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팜유 재고에 골머리…인도네시아의 어설픈 시장 개입

2022-07-27 15:00
해바라기씨유 대체재로 부상…인도네시아 경제에 호재

인도네시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팜유 가격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팜유 가격을 잡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해 초 팜유 수출을 제한하는 강수를 뒀다. 그러나 지금은 넘치는 팜유 재고가 인도네시아의 골칫거리가 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규제를 일부 완화해 팜유 수출을 재개했지만 전문가들은 문을 더 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팜유 수출 활성화를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관련 일자리도 늘려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어설픈 시장 개입
 

팜유를 추출하기 위한 기름야자를 모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팜유는 기름야자나무(palm tree) 열매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이다. 값이 싸고 트랜스지방이 없어 쿠키나 인스턴트 라면, 초콜릿 등 식재료부터 화장품, 치약까지 폭넓게 쓰인다. 특히 식용유 주원료로 쓰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최근 로이터 등 외신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팜유 수출 관련 규제를 완전히 없애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팜유 재고 증가로 가격이 하락해 농가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오자 정부가 관련 대책 마련을 서두르는 것이다.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올해 팜유 가격 불안에 대응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해바라기씨유 수출이 막히며 팜유가 불티나게 팔리자 팜유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팜유 수요가 늘며 인도네시아 수출량은 급격히 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식용유 대란에 빠졌다.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팜유는 없어서는 안 될 식품이다. 특유의 덥고 습한 기후로 인해 기름을 이용한 음식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 음식인 볶음밥 나시고랭과 볶음면 미고랭 모두 기름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다. 팜유 품귀현상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물가가 오르니 인도네시아 민심은 들끓었다. 지난 3월 말 집권당인 투쟁민주당(PDI-P)은 '식용유 없이 요리하는 법' 시연회를 열어 튀기지 말고 끓이거나 쪄서 먹자는 웃지 못할 황당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급기야 식용유 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시장에 개입했다. 식용유 생산업체에 국내 시장 의무(DMO)를 모든 식용유 생산업체에 적용해 식용유 업체들이 계획된 수출량 중 20%를 국내 시장에 의무적으로 판매하도록 했다. 그런데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자 지난 4월 말에는 완전 수출 금지를 단행했다. 

문제는 정부 개입이 팜유 가격을 잡아도 너무 잡았다는 것이다. 팜유 재고량이 급증하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팜유 주원료인 기름야자 열매 가격은 수입 금지 조치 전 ㎏당 4600루피아(약 350원)를 상회하다가 조치 이후 800루피아(약 70원) 수준까지 단번에 내려왔다. 현재는 1000루피아(약 88원) 수준을 오가고 있다. 
해바라기씨유 대체재로 부상···인도네시아 경제에 호재

팜유 수출은 인도네시아 경제에 중요하다. 인도네시아팜유협회에 따르면 팜유 산업은 매년 인도네시아 국내총생산(GDP)에서 3.5%를 차지한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팜유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420만명으로 추산된다. 간접적으로 관련된 노동자까지 고려하면 1200만명에 달한다. 

지난 16일 인도네시아 통계청(BPS)은 지난 6월 인도네시아 수출액은 260억9000만 달러(약 34조4000억원)라고 발표했다. 이는 5월과 비교해 21.3%, 1년 전보다는 40.7% 급증한 수치다. 수입액은 210억 달러(약 27조7000억원)로 5월 대비 12.9%, 1년 전보다는 22% 증가했다. 무역수지 흑자는 50억9000만 달러(약 6조7000억원)로 5월보다 76% 급증했다.

6월 수출액이 급증한 것은 팜유 수출을 재개한 영향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5월 22일까지 팜유 관련 제품에 대해 수출을 금지하고, 6월부터는 수출 문을 열어줬다. BPS는 "팜유로 인한 흑자가 27억4000만 달러(약 3조6000억원)로 전체 무역수지 흑자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 관련 각종 규제를 풀면 수출 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는 팜유 업체에 국내 공급량의 7배까지만 수출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내 재고 감소를 위해 팜유 관련 규제 해제를 시사한 만큼 조만간 규제 완화가 단행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환경오염으로 입지가 줄어드는 팜유···인도네시아, 이번 기회 중요성 ↑
전 세계적인 팜유 대란이 인도네시아 정부에는 기회라는 조언도 나온다. 사실 지금까지 국제 사회의 팜유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식용유와 음식물 가공에 널리 쓰이는 팜유는 바이오디젤 원료로도 쓰인다. 바이오디젤은 팜유·대두유·유채유 등 식물성 기름과 소, 돼지 등 동물성 기름을 알코올과 반응시켜 만든다. 일반 디젤과 물리 화학적 특성이 거의 같아 디젤과 섞어 사용할 수 있어 가능성을 주목받기도 했다. 

팜유의 발목을 잡는 것은 환경 파괴 논란이다. 돈에 눈이 먼 인도네시아 팜유업계는 불을 지르는 식으로 열대 우림을 파괴해 팜유 농지로 활용했다. 오랑우탄 서식지가 급격히 줄었고 원주민이 살 곳이 사라지는 등 팜유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흉이 된 것이다.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교는 "보수적으로 봐도 지난 20년 동안 사라진 밀림 중 '3분의 1'이 팜유 농업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팜유 가격이 지난해 톤(t)당 1100달러로 반등했을 때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생산을 위해 뉴욕시 하나에 해당하는 밀림이 없어졌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과 환경단체는 팜유업계에 대해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의회는 팜유를 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바이오디젤 원료에서 팜유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는 100% RSPO(지속가능한 팜유) 인증을 받은 팜유만 구입해 사용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RSPO는 투명성, 천연자원·생물다양성 보존을 비롯한 환경적인 책임 등 8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평가가 매겨진다. 하지만 이 역시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상황이다.