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우리 수출이 살길은 '해외시장 리모델링'

2022-08-10 05:00
- 주력 시장 다변화는 생존을 위한 필연적 선택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동서울대 교수]

한국 경제의 최종 보루인 무역 전선에 불안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수출이 꾸준하게 늘고 있기는 하지만 수입이 더 빠른 속도로 급증해 무역수지적자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복병을 만나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문제는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적자의 폭이 확대되고 있는 점이다. 특히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과의 교역에서 수교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보이는 점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수출 증가세는 현저하게 감속하고 수입 증가세는 확연하게 나타난다. 일시적 현상이 아닌 만성적인 적자 구조로 진입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싹튼다. 한국 무역에 구조적 전환의 시기가 오고 있다는 시그널이다.

대(對)중국 교역 위기에 대한 진단에 시각차가 엄연하게 존재한다. 하나는 글로벌 경제의 악재에 더해 코로나로 인한 중국의 봉쇄가 장기화함에 따른 단기적인 현상으로 점진적으로 정상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다. 따라서 중국 시장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수출 확대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양국 간 시장 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므로 중국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더는 유지할 수 없다는 비관적 평가다. 중국 시장에 집착하지 말고 수출시장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한다. 어느 것이 틀렸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한국 수출의 장기적 비전을 만들어가야 하는 점에서 보면 전략적 수정이 불가피한 시기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우선 중국 시장 내에서 한국 상품의 위상 변화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 수출은 대기업이 선도하고, 중소기업은 이를 반사적 기회로 활용하여 시장의 틈새를 파고드는 전술을 구사한다. 하지만 이에 균열이 생겨난 지 꽤 오래되었다. 한국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7%, 가전제품은 2.8%, 스마트폰은 0.6%로 뚝 떨어졌다. 반격의 고삐를 죄고 있지만 크게 개선될 기미는 없다. 화장품이나 식품 등 소비재는 중국 소비자의 외면으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 반면 가성비를 내세운 중국산 가전 혹은 IT 제품을 비롯하여 인력난으로 공백이 생긴 한국 제조업의 틈새를 거세게 파고들고 있다. 중국 제품과 비교해 차별적 우위가 없어지다 보니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불리해지는 교역 구조의 역전이 현실화하는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인과응보다. 우리의 치명적 약점인 지나치게 하나에만 집중하면서 다른 것들은 아예 쳐다보지 않는 외골수 경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중국에 올인하면서 단순 수출뿐만 아니라 생산시설을 대거 이전했다. 시장이 커지기도 했지만, 국내 인건비가 오르고, 노사분규 등 제반 기업 환경이 불리한 요인도 이를 부채질했다. 하지만 여건 변화로 현지 진출 기업들까지 중국 사업을 대폭 줄이거나 접어야 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중국 자체 기술력 향상으로 부품·소재의 자급 능력, 즉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은 더 견고해지는 중이다. 국내와 중국 법인 간의 기업 내부 수출은 급격히 줄고, 역으로 수입만 늘어난다. 이에 더해 일본산 대신 중국산으로 갈아타는 편중 심화로 오히려 발목이 잡힌다.
 
중국 시장에 대한 수출 확대 노력은 지속, 수출 비중 축소에 대해선 안달하지 말아야
 

1965년 무역 통계 작성 이후 2000년대 초까지 우리 수출의 주력 시장은 줄곧 미국과 일본이었다. 1992년 수교 직후 중국도 10대 수출시장으로 편입되었지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도 비슷한 수준의 수출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시장 판도가 급속하게 중국으로 기울면서 기존 선진국이나 신흥국 시장으로 수출이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 시장이 있는 곳에 기업의 수출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우리 기업이 중국 대신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면서 2017년부터 베트남이 수출 3위 대상국으로 올라서고 있다. 우리 수출이 증가세를 견지하고 있으나 중국 수출은 증가가 주춤해지는 반면 오히려 미국이나 일본, 동남아나 인도 등으로는 더 늘어나는 추세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 대한 비중이 절정인 2018년 26.8%에서 점진적으로 감소하여 올해 23% 대로 주저앉고 있다. 중국 수입 시장 국가별 점유율도 2013년부터 2019년 사이 1위를 차지했으나 2020년 이후 대만이나 아세안에 밀리고 있는 판이다. 다른 이유를 갖다 붙이기보다 먼저 시인해야 할 것은 중국 시장 내에서 우리 제품의 전반적인 경쟁력 후퇴 징후다. 고가 제품에는 선진국, 중저가 제품에는 동남아 등 신흥국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이 완화되기보다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대중(對中) 교역에서 석 달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더 큰 걱정이다. 원자재 가격 폭등이 주된 원인이긴 하지만 적자의 고착화 가능성에 대해 경계를 해야 할 때이다.
 
수출시장 다변화를 두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지나치게 정치·이념적으로 경사가 되어 중국을 포기하고 다른 시장으로 수출을 늘리자는 것에 대해 필요 이상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까지 한다. 지난 70여 년의 우리 수출 시장 변화 과정을 보면 주력 시장의 판도가 바뀔 때가 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중국 시장 수출을 지레 포기하거나 줄일 필요는 없고, 당연히 수출을 늘리려는 노력은 기울여야 한다. 전체 수출을 지속해서 늘려가면서 중국 시장 수출 비중을 줄이는 것이 정상적인 해법이다. 실제로 수출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의 고전을 만회하기 위해 동남아·미국·유럽 등으로 판매를 늘리는 ‘수출 리모델링’ 작업을 서두른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중 충돌 사이에서 우리 수출이 살길은 결국 시장 다변화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