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탁은행 출신이 뜬다] 국회의장·부의장·경제부총리까지... 정·관계 거물 배출
2022-08-07 07:00
"'개천에서 용 난다' 몸소 보여... 우리 사회 청량제"
김진표 국회의장, 김영주 국회부의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서울신탁은행’ 출신이라는 점이다. 서울신탁은행은 1959년에 설립된 서울은행이 1976년에 한국신탁은행과 합병해 출범한 민간은행이다. 2002년에 하나은행에 흡수합병됐다. 이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시련을 딛고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가 정·관계, 금융권 거물이 됐다.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는 “서울신탁은행 출신 현역 '빅4'는 여전히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음을, 금수저 아니고도 성공할 수 있음을, 눈물 젖은 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청량제”라고 평가했다.
퇴사 후 김 의장은 1971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고, 노무현 정부에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 올랐다. 쫓겨난 신입 행원 출신이 금융권을 아우르는 경제·금융 부처 수장에 오른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김 부의장은 선수 출신 은행원인 데다, 상고를 졸업한 후 바로 입행한 직원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한계를 넘기 위해 주산, 부기 등 기본기부터 갈고 닦았다. 도장 정리 같은 허드렛일도 도맡았다. 피나는 노력 끝에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임금과 승진, 출산·육아 등에서 여러 차별 대우를 경험하면서 노동운동에 발을 들였다. 김 부의장은 1998년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부위원장에 올랐다. 그는 노조 활동을 하며 남녀고용평등법 제·개정에 앞장섰다.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새천년민주당 노동특위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2004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8대 총선에선 졌지만, 19·20·21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4선을 지내는 동안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농구선수 이후 비주류로 살아온 김 부의장은 여성, 주부, 직장으로서의 경험이 입법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21대 국회 후반기 야당 국회부의장에 올라, 헌정 사상 두 번째 여성 국회부의장이 됐다.
그는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1982년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에 합격했다. 1983년 총무처,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신탁은행과의 인연은 공직 입문으로 7년 8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김 지사는 이후에도 미국 미시간대 공공정책학 석·박사 학위를 받는 등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김 지사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지명했다. 당시 청와대는 그를 “거시경제 통찰력과 조정 능력을 겸비한 유능한 경제 전문가이며 소년가장 출신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경제 사령탑”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새로운물결을 창당했고, 지난 3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가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을 상대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2016년 3월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을 겸직했고, 2019년부터는 경영지원부문 부회장으로 그룹의 전략, 재무 기획 등을 총괄했다. 이후 하나금융그룹 수장에 낙점돼 은행원에서 4대 금융지주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 됐다.
그는 2003년 카드대란 당시 금융회사 부실채권 인수, 2011년 저축은행 사태 PF(프로젝트파이낸스) 부실채권 인수·관리 등 위기 국면에서 구원투수로 큰 역할을 했다. 지난 1월엔 캠코 사장에 내정됐다. 민간 기업 출신이 캠코 사장에 오른 건 22년 만이라 이목을 끌었다. 그동안 캠코 사장은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가 맡아왔다. 권 사장은 특유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직원들로부터 신망받는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서울신탁은행’ 출신이라는 점이다. 서울신탁은행은 1959년에 설립된 서울은행이 1976년에 한국신탁은행과 합병해 출범한 민간은행이다. 2002년에 하나은행에 흡수합병됐다. 이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시련을 딛고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가 정·관계, 금융권 거물이 됐다.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는 “서울신탁은행 출신 현역 '빅4'는 여전히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음을, 금수저 아니고도 성공할 수 있음을, 눈물 젖은 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청량제”라고 평가했다.
