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하는 ESG] '친환경' 독일마저 과거 회귀···국내기업들 적자 속 투자 부담 늘어

2022-08-03 07:00
원자재난에 유럽 국가, 석탄발전 증량
자산운용사들도 환경 관련 태도 바꿔
종전 글로벌 규제기조에 맞춘 투자계획
국내 경영환경 맞게 수정할 필요성 커져

국내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투자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글로벌 주요국의 고금리 정책으로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ESG에 덮어놓고 찬성했던 유럽 주요국과 글로벌 투자자들도 오히려 ESG에서 회귀를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급격한 친환경 에너지 전환 목표가 기업 경영 환경과 동떨어져 있어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글로벌 주요국·투자자도 ESG 이전으로 회귀

최근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네덜란드가 모두 석탄발전을 늘리는 에너지 긴급 조치에 나섰다. 지난 6월 독일 대표 에너지기업 RWE는 채굴을 중단했던 갈탄 광산 3개를 다시 가동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가스 공급이 극도로 줄어들면서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면서 탄소중립에 가장 적극적이던 독일마저 '과거 회귀'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꾸준히 친환경 등 ESG 경영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업들을 압박해온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태도를 바꿨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 ISS에 따르면 블랙록은 올 상반기 투자기업 연례주주총회에서 환경과 사회 이슈 관련 주주 제안 24%에만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상반기 찬성률이 43%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블랙록이 공개한 주주제안 투표 현황 보고서에서 "대부분 기후변화 대응 관련 주주제안은 기업 재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올해 1월 투자자 연례 서한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도록 기업에 요구하는 블랙록 정책은 정치적 목적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 수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 것과 정반대 태도로 선회한 것이다.

글로벌 각국과 자산운용사 태도가 삽시간에 바뀐 것은 에너지 확보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글로벌 각국은 안보적 위기 해소를 위해 에너지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그동안 활용을 줄여야 한다고 했던 화석연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수요 급증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국제유가는 배럴당 평균 100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60달러 초반에서 거래된 것에 비해 50% 이상 급등한 수준이다.

◆철강, 비현실적 목표 때문에 신기술 개발에 올인 "109조원 투자 필요"

이에 국내 기업 사이에서도 친환경 에너지 전환 시점을 다소 연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속한 ESG 적용을 강조해온 유럽에서도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어려운 경영 환경을 무릅쓰고 ESG 목표 달성에 속박될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이다.

실제 업종에 따라 국내 기업은 극심한 친환경 에너지 전환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철강산업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국내 산업권이 2050년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규모는 불과 5110만톤(t)에 그친다.

이는 2018년 기준 국내 산업권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기업인 포스코 배출량인 7312만t보다 적다. 즉 2050년에는 수백 곳이 넘는 산업권 사업장 전부가 2018년 포스코 대비 70% 수준으로 탄소 배출량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극단적인 목표가 제시된 탓에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사는 획기적인 신기술에 회사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으로 지목된 포스코도 '수소환원제철'이라는 신기술을 개발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포부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비용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국철강협회는 철강사 전체가 수소환원제철로 설비를 전환하고 기술을 적용하는 데 109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석유화학, 수익성 반토막 불구 13.2조원 투자 계획···시멘트 "당장 적자에 부담 심각"

철강뿐 아니라 석유화학과 시멘트산업도 친환경 설비 투자 등에 부담이 과중한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 기조에 발맞추기 위해 국내 주요 석유화학사는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세부적으로 LG화학은 바이오 소재와 재활용 플라스틱, 신재생에너지 산업 소재에 총 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은 수소밸류체인 구축 등 향후 10년간 친환경 사업에 5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지오센트릭은 2021~2025년에 걸쳐 생분해성 수지 등 친환경 소재 생산설비, 폐플라스틱 처리 설비 등에 약 5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는 올해 원재료 가격 인상 등으로 석유화학 기업 수익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큰 부담이다. 이들 3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합계(별도 기준)가 6903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1조2477억원 대비 44.67% 줄었다.

시멘트업계도 환경 관련 부담금과 미래 친환경 설비를 위한 투자금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현재 시멘트업계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순환자원 처리시설·오염물질 저감장치 등 친환경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30년까지 3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원가 부담 등이 심각해져 올해 적자를 예상하는 기업도 있다"며 "당장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수조원이나 되는 자금을 투자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