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尹정부 외교 구상은 무엇인가
2022-07-28 06:00
“어릴 적에 괴롭힘을 당했던 것은 어떤 아이였는가? 약한 아이가 괴롭힘을 당한다. 강한 아이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강한 듯한 나라에는 시비를 걸지 않는다. 약한 듯한 나라가 당한다.”
참의원 선거를 앞둔 7월 4일 거리 연설에서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전 총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 말이다. 아소 부총재는 나흘 후인 8일 거리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와 함께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아소 부총재의 경박하고 인권 의식이 결여된 발언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5년 이내의 발본적인 방위력 강화’와 이를 위한 ‘방위비의 상당한 증액’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는 기시다 총리의 속내를 알기 쉽게 국민에게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실제로 7월 22일 공표된 일본 방위백서의 별책에는 “평화를 가져오는 ‘억지력’”을 다루었는데 “방위력에 의해 우리나라에 침해를 주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상대에게 인식시켜 위협이 미치지 않도록 억지"가 강조되었다. 또한, 본문에서 이전에는 주요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를 비교하면서 G7, 호주 및 한국과 비교해 일본의 GDP 대비 국방비가 가장 낮다고 서술했었는데, 이번에는 이에 더해 처음으로 국민 1인당 국방비를 비교하여 호주, 한국, 영국, 프랑스, 독일이 모두 일본의 약 2-3배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실현하려는 ‘중국몽’과 대비되는 ‘일본몽’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할지는 차치하더라도 경제면에서만이 아니라 외교·안보 측면에서 일본의 역할을 강화해 새로운 국제질서의 규범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일본의 국가상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 6월 10일 샹그릴라 대화 기조 강연에서 기시다 총리가 밝힌 ‘평화를 위한 기시다 비전’도 큰 틀에서 아베 전 총리가 깔아놓은 노선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일본의 방위력 강화와 관련해 헌법과 국제법의 범위 내에서 미·일동맹의 기본적 역할 분담을 변경하지 않는 형태로 추진하고 투명성을 가지고 각국에 정중하게 설명하겠다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특히, 대만 통일을 위해 무력 행사를 불사하겠다는 중국과 대만관계법에 의거 지원하려는 미국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대만 정세의 안정은 일본 안보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이나 우호국, 국제사회와 연계하면서 관련 동향을 한층 긴장감을 가지고 주시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자유, 민주주의, 기본적 가치, 법의 지배 같은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며 중요한 친구”인 대만의 문제를 자국 안보와 직결된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대만 유사시 미국과 공동 대응할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중국은 ‘중대한 위협’, 북한은 ‘보다 중대하고 긴박한 위협’, 러시아는 ‘현실적인 위협’이라고 규정했던 자민당 안전보장조사회의 제언과 달리 방위백서에서는 작년 백서를 답습해 중국은 ‘강한 우려’라고 북한은 ‘중대하고 긴박한 위협’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해서는 ‘동향을 주시’하겠다는 것에서 “우려를 가지고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우려 표현의 강도를 높였다.
지난해 북한 항목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능력’이라는 해설을 실었던 것과 달리 올해에는 ‘한반도에서의 무기 개발의 진전’이라는 해설에서 2021년 1월의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강조한 군사 목표의 내용과 그 후 동향을 언급하고 이에 대한 한국 측의 대응을 소개하면서 “한반도에서의 군사력 동향이나 남북관계의 추이를 주시해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방위백서 발표 후 외교부와 국방부는 독도 영유권에 관한 부당한 주장에 강력히 항의하고 즉각적인 시정과 철회를 요구했다. 국가안보실을 비롯한 정부 관련 부처에서 상세한 분석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우리 정부의 대일정책의 뚜렷한 목표가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것이 우려스럽다.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박진 외교부 장관이 약 3년 만에 일본을 방문해 하야시 요시마사 외상과 외교장관 회담을 했으며, 기시다 총리도 예방했다. 박진 장관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 관련 현금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고, 양측은 해당 문제의 조기 해결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19일 기자회견에서 하야시 외상은 현금화가 이뤄지면 한일관계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현금화는 피해야 하며, 한국과 긴밀히 의사소통은 하겠으나 한국의 대응을 지켜보겠다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외교장관 회담에 관한 일본 외무성 발표문에는 “현하(現下)의 전략환경에 비추어 일한·일미한 협력의 진전이 지금 이상 중요한 시기는 없다는데 인식이 일치”했으며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침략에 대한 비난이란 점에서 일치”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 외교부 보도자료에는 없었다.
7월 8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후 외교부는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3국간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던 데 반해 일본 외무성은 “일·미·한 협력의 전략적 중요성을 바탕으로 중국이나 우크라이나 정세를 포함한 지역 정세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한 대응에 관해 의견교환”을 했다고 발표했다.
한일 두 나라가 상대를 응시하는 지점과 방향이 다른 것 같다. 일본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아베-스가-기시다로 총리가 바뀌었지만, 자민당 정권이 계속되면서 정책적 연속성을 유지한 가운데 글로벌 차원의 국가전략 속에서 한국 외교를 설정해왔다. 이명박-박근혜 두 번의 보수정권과 문재인 진보정권을 거쳐 대일 외교는 정책적 연속성은커녕 과거사를 둘러싼 역사문제와 미래와 협력의 문제가 국내 정치 쟁점화하고 이것이 국력이 커진 한국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보수화한 일본 사회와 충돌하면서 한일관계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버렸다.
7월 2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외교부는 ‘정상 셔틀외교 복원 목표, 과거사 문제의 합리적 해결’에 초점을 맞춰 대일 외교를 추진하고 ‘보편적 가치·규범에 입각한 한중관계 발전’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중국에 보편적 가치와 규범의 준수를 요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공동이익에 기반한 동아시아 외교’라는 국정과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두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윤석열 정부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려는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일관계의 복원이 아니라 한국 외교의 복원이 급선무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