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담대한 구상'과 대북 확증편향

2022-09-02 05:00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소통이 단절된 대북 관계에서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제의를 하고 북한이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제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북한을 잘 알고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의 수용을 확신하며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잘 알고 제대로 본다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을 어떤 눈으로 보고 인식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기울어진 눈으로 북한을 본다면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대북한 인식의 문제는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특히 ‘확증편향’에 사로잡히기 쉽다.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과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이 확증편향이다.
 
지난 77주년 광복절에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대북 ‘담대한 구상’은 한마디로 확증편향에서 비롯된 제의라고 할 수 있다. 제의의 상대인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무시한 채 제시된 계획이기 때문이다. 대북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제의다. 대규모 식량 공급과 함께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농업 기술과 병원·의료 인프라 현대화를 비롯해 국제 투자 및 금융 지원을 하는 것이 내용이다. 이 계획을 달리 표현하면 북한 체제 유지의 근간인 핵을 경제 지원과 맞바꾸자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이미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경제 지원을 받기 위해 자신의 체제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포맷으로 본 것이다.
 
말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이라고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철저한 조사가 시작된다. 기존 핵의 장소와 프로그램은 물론 현재나 미래 핵의 장소와 프로그램도 낱낱이 공개되어야 한다. 하나라도 의심 가는 장소가 있다면 이를 끝까지 파헤쳐 해소해야 한다.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그 바탕 위에 전개되는 '실질적인 비핵화'도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개념 정의에서부터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갈등이 발생하면 협상 타결을 보장하기 어렵다. 설령 타결에 이른다 해도 ‘실질적인 비핵화’에 이르는 과정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북한 체제는 무장해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체제 유지의 무방비 상태, 체제 유지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핵으로는 체제 유지가 절대 불가능한 구조가 되어버리고 만다. 경우에 따라 경제적 지원도 제대로 담보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협상이 결렬되면 경제 지원은 언제든지 중단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일단 해체한 핵은 다시 원상태로 회복시키기는 상당히 어렵다. 북한 핵시설 위치는 알려지고 자칫 잘못하면 피격 대상에 들어갈 수 있다. 체제 붕괴의 위험성에도 노출될 수 있다. 그러니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북한이 수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윤 정부 제의에 대한 북한의 대응은 한마디로 거칠 수밖에 없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는 제목의 김여정 명의의 담화를 게재하면서 남한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검푸른 대양을 말려 뽕밭을 만들어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했다. 더 나아가 "'북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면’이라는 가정부터가 잘못된 전제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남한을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다. 북한과 관련해 국제사회가 가장 큰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이다. 현 수준의 북한 핵·미사일이 그만큼 위협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와 같은 위협을 무기 삼아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우리에게 가하는 북한의 위협을 해소하려고 든다면 북한 또한 그를 통해 당면하는 체제 유지 위협 또한 해소하려 할 것이 뻔하다. 북한의 체제 위협 해소와는 상관없이 우리만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확정편향의 인식 위에 선다면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은 그 방향을 찾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남한 정부의 ‘담대한 구상’이 적실성(適實性)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다름 아닌 남북한 사이의 불신을 먼저 제거하는 일이다. 북한이 ‘담대한 구상’을 일거에 배척하는 데에는 남한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불신은 상호 적대적인 행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남북 관계가 적대적인데 무슨 ‘담대한 구상’이냐는 것이다. 대북한 선제타격까지도 불사하고 있고, 한·미 대북 핵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구상은 자신을 무너뜨릴 계략이 아니냐는 것이다. 김여정이 “오늘은 담대한 구상을 운운하고 내일은 북침 전쟁연습을 강행하는 파렴치한 이가 다름 아닌 윤석열 그 위인”이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따라서 남북이 먼저 불신을 제거하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남한은 한·미 군사연습 중단에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격렬하게 반응해 왔다. 우리는 방어적 훈련으로 보지만 북한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자신의 지역을 점령하려는 연습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연습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이는 다시 북한 핵시설 파괴를 위한 연합훈련 강화로 유도했다. '작전계획 5027'이 영변 핵시설 파괴 및 평양 점령까지 반영하고 있음은 이를 의미한다.
 
대북 전단지 살포도 불신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북한은 9·19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전단지 살포를 중단하기로 했으나 남한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크다. “경내에 아직도 더러운 오물들을 계속 들여보내며 우리의 안전 환경을 엄중히 침해하는 악한들이 북 주민들에 대한 식량 공급과 의료 지원 따위를 줴쳐대는(지껄이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민의 격렬한 증오와 분격을 더욱 무섭게 폭발시킬 뿐”이라고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북한이 언급한 ‘더러운 오물’은 대북 전단 등을 뜻한다. 남북 관계를 변화시키지 않고, 적대적 관계로 일관할 것이라면 북한이 ‘담대한 구상’을 받아들이든 말든 상관없다. 그렇지 않고 그런 구상을 통해 남북한의 평화 공존과 통일로 나아갈 것이라면 북한을 이끌어야 한다. 이끄는 주체는 정부다. 정부가 할 일은 무엇보다도 북한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지금 윤 정부에 필요한 것은 대북한 인식 전환이 아닐까? 확증편향에서 탈피해야 한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