버린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한류 역시 어느 시점에는 인기가 사라지고 쇠퇴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의 BTS 팬들이 나이를 먹으면 다른 문화로 옮겨가게 될 것이고 그때 새로운 젊은 세대가 똑같은 열정으로 이 아이돌을 사랑하게 될까?

여기에 대해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계의 문화 지평이 강대국, 특히 미국에 유리하도록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로부터 하버드라는 말이 설명하듯 미국의 문화는 대중 문화부터 고급 문화에 이르기 까지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특히 한국이 역점을 두는 대중 문화에서는 독보적이다. 드라마, 영화, 음악, 정보, 뉴스, 게임 등 모든 문화 콘텐츠를 아우르는 초대형 미디어 기업은 대부분 미국에 있다. 인베스토피디아(Investopedia)라는 조사 기관에 따르면 세계 10대 미디어 기업 중 여덟 개의 본사가 미국에 있고 한 곳은 일본, 한 곳은 캐나다에 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국은 초라하게 느껴진다. 1위인 애플은 모두가 알고 있는 세계 최대 IT 기업이지만 최근에는 드라마, 게임 등 문화 콘텐츠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이폰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엄청난 파괴력이 예상된다. 2위 디즈니는 마블, 픽사, 스타워즈, 20세기 영화사 등을 거느리고 있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3위는 해리포터, 유니버셜 스튜디오 등이 포진한 컴캐스트(Comcast), 4위는 OTT의 최강자 넷플릭스(Netflix), 5위는 CNN, HBO, 디스커버리(Discovery) 등 채널을 보유한 워너브러더스(Warner Brothers)이다. 이 밖에 특기할 만한 회사로 컬럼비아(Columbia) 영화사를 자회사로 둔 일본의 소니는 6위, 영국의 뉴스 제국인 로이터(Reuters)를 소유한 캐나다의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는 8위이다. 한국 기업은 당연히 없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이를 전 세계에 전해주는 플랫폼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특히 플랫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이 시점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우수한 문화 콘텐츠가 외국의 플랫폼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오징어 게임’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지식 재산권과 판권이 넷플릭스에 있기 때문에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다. 결국 재주는 곰이 부리고 이익은 남이 챙겨가는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또 다른 히트작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판권을 넷플릭스에게 넘기지 않고 자체 보유해 향후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문화 콘텐츠 최강자인 CJ 그룹이 최근 미국의 파라마운트사와 손잡은 것도 이러한 필요성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문화 콘텐츠 산업이 거대한 미국 상업 자본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한국 대중 문화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한류는 미국 주도 글로벌 문화 시장에서 몇 안되는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 외 사례로는 인도와 나이지리아의 영화 산업인 발리우드(Bollywood)와 날리우드(Nollywood) 정도가 유일하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미디어 학자인 다야 서수(Daya Thussu)는 문화가 이렇게 주변에서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상을 역주행(Counterflow)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한다. 이것은 단지 예외일 뿐 정상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류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 문화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그 다음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역사와 문화를 공부해서 한국에 대한 지식을 쌓도록 만들고 마지막 단계로 한국의 외교 정책을 지지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류를 공공 외교의 한 분야로 이용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기 위해서는 좀 더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 문화에 빠져 있는 외국 젊은이들이 중장년기를 맞아도 여전히 한국을 사랑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