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비상 사태 해결, 윤 대통령 '선택'에 달려
·이준석과 '함께'냐 '따로'냐 선택의 순간 다가와
국민의힘 내분이 어떻게 수습될지가 정국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수습 여부와 그 방향에 따라 국민의힘 당내 역학관계는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 권력 기반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윤 대통령 권력 기반이 무너지면 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국정이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27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대응 방침을 정했다. 그 핵심은 법적 대응이다. 당헌·당규를 정비한 뒤 비대위를 새로 구성하고, 법원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 직무정지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과 항고 등 법적 절차를 밟아나가기로 했다. 개고기·양두구육·신군부 발언 등으로 당원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언행을 한 이준석 대표 추가 징계를 조속히 처리할 것도 당 윤리위원회에 촉구했다. 권성동 원내대표 거취는 이번 사태를 수습한 뒤 의원총회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적 대응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우선 당헌·당규 정비 후 새 비대위 구성 문제를 보자.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지난 26일 주호영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직무를 정지하는 결정을 내린 핵심 이유는 국민의힘 당헌·당규로 볼 때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야 할 만한 비상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헌상 비대위를 둘 수 있는 비상 상황은 당대표 궐위나 최고위원회 기능 상실이다. 법원은 이준석 대표 당원권 6개월 정지는 당대표 직무 수행이 6개월간 정지되는 ‘사고’에 불과할 뿐 당대표 ‘궐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최고위원 4명이 사퇴했지만 1명만 전국위원회에서 선출하면 최고위 정원 9명 중 과반수를 충족할 수 있기 때문에 ‘최고위원회 기능 상실’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법원은 “이 대표가 없어도 권성동 원내대표가 직무를 대행하고 최고위원 1명을 선출했다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당헌·당규를 정비해 비대위를 설치해야 하는 비상 상황의 요건을 현 상황에 맞게 정비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선출직과 당연직으로 구성된 최고위원 중 선출직 전원이 사퇴하거나 최고위원 9명 중 절반이 사퇴한 경우 등 구체적인 사유를 넣겠다고 당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렇게 고치면 현 상황이 비상 상황에 해당하고 비대위를 설치하는 것이 당헌·당규에 위반되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당헌·당규 바꿔 새 비대위 구성은 '소급 입법' 논란 가능성
그러나 이런 방침은 당헌·당규를 뒤늦게 바꿔 현 상황에 소급 적용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헌법 제13조는 소급 입법에 의해 형사처벌하거나 참정권과 재산권을 제한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급 입법 금지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사후에 법률을 새로 만들어 특정인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게 기본 취지다. 법률의 소급 적용을 금지한 것이지만 그 기본 취지는 국민의힘 사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당헌·당규를 고쳐 비대위를 구성하는 것은 소급 입법에 의해 이 대표를 대표직에서 축출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또다시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다.
국민의힘이 이번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과 항고 등 법적 절차를 밟기로 한 것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국민의힘은 이의신청과 항고가 기각되면 대법원에 재항고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1심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설사 번복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힘이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긴 법적 다툼에 빠지면 그 과정에서 여론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내분이 종결되지 않은 채 장기화하고 이준석 대표와 공방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끝내 법적 소송에 이긴다고 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아니라 ‘상처 투성이 그 자체’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법적 해결에 매달리기보다 정치적 해결을 적극 검토하는 게 순리다. 정치적 해결은 우선 법원 결정 취지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준석 대표가 6개월 당원권이 정지됐으니 당헌·당규에 따라 원내대표가 대표 직무 대행을 맡고, 최고위원 1명을 선출해 최고위원회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법원 결정 취지를 따라야 더 이상의 법적 분쟁을 막을 수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직 유지는 민심 역행
여기서 문제는 대표 직무 대행을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맡기느냐, 아니면 원내대표를 새로 뽑아 그에게 맡기느냐다. 권 원내대표는 이미 신뢰를 잃었다. 대통령실 9급 직원 추천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고작 9급인데 뭘~” 하며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을 했다. 거대 야당을 상대하면서 특별한 정치력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내부 총질’이라는 윤 대통령의 개인적 메시지를 노출해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이쯤 되면 책임지고 원내대표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게 상식에 맞는 처신이다. 새로 원내대표를 뽑고 그가 당을 이끌게 하면 된다.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를 포기하고 원내대표가 대표 직무 대행을 맡게 하는 결정을 하기가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사실상 이준석 대표에게 손을 들어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이 대표와 죽기 살기 식으로 싸워서 득이 될 게 뭐가 있을까. 이 대표와 싸우다 정작 국민 지지를 잃는다면 초가삼칸을 통째로 태우는 결과밖에 더 되겠는가?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가장 큰 원천은 국민 지지다. 국민 지지를 잃고 나면 아무것도 소용없다.
국민의힘은 새 원내대표를 뽑아 대표 직무 대행을 맡기고 내년 1월 이준석 대표가 복귀하게 되면 당권이 이 대표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할 수 있다. 그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대표가 복귀한다면 그는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6월까지 대표직을 수행하게 된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조기 사퇴론을 일축하고 임기를 채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대표 체제로 내년 6월까지 간다는 것은 현 국민의힘 지도부는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악몽’일 수 있다. 당의 권력 중심이 이 대표 쪽으로 쏠리고 거꾸로 윤 대통령의 당내 권력 기반은 더욱 약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윤 세력과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반윤 세력 간 권력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국민의힘 내분은 격화돼 국민 지지를 더욱 잃게 될 것이다. 그 여파로 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질 수 있다. 이는 국민의힘이나 윤 대통령을 떠나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사전에 막는 게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그 길은 윤 대통령과 이준석 대표의 정치적 화해뿐이다.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화해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화해가 절실한 쪽은 이 대표가 아니라 윤 대통령이다. 두 사람이 싸우면 이 대표보다 윤 대통령이 잃을 게 훨씬 더 많다. 이 대표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데 상처를 입는 정도이겠지만, 윤 대통령은 국정 장악력을 잃어 국정 수행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될 수 있다.
윤 대통령, 당 내분 계속되면 국정 장악력 상실 우려
물론 변수는 있다. 이 대표의 성상납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다. 경찰이 성성납 의혹이 사실이라고 발표하면 이 대표는 결정적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제명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 대표는 당대표직을 박탈당하게 된다. 경찰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다.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한다면 이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 대표의 반발과 당내 싸움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와 관계 없이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 정치적 화해를 하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윤 대통령의 국정 장악 능력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내년 1월 복귀해 내년 6월까지 임기를 채운다고 할 때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 '동행'하는 기간은 5개월이다. 5개월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지금 같은 싸움으로 지속한다면 긴 시간이지만 별 문제 없이 보낸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 5개월 동안만 큰 분란 없이 지낼 수 있으면 된다. 화해를 못할 이유가 없다.
두 사람이 화해하려면 서로 간에 주고받을 게 있어야 한다. 정치 세계에서 화해란 결국은 주고받는 흥정이다. 그 흥정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는 윤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통령실 참모와 국민의힘 지도부의 정치력에 달렸다. 윤 대통령은 싫든 좋든 화해와 흥정에 나설 것이냐, 아니면 끝까지 정면 대결로 갈 것이냐를 선택해야 할 순간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 대표와 함께 가느냐, 따로 가느냐의 선택이다. 윤 대통령은 이제부터 진짜 ‘정치’의 세계에 들어섰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