김진표 국회의장, 차별 맞서다 2개월 만에 퇴사... 경제·금융부처 수장으로
지난달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된 5선의 김진표 의장은 경복고, 서울대를 졸업한 이후 1971년 서울신탁은행 입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본인은 대졸임에도 고졸 행원과 대졸 행원 간 차별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불과 2개월 만에 회사를 나왔다. 상업고교 졸업 전에 입행한 동료 행원들이 기말고사 시험을 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자, 다른 대졸 행원들과 연판장을 쓴 게 화근이 됐다. 김 의장은 그들이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지 못하면 졸업장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농구선수 출신 김영주 국회부의장, 헌정사 두 번째 여자 부의장
김영주 부의장은 농구선수라는 흔치 않은 경력을 보유한 정치인이다. 무학여중, 무학여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고교 시절 1년 선배 강현숙과 전국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서울신탁은행과 인연을 맺은 건 1973년이다. 당시 실업 명문팀이던 서울신탁은행 감독에게 스카우트됐다. 이후 부상으로 3년 만에 선수 생활을 접고 서울신탁은행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다.김 부의장은 선수 출신 은행원인 데다, 상고를 졸업한 후 바로 입행한 직원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한계를 넘기 위해 주산, 부기 등 기본기부터 갈고 닦았다. 도장 정리 같은 허드렛일도 도맡았다. 피나는 노력 끝에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임금과 승진, 출산·육아 등에서 여러 차별 대우를 경험하면서 노동운동에 발을 들였다. 김 부의장은 1998년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부위원장에 올랐다. 그는 노조 활동을 하며 남녀고용평등법 제·개정에 앞장섰다.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새천년민주당 노동특위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2004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8대 총선에선 졌지만, 19·20·21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4선을 지내는 동안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농구선수 이후 비주류로 살아온 김 부의장은 여성, 주부, 직장으로서의 경험이 입법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21대 국회 후반기 야당 국회부의장에 올라, 헌정 사상 두 번째 여성 국회부의장이 됐다.
소년가장 김동연, 경제부총리에 경기도지사 당선까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친정도 서울신탁은행이다. 그는 덕수상고 3학년 때인 1974년에 한국신탁은행 촉탁행원으로 입행했고, 1975년에 초급행원이 됐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그는 할머니와 어머니, 세 명의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소년가장이었다. 어머니는 은행에 입사한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입행 후에도 배움에 갈증을 느낀 그는 1977년 야간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그는 병역 의무와 학업을 병행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통에 있던 고시 수험생을 위한 잡지를 보고 고시 공부에 눈을 떴다. 낮에는 은행원, 밤에는 대학생, 새벽엔 수험생의 삶을 살았다.그는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1982년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에 합격했다. 1983년 총무처,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신탁은행과의 인연은 공직 입문으로 7년 8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김 지사는 이후에도 미국 미시간대 공공정책학 석·박사 학위를 받는 등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김 지사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지명했다. 당시 청와대는 그를 “거시경제 통찰력과 조정 능력을 겸비한 유능한 경제 전문가이며 소년가장 출신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경제 사령탑”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새로운물결을 창당했고, 지난 3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가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을 상대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고졸 신화’ 함영주, 은행원에서 금융지주 회장으로... "입지전적 인물"
지난 3월, 하나금융그룹은 10년 만에 새 수장을 맞이했다. ‘고졸 신화’로 유명한 함영주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함 회장은 1980년에 서울신탁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단국대 회계학과에 진학, 주경야독으로 학업을 이어갔다. 2002년에 서울신탁은행이 하나은행과 통합된 후 충청영업그룹을 이끌며 영업실적 전국 1위를 기록했다. 그는 친화력, 성실함을 무기로 앞세워 2015년에 주요 후보들을 제치고 초대 통합 하나은행장에 올랐다.2016년 3월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을 겸직했고, 2019년부터는 경영지원부문 부회장으로 그룹의 전략, 재무 기획 등을 총괄했다. 이후 하나금융그룹 수장에 낙점돼 은행원에서 4대 금융지주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 됐다.
권남주 캠코 사장, 경제위기마다 구원투수 역할 톡톡
서울신탁은행 출신 금융권 유력 인사로는 권남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도 있다. 1978년에 입행한 그는 20년간 근무한 후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에 캠코로 자리를 옮겨 NPL인수전략실장, PF채권관리부장, 서민금융지원부장, 인사부장, 상임이사,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그는 2003년 카드대란 당시 금융회사 부실채권 인수, 2011년 저축은행 사태 PF(프로젝트파이낸스) 부실채권 인수·관리 등 위기 국면에서 구원투수로 큰 역할을 했다. 지난 1월엔 캠코 사장에 내정됐다. 민간 기업 출신이 캠코 사장에 오른 건 22년 만이라 이목을 끌었다. 그동안 캠코 사장은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가 맡아왔다. 권 사장은 특유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직원들로부터 신망받는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