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한·중 30년 … 미래 발전을 위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2022-08-17 06:00

[강준영 한국외대교수]



오는 8월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양국 관계의 비약적 발전은 한때 세계 외교의 기적으로 불렸으며, 현재도 많은 발전 여지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미·중 전략적 갈등의 심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속되는 코로나 팬데믹 등 국제적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30년을 맞는 한·중 관계도 미래 발전을 위해 서로의 인식을 재정립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특히 북한이라는 이질적 요소를 안고 출발한 한·중 관계는 분명히 그동안 양국 관계를 확실하게 견인해왔던 경제 협력의 동력이 경쟁 요소가 강화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으며,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국력의 비대칭성이 빠르게 확대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상대방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정서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한국의 새 정부가 한·미 동맹의 복원은 물론 글로벌 전략 동맹 강화를 천명하자 다분히 ‘중국적’인 우려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인식차는 지난 9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 장관 회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왕이 부장은 한·중 관계의 다섯 가지 마땅함(應當)을 제시하고 나섰다. 한·중 관계에 독립 자주와 선린 우호의 견지, 개방과 윈-윈 및 평등 존중과 다자주의의 고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중 독립 자주는 한국이 미국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요구이며, 다자주의는 미국 주도의 대중 압박에 한국이 동참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박진 장관도 한국은 국익에 따라 행동하겠다며 우리 정부의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 중국은 말을 아꼈다.

문제는 한·중 갈등을 위기로 몰았고, 여전히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는 점이다. 거센 공세가 예상됐던 이른바 칩4(CHIP 4/반도체 공급망 협의)에 대해서는 한국을 지켜보겠다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으나, 한국이 2017년 10월 31일 사드 합의를 통해 사드 추가 배치 및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과 한·미·일 3국 군사 동맹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사드(THAAD) 3불’ 문제에 합의한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국가 간 약속이니 만큼 새 정부도 이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사실 당시의 ‘사드 합의’는 공동 합의문도 없었을 만큼 그야말로 봉합(縫合) 또는 봉인(封印)에 그친 것이었다. 당시 중국은 한국이 ‘중국 측의 사드 문제 관련 입장과 우려를 인식하고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는 그 본래 배치 목적에 따라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 것으로서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내용과, 소위 3불(不)로 지칭되는 중국 정부의 입장과 우려를 구체적으로 적시함으로써 이 문제를 간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당시 한국 정부는 단지 중국의 입장을 들었고, 유의하기로 했다면서 어떠한 약속도 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박진 장관은 문서로도 남아 있지 않은 지난 정부의 일은 결코 약속이 될 수 없다며 한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드의 단계적 해결’을 강조하던 중국은 갑자기 1한(限)을 추가해서 들고 나왔다. 당시 중국 당국의 정책 방향 선도 역할을 하는 환구시보에 의해 제기된 이 1한은 사드 레이다의 탐측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드 합의 당시에 언급되지 않았던 문제를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핵 보유나 미사일 전력 고도화가 동아시아의 전략 균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으며, 한국이 안고 있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긴박성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핵 해결을 통한 한반도 안정을 희구하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일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는 북한의 핵보유라는 본질을 간과하고, 북한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양국이 북핵이나 북한 문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보다 근본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 반도체 공급망 협의에 대한 중국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칩4 예비회의 참여를 결정하자 중국은 칩4를 자신들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미국의 기술 패권주의라면서 한국에 ‘중국 시장을 잃는 자살 행위’라는 험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반도체 생태계는 미국의 원천 기술과 장비, 일본의 소재와 부품, 한국과 대만의 제조 능력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간과하면 안된다. 만일 한국이 이 생태계에서 고립되면 중국은 대체재 확보가 어려운 한국산 반도체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유시장경제 국가인 한국의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반도체 발전 정책을 국가가 제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의 태도는 자칫 한국의 산업 발전에 대한 간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과 일본, 대만보다는 한국이 중국에 우호적인 점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제 양국은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 자신의 입장만을 강요하면서 상대방의 일방적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21세기 글로벌 시대에는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로가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면 회담을 통해 입장을 개진한 것은 새로운 관계 정립에 고무적인 일이다. 이제 상호 간에 좀 더 솔직하게 양자 간의 문제에 대해 접근하면서 새로운 협력의 틀을 만들기 위한 획기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미래 30